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고조선의 시조가 아니라 그냥 1000살 산 할아버지에 불과하다



먼저 단군의 이름이라는 '왕검王儉'부터 까보자.


이건 고조선의 도읍인 '왕험王險'성에서 나온 말인데.

삼국사기를 보면 왕험이란 '왕의 도읍'을 말하는거라고 했다.

험險은 '험하다'는 뜻이니까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왕의 도읍은 험해야한다 왕의 도읍을 이제 '왕험'이라 부르자

걍 이 뜻이다.  원래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런데 옛날 반도의 야만인은 미개해서 박달나무를 서낭당으로 삼고 미개하게 돌탑을 쌓고 기도했다

그리고 제사장을 뽑아 '단군'이라 부르게했다.


그런데 낙랑군 때인지 고구려 후기 때 고려 때인지 도교가 유입되면서 그 미개한 단군은 신선신으로 추앙받았다. 

신선에겐 이름이 필요하다.

그래서 왕험에서 이름을 따오는 조악한 짓을 하는데. 그것도 잘못 옮겨 왕검王儉이라 부른다.

그리고 신선은 존나 오래 살아야되니까 그냥 1000살,1500살 대충 이렇게 붙였다.


하지만 고구려 때만 해도 이 존재는 절대 고조선의 시조로 추앙받지못했다. 



근데 하필이면 이놈이 사는 곳이 평양인지라 고려 때부터 사람들에게 망상이 생기더니 


"그래! 기자가 고조선의 시조인데 기자보다 왕검께서 먼저 있었을것이고! 왕검은 1000..아니 1500년 사셨으니..

그래! 요임금 즉위 50년째가 단군왕검 즉위구먼! 단군왕검 만만세!"하면서

단군왕검의 위대한 고조선 개국 역사가 생겨나기에 이른다.




일연은 원나라에 대항하기위해 이 평양의 어설픈 민간설화를 삼국유사 첫머리에 쑥 집어넣었다.

조선은 사대주의의 오명을 피하기위해서 단군을 개국시조로 추앙했다.


조선 초기 때에는 민간에 '삼성기'라는 요상한 책이 떠돌아서 왕실에 의해 대대적인 수거령이 내려졌다.

단군 숭배가 점점 심해진 증거다. (삼성기三聖記란 말 자체가 환인,환웅,단군을 흔히 삼성三聖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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