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가 박정희 시대때부터 출발을 했다라고 사기를 치는 애들이 바로 전라도 애들이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내용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혹자들은 고려시대의 태조 왕건 훈요십조가 그 시작이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시대 당시의 전라도는 천민부락지의 성지, 양수척의 본향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민들과 전라도가 사실상 동일한 계급을 가지고 있지 못한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고려개국시대 당시의 전라도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보다 못한 짐승집단이었기 때문에 이들과 대립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를 한다. 최소한 계급제도, 신분제도가 존재했던 조선말기 시대까지 전라도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며, 상위 신분계급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매매가 되어지는 일종의 물건과 같은 계급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전라도가 민주주의 타령에 목 메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늘 물건과 같은 계급, 목숨이지만 목숨이 아닌 취급을 받으며 몇천년을 살아오다보니, 그 속박과 두려움이 늘 뼈속, 머리속, 유전자로 전해져 내려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제 팔릴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 언제 자기 자식을 노비로 팔아버려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언제 양반들, 관리들의 분노에 희생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총체적으로 자리하는 것이 바로 전라도의 레퍼토리, 민주타령의 유력한 원인일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사람취급 못 받고 살아 온 몇천년, 이젠 사람으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그들의 유전자로 답습되어 계승되어져 오늘에까지 내려왔으니, 인권, 민주화 타령을 입에 담는 것도 얼핏 보면 이해 못할 내용도 아니다. 그런 와중에 섬노예, 성노예등 세계적인 인권 유린 범죄가 그 지역에서 터진 것도 유난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조선왕조실록만 훑어봐도 이 당시의 전라도에는 "타지역에는 없는 범죄가 수시로 벌어지는 지역"임이 왕조 실록에 버젓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viewimage.php?id=25b4c332eac021997fb1d7&no=29bcc427b18a77a16fb3dab004c86b6f01720db71ff8b167c62672d33efaa79e7f11a33ce292fd9f3f35c0091e37e32712e34cafeb2d5342aeb03bf9e9




전라도가 이런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있었던 내용은 호남인이 직접 쓴 기록에서도 확인이 되어지는데 바로 18세기의 호남 선비인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에 당시 서울 양반들의 호남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가득차 있음을 황윤석이 실제적으로 목격, 이를 분통해하는 일기를 그가 직접 남겼던 바가 있다. 헌데 재미있게도 이 당시의 서울 양반들은 그 호남의 더러운 풍속과 인심을 늘 "질실하고 순박하며 믿을만한 영남인"들과 비교를 하여 호남을 비하하는 일이 상당히 잦았던 모양이다. 



viewimage.php?id=25b4c332eac021997fb1d7&no=29bcc427b18a77a16fb3dab004c86b6f01720db71ff8b167c62672d33efaa79e7f11a33ce292fd9f3f35c0091e37e32712e644fee6780410afb03bf9e9




조선시대 대대로 가해진 이러한 차별과, 타도 지역민들이 전라도에 대해 가졌던 이러한 인식은 해방 후에도 그대로 계승, 한국전 이후에 서울대 교수의 논문에서도 전라도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이나 편견이 대단히 좋지 않은 것임이 이미 1950년대에도 확인이 되어진다. 



viewimage.php?id=25b4c332eac021997fb1d7&no=29bcc427b18a77a16fb3dab004c86b6f01720db71ff8b167c62672d33efaa79e7f11a33ce292fd9f3f35c0091e37e32712e710f2e62d534ba7b03bf9e9




여기까지만 봐도 박정희 시대와 전라도에 대한 지역차별? 지역감정이 아니라 전라도 혼자서 욕 처먹고 살아왔다는 것이 버젓하게 확인이 된다. 헌데 중요한 사실은 이 시기까지만 해도 영남 사람들이 전라도에 대해서 사실상 다른도와 특별하게 차별을 한다거나 하는 의식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오고 있다는 것에 있다. 



1988년 당시만 하더라도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보다는 서울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이 강했는데 이것이 2002년의 조사에서는 전라도에 대한 반감으로 크게 발전을 한 사실이 출현을 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인터넷을 통해 전라도가 유포한 "난중일기 조작""성호 사설 조작"과 같은 역사를 활용한 경상도 흠집내기에 대하여 경상도가 대대적으로 반응을 하여 일어난 하나의 반작용의 모습일 것으로 미루어 추정이 되어지며, 본좌가 전라도에 대한 혐오증을 가지게 된 것도 인터넷에서 이러한 내용이 유포가 되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을 하게 되면서부터이다. 


현재 젊은 층의 반전라도 혐오정서가 크게 팽창이 되어진 것도 바로 역사를 날조한 지역감정 조장을 전라도가 시도한 것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크며, 이러한 전라도의 영남 모욕행위는 2002년 군산의 핵방폐장 유치 당시의 현수막 사건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어지고 있는 바, 조만간에 영남이 한번 크게 사건을 일으키도록 본좌가 계획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