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의 1 라틴자모 병음의 학생이다.<!--오피스 태그-->

1958 내가 소학 입학하는해 부터 라틴자모 병음을 가르키기 시작 하였디.

아이들이 몇일 아니며는 병음으로 간단한 단어와 문장을 쓸수 있었다.

한자도 겸하여 배우면서 시험에서 잘생각나지 않는 글자는 병음으로

적어도 절반 점수는 주었다.

 

병음은 병음일뿐 수천년 한자라는 표의 문자를 사용하든 중국에서

전면적인 병음화는 근본적으로 불가능 하였다.

3학년이후 부터는 병음 사용이 일부 난해자 에서만 사용하였고

기본적으로 사용이 필요 없었다. 사전에서 모르는 자를 찾을때 필요할가?

허나 병음은 한자의 한쪽 날개와 같이 현재 불가분리 상태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때 문자가 아니라 음을 표시하는 것이 목적이였다.

하여 훈민 정음이지 훈민정자가 아니였다. 글자가 아니고 소리표기를

위한 것이엿다. 중국의 병음이나 같은 공능이였든 것이다.

하여 정음을 발표하였지만 모든 정부와 사회에서의 사용하는 문자는

한자였다, 일부 미천한 서민들과 부녀 계층에서 사용하였을 뿐이였다.

이것은 반도의 문화의 뿌리는 한자에 있기에 지적 어휘의 70%

한자어이니 정음으로서는 문장의 의미 전달이 정확할수 없기 때문이였다.

 

세종이 무엇때문에 제가 창제한 정음으로 문자 유일화를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주 똑똑한 세종으로 볼때 우리 말에서 훈민 정음은

정확한 소리를 적는 도구일뿐 문자는 아니라 생각 하였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병음으로서 한자의 음을 정확히 표시 할뿐 문자로서의

공능을 대체 할수 없다는것을 세종은 몇백년전에 인식하였든 것이다.

표의 문자 한자로 산생한 우리언어 어휘의70% 훈민정음으로서

확실하게 정확하게 기록 할수 없다는 것을 잘안 세종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한자를 포기치 아니 하였다.

현재 한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