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12권, 7년(1681 신유 / 청 강희(康熙) 20년) 11월 29일(무인) 2번째기사

사헌부에서 민심을 잃은 폐단에 관해 차자를 올리다사대부(士大夫)로 향리(鄕里)에서 세력이 있는 자는 비록 당연히 바쳐야 할 세금과 당연히 행해야 할 구실이 있더라도 일찍이 받들어 행하지 아니하고 끌고 미루어 때를 넘기며, 미천한 백성인 경우는 감히 1부(負) 1속(束)이라도 빠뜨리지 못합니다. 

이러한 무리들이 여러 가지 계교를 부려 숨기고 빠뜨리는 것이

삼남(三南)이 더욱 심하여 자기집 울타리 아래 개인 소유로 기르는 가호(家戶)가 많은 자는 1백여에 이르며,

적어도 수십을 밑돌지 않는데, 양인(良人)이건 천인(賤人)이건 따지지 않고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 사사로이 역사를 시키면서 완벽하게 보호하여 한번도 공가(公家)의 역사에 응하지 않으니, 미천한 백성들이 치우치게 곤궁한 것은 주로 여기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어찌 심히 놀랄 일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