한국을 비롯해 일본에서는 진한을 신라로 보고 있다. 아주 무식하고 멍청한 짓이다. 대가리가 텅텅 빈 것들이다. 


자, 진한을 신라라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해보자.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신라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57년이라고 하고 있다. 이는 곧 진한의 건국연대가 기원전 57년이라는 말과도 일치한다. 개소리라는거 알겠지?


왜냐하면 진시황제가 몽염을 시켜 만리장성을 축조한 시기가 기원전 3세기인데, 그떄 이들 유민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동쪽의 땅을 얻어 진한을 이루고 살았다면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57년이 아니라, 기원전 3세기로 나와야 된다. 헌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그렇게 안 나오지? 왜? 김부식은 도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라 진흥왕때 진흥왕이 거칠부를 시켜 남긴 신라 국사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모른다. 이 신라국사가 반드시 찾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은 있다. 일본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신라본기에는 신라인들이 최고의 지존인 왕에게 헌사하던 호칭인 "매금"이라는 단어가 아예 출현을 안한다. 헌데 이 매금은 신라를 비롯해 주변국들이 신라왕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용을 한 호칭임이 "신라인들이 직접 쓴 금석문"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고구려가 남긴 광개토 대왕비, 중원 고구려비, 그리고 신라인들이 쓴 울진 봉평비에 역시 "매금"이라는 단어가 출현을 한다. 


당연히 신라가 최고의 지존에게 매금이라는 호칭을 썼다면 김부식의 신라본기에도 이 내용이 나와야 한다. 헌데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왜? 누락시켰거나 전혀 엉뚱한 사료를 보고 신라본기를 서술을 했기 떄문이다. 아마도 몇권으로 이루어진 신라본기중 앞권은 분실을 했고, 중후반대의 내용만 김부식이 취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추정을 해볼 수 있게 된다.



신라가 진한이 아닌 이유도 본좌가 결정적인 이유를 몇가지 제시를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신라가 진한이 될 수가 없음을 본좌는 증명을 해보였다고 보고 있다. 역사는 논리의 학문이지, 암기의 학문이 아니다. 기록에 나온 것을 모두 믿어야 한다면 고고학 유물을 파볼 필요가 무엇이며, 고인골 DNA를 분석할 이유와 필요는 또한 무엇일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사람들이 돈을 투자를 하고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진한인들을 한반도 동쪽에 몰아넣었다. 헌데 통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존재했던 어떤 특정한 국가가 멸망을 당하면서 이들 유민들이 한일 양국에 함께 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바로 야요이 倭, 바로 변한인들이다. 가야인이기도 하겠군. 당연히 이들의 도래시기도 역시 기원전 3세기다. 진한보다는 조금 더 빨리 왔다. 


역사 분석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개짓이 한일 양국에 태풍을 만들어 낸다. 바로 나비효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