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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인

 

 

2만 년 전 경에 지금의 북한 평양 근교 만달리(萬達里)에서 살았던 장년남자. 이 시대는 구석기 시대로서 그 동안 남한 지역에서도 공주의 석장리,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등에서 구석기 유물은 발견되지만, 아직 인골은 발견된 적이 없었 으나, 비록 적은 예이지만, 다행이 만달인 자료가 비교적 구체적이고, 또한 국제학회에서도 인정을 받는 인골이므로 이를 예전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 거주했던 사람으로 보고 복원해 본 것이다.

 

한국사를 뒤바꾼 고대인의 두개골 



1. 장두형(長頭形) 인간들의 출현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오래 전의 옛날 것 가운데 어떤 것들은 오랜 시공을 뛰어넘어 불쑥 제 모습을 들어냄으로써 그 시대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들이 있다. 

1898년에 발견된 석굴암(石窟庵), 1880년 대의 광개토 대왕 비문의 재발견, 그리고 1971년 공주 송산리 5호분, 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 중 우연히 발견된 백제 무령왕 릉은 그 좋은 예로써 한국의 고대사를 보다 사실에 접근해서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 10월, 그해도 저물어 갈 무렵 또 하나의 엄청난 발견이 예고되어 있었다. 이 발견은 한국 역사를 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밝힐 수 있게 만든 이전의 발견과는 달리 지끔까지의 한국사 정설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고 의혹의 안개 속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평양시에서 동쪽으로 40km 남짓 가면 대동강의 한 갈래 남강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이 강을 11km 쯤 올라가면 만달산의 작은 산줄기가 뻗어 내린다. 이 만달산의 중턱 비탈에는 참나무들이 듬성 듬성 서 있을뿐 인가가 멀어 평소 때는 인기척이 없는 그런 호젓한 장소였다. 

표면은 수풀이 뒤덥고 있어 흔히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장소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그러나 그 조그만 구멍은 의외로 길이가 14m나 되는 큰 동굴로 이어지는 초입에 불과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동굴은 인간의 관심에서 잊혀져 있었을까. 마침내 어느날 일단의 사람들이 동굴 입구에 나타났다. 바로 조선인민공화국의 력사과학 연구원들.

그들은 불을 밝히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태고적 어둠의 공간 안에 최초의 불빛이 나타났던 것이다. 침묵 속에서 불빛은 어둠을, 아니 켜켜히 쌓여 있던 세월을 사르고 있었다. 오직 인간들이 밑바닥을 뒤지는 소리만이 이따금씩 동굴 속을 울리고 있었다.

' 득 득 ... '
이윽고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불빛 속에 형상을 들어 낸 것은 주먹만한 크기의 돌멩이, 그 돌멩이는 구석기 시대의 타제석기(打製石器). 연구원의 얼굴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면 이 동굴이 정녕 구석기인들의 주거지였단 말인가. 

그러나 타제 석기의 발견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쪽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연구원의 
놀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그가 집어 든 것은 바로 인간의 두개골(頭蓋骨). 엷은 황회색빛깔의 두개골은 반쯤 곪삭아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볼쌍 사나운 것이었지만 한국의 고대사를 미궁의 수수께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 단서를 제공했으니 말이다.

두개골의 주인공은 1 만년 전의 구석기 시대 말기 사람들. 오늘을 사는 우리와 최초의 만남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두개골을 면밀히 조사한 북한 역사 과학자들은 이 두개골의 주인공들이 바로 오늘날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직접 조상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 이상의 연구는 한 걸음도 진전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딫힌다.

< 사진 5 > 장두형의 만달인 두개골

왜 그랬을까. 연구원들은 당연히 북방계통의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두개골을 계측한 결과 주인공은 앞머리의 너비에 비해 옆머리가 긴 장두형, 뜻밖에도 북방이 아닌 서양 사람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머리 모양의 기준 >

머리지수란 머리 길이를 100으로 할 때 머리 너비로, 머리지수가 75.9 이하면 장두형(長頭形), 76-80.9 사이면 중두형(中頭形), 81.0 이상이면 단두형(短頭形)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했던 것은 이와같은 미스테리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나타난 데 있었다. 

????년 평양시 승호구역 승리산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후기의 인골도 서양 사람들과 닮은 꼴, 이와같은 발견은 남한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년 어느날, 충청북도 제천시 교외에서 부르도자로 야산을 깍아 내리고 있던 이흥수씨는 흙 속에서 심상챦은 고대 유물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국에 신고를 한다.

현장에 도착한 연구진은 현장조사를 면밀하게 진행시킨 결과 상당량의 구석기와 더불어 사람의 인골을 발견했다.(그래서 이 인골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흥수 아이'라고 부른다) 두개골의 주인공은 어린 소년이었는데 역시 북한에서 발견된 만달인이나 승리산 인의 것과 닮은 장두형이었다. 

 

아무튼 이 발굴 사실로만 미루어 보면 1만 년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이 서양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후 8천년전쯤에 동남아에서 흑인종들이 이주해오는데 한반도 남부를 거점으로 살았다..  연대도인,늑도인

 

6천년전의 한반도는 황인종이 아니라 흑인이나 코카소이드같이 생긴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오늘날 같이 황인종이 주류 인종이 된건 불과 5천년 밖에 안된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