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들이 서구로 부터 현대의 역사와 민족이란 개념을 수입하여 일본에서 군국주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활용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민족 사관이라는 것이 산생되였는데
반도 침략을 위하여 한일 동조 동근이라는 민족사관을 불어대기 시작 하였고 나아가서는
만주까지 묶는 민족사관을 고취 하여 자신들의 침략의 합법성을 역설하였다.
반도인들이 이러한 일본의 민족사관에서 역사나 민족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였다.

당시 산생된것이 저항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 사관으로서 대표적인 인물이 신체호이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보며는 저항적 민족 사관이라 하지만 사용하는 수법은 일제의
침략적 민족 사관과 똑같은 인식과 해석논이다. 역사란 아[我]와 피아[彼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즉 우리민족과 다른 민족의 투쟁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여 삼국에서 강대하였든 고구려에서
민족의 뿌리를 설정하고 그무대를 광활한 만주에 설정 하였든 것이다.
일제의 민족사관에 저항하기 위하여 사용한 저항적 민족사관도 똑같은 결과를 산생하였다.

족보식 민족사관은 그 조상의 뿌리를 캐기 시작 하다 나니 반도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더나아가
슈메르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대륙까지 연결이 되고 더따지다 나며는 아프리카가 포함된다.
인류의 조상은 모두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한개의 조상의 후대들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이런 민족사관에 의하며는 한반도 만주 침략이 모두 정당하고 더나아가 중국대륙에 대한
정당성도 찾아 낼수 있다. 전세계 어디를 침략하든 그 정당성 이유를 만들어 낼수 있다.
하여 반도인들이 일제에게서 배운 민족 사관으로 역사해석은 사면에 담장에 부닥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아마 국사라 할것이다. 국사란 현재 한국의 국토우에서 문화와 문명의 흐름과
그 형태를 기록에 의하여 현대인들이 인식하는 것이지 민족사가 아니이다.
국사란 자기 국토내에서 벌어지였든 문화와 문명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 이다.
여기에 민족을 족보와 같이 따지는 것은 정확한 역사관이 아니이다.
중국에서 현시대 중국국토내에서 벌어지였든 모든 문화와 문명의 흐름에 대한 발굴과 조사는
아주 정당하고 과학적 인 역사연구 방법인 것이다.
한국인들의 소위 민족적 사관으로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대항하는 것은 닭알로 바위치기이고
세계 역사학계가 볼바에도 웃음거리에 불과 한것이다.
중국인들은 이미 아주 오랜전에 화이华夷의 구분으로 역사를 볼줄 알았다.민족이나 종족적
표준이 아니였다.즉 문명인과 야만인의 구분이였고 중국이란 단어가 문명의 대명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