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말기 황족 내각의 모습
그림 출처 : 분자인류학 논단 까페, 예맥조선님
[요약 및 추론]
명나라 시절에 청 태조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출신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지역인 길림성 지역에 살았고, 반면에 김함보의 후손으로서 C3로 추정되는 금나라 직계는 해서여진으로 오늘날의 흑룡강성에 살았다.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 지역인 길림성 출신인 청태조 누르하치의 부계 하플로가 O2b1b2-K3일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아마도 청 태조 누르하치는 산동성으로 강제이주되던 발해인 중에서 떨어져 나와 고토(故土)에 그대로 남은 자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길림성 한족의 O2b1b 다양성이 한국인보다 높은 것은 발해인들이 산동성으로 강제이주되기 이전에 그 지역에 O2b1b가 넓게 분포해 있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만주대륙에서 찾는 O2b 혹은 O2b1b는 자연스럽게 분포된 모습이 아닌 고구려인, 발해인의 강제이주 등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형해화된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청 태조 누르하치
명나라 시절에 여진족은 거주 지역에 따라서 크게 건주(建州), 해서(海西), 야인(野人) 여진으로 구분되었다. 건주여진은 요동에 가까운 조선의 압록강 너머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 지역 즉, 오늘날 길림성 지역에 살고 있었고, 일찍부터 농경에 종사했다. 해서여진은 과거 중국 본토의 일부를 차지한 금나라 직계로서 오늘날의 흑룡강성에 살았다. 야인여진은 송화강 북방지역에 거주했는데 명으로부터의 거리도 있고 주로 수렵에 종사했기 때문에 가장 미개한 종족으로 취급받았다.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출신이다. 건주여진은 5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누르하치의 부족은 건주여진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약한 부족이었다. 당시 명나라는 여진족에 대해서 2중의 정책을 쓰고 있었다. 명나라는 요동의 변방에 흩어져 사는 여진족들 속에서 과거 금나라를 세운 아구다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 여진족을 단결시켜 중국 본토를 위협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건주여진은 원래 흑룡강 근처에서 살던 북방여진이니 O2b일 가능성은 거의 없음.
건주여진이 원래 흑룡강 근처에서 살던 북방 여진이라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음. 수렵민이었던 여진족은 오랜 옛날부터 장백산(백두산)과 흑룡강 사이세 생활터전을 잡고 살아왔는데, 先秦時에는 숙신, 兩漢時에는 읍루,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물길, 隋唐時에는 말갈, 송대 이후에는 여진, 16세기말 경부터 ㅅ스로를 만주라고 호칭하였던 퉁구스족이다. 이들은 이미 기원전 11세기 周 武王 때부터 중원과 교역 및 조공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진족은 12세기 초에 이르러 金왕조를 건립하고 宋朝의 북방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元朝가 건립된 이후로는 몽고의 지배를 받았고, 明朝가 元朝를 축출한 이후에는 다시 明朝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명조를 건립한 태조 주원장은 여진족이 중원 북부지역을 100여 년간 점령하였던 기억을 상기하고 자신의 아들 3명을 藩王으로 책봉하여 요동지역을 통치하게 하였다. 뒤이어 1374년에는 遼東都衛를, 1375년에는 遼陽에 遼東都指揮使司를 설치하였다. 그 후 1409년 成祖는 흑룡강 지역의 여진족을 통치하기 위하여 特林地方에 奴兒干都指揮使司를 설치하였고, 1411년에는 여진 출신 太監 赤失哈과 都指揮同知 康旺 등에게 1천여 병력과 25여 척의 대형선박을 주어 이 지역의 통치를 명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1413년에 守護廟 로서 永寧寺를 이곳에 건립하고 奴兒干都指揮使司의 유래를 기록한 石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英宗 이후 몀의 군사력은 현저하게 쇠퇴하여 개원과 철령 이남에만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奴兒干都指揮使司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여진 각 부족의 분열상태를 조종하기 위하여 以夷制夷策과 분할 정책을 교묘히 실시하였다. 明初에 여진은 거주 지역에 따라 크게 三部로 구분되었다. 牧丹江 유역과 長白山 일대(현재의 吉林 敦化縣)에 거주하는 여진은 建州女眞, 松花江 流域(현재의 瀋陽 東北部)에 거주하는 여진은 海西女眞, 그리고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송화강과 합류하는 흑룡강 유역의 여진을 東海女眞 혹은 野人女眞을 칭하였다.
만주족인 사할리언이 전에 내게 디엔에이포럼에서 한 말임. 그리고 누르하치의 직계부계조상인 퉁밍커티무르는 확실히 흑룡강 일대에서 살다 남하한 가계임. http://blog.daum.net/yeolki3439/7894099 역사학자 한명기가 한 말임. 건주여진 전체가 남하한 부족인지 아니면 그냥 누르하치 가계만 남하해서 지도층이 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한 말에 별 이의가 있을 수 없음.
물론 나는 원래 예맥족과 속말말갈, 백산말갈로 이루어진 발해인이 남만주 지역에 분포해 있었고, 흑수말갈이 북만주에 분포해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삐딱나으리의 생각도 일면 맞다고 생각되나, 나는 현재 만주의 O2b 분포는 발해인이 대거 산동성으로 강제이주된 후에 여러 종족의 이합집산을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해인이 남만주 지역에 있던 당시에는 지금보다 O2b가 분포된 지역이 훨씬 넓었다고 생각이 듬. 어쩌면 누르하치의 부계 자체가 흑수말갈 계통이 아닌, 발해와 가까운 속말말갈이나 백산말갈이었을지도 모름. 누르하치의 부계 하플로가 O2b1b2-K3이라는 가정하에 생각해본 것임.
건주여진의 분포지역이 목단강 유역과 백두산 일대까지니 누르하치의 직계조상인 퉁밍거티무르가 본래 만주의 송화강과 목단강이 만나는 지역 부근에 살았다는 기록 또한 일리가 있음. 다만 건주여진의 넓은 분포 지역을 볼 때 누르하치의 부계 하플로가 O2b1b2-K3일 가능성이 다분함.
그런데 사할리언의 의견으로는 O2b도 누르하치의 하플로 후보임. 걔는 C3-M48설을 강하게 부정함. 그건 순록 키우는 북방민족의 후예라며. 걔가 무슨 내부의 비밀을 알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O3만 후보로 내세우기에 계면쩍어서(그놈이 O3-M134-F444 아마도)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음. 어쨌든 그 포럼 있었을 때 좋았는데 없어졌음.
사할리언도 처음에는(아마도 지금도) 수학적 통계적인 방면에 약하고 전반적인 분자인류학에 대해서도 초보였음. 내가 고수들과 논쟁할 때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며 질문하고 그런 수준이었음.(내가 가르쳤다고 말하고 싶지만 자기과대포장인 것 같아 안 하겠음) 그리고 그놈의 반한감정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해서 초재가 그놈 얘기했을 때 당연히 "아 걔..." 이런 식으로 말했더니 초재는 걔를 무슨 대학자나 되는 양 나보고 건방지게 그게 뭐냐고 다그쳐서 당황했음. 알고 보니 내가 초재 영어번역에 딴지를 건 것을 두고 꽁하고 있다 나에게 화풀이 한 것이었음. 그런데 초재 영어실력 너무 웃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