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점상층문화는 기자조선인가
요서 하가점상층문화는 보통 '산융'이란 설이 유력하다.
나도 산융이라 본다.
하가점상층문화는 사슴 개 호랑이 말 소 양 등 다양한 동물 청동장식들을 사용하는 것이
북아시아 몽고인종의 특징을 보여주고있다. (산융의 특징)
하지만 산융이라고만 몰아보기에는 석연치않은 점이 많다.
기자가 요서로 간 기원전 10세기에 하가점상층문화가 등장한다.(기자와 시기가 일치)
하가점상층문화는 주나라 양식 청동투구를 쓰며, 중국의 청동과戈와
중국식 청동예기들을 많이 사용하며, 심지어 전쟁용 전차도 사용하였다.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조선 제후로 책봉받은 것과 일치)
뼈다귀 점치기를 위해서 통치자가 사용하는 급의 전문적 제사 유적도 존재한다.
해발 800m의 산 위에 큰 규모의 제단이 존재함이 확인되었다.
하가점상층문화의 용두산 유적,하가점 유적 이 2개의 유적에서 인신희생 제사 구덩이가
발굴되었다. 이 인간제사의 풍속은 은나라에서부터 온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이 인간제사에는 매우 낮은 하층민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있다.(노비)
(기자의 엄격한 팔조금법의 노비의 존재와 잔악한 은나라 문화와의 일치)
하가점상층문화의 소흑석구 단계(기원전 9~8세기)에서 최초로 비파형동검이
제작되었으며 부하인 요서 십이대영자로 하사되어 십이대영자는 비파형동검을 신나게
즐겨 사용한 것이 주목할 사항이다. (고조선과의 연결)
이렇게 볼시 하가점상층문화를 조선朝鮮으로, 십이대영자는 그 유명한 '발發'로 볼 수 있다.
당나라가 발해를 발해라 불렀지만, 일본은 발해를 고려高麗라고 인식한 것과
비슷한 문제라 볼수있다. 연,제나라에게는 그저 산융 오랑캐였겠지만
주나라 무왕에게는 조선朝鮮으로 취급되었다.
제나라 환공의 침입으로 하가점상층문화가 크게 패해 몰락하자 요서 십이대영자가
조선朝鮮의 지위를 이어받아 발發조선朝鮮으로 합쳐져 불려졌다 볼 수 있다.
하가점상층문화에선 농업,목축업이 병행발전하였으며 청동제 곡괭이가 사용되었다.
청동주조기술이 매우 많이 발달하였으며 무덤에서 많은 청동무기,청동공구들이 우르르
출토된다.(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농사 양잠 등 문명 사회를 일구어주었다는 것과 일치)
체질인류학으로 알아본 결과 하가점상층 사람들은 오환,선비 계통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하가점상층 사람들은 기본적인 몽골리안 인종의 특징을 갖추고 북아시아 몽골인종이
섞여있는 '혼혈인종'임이 확인되었다.
최근 연구에선 하가점상층문화 사람들이 고태산문화인과 인종,문화요소적으로 많은 친연 관계가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하가점상층문화의 중심 유적 용두산 유적 사람들과 고태산문화의 순산둔유지에서 수습된 인골이 서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사학계는 고태산문화를 '숙신'으로 보고있다. (숙신=주션=조선朝鮮)
한서 흉노전을 보면 "흉노는 그 선조가 하후씨(하나라)의 후예로 '순유'라고 불린다. 도당씨와 유우씨 이전에는 산융,험윤,훈육 등이 북쪽 변경에 살면서 풀을 따라 가축을 기르며 옮겨다니며 살았다. 기르는 짐승들은 대다수가 말,소,양 이었는데."라고 적혀있다.
하후씨(하나라)는 하夏나라(이리두 문화)의 문화적 조상인 하夏가점하층문화를 뜻한다.
후예라는건 하가점하층문화에 연이어 일어난 하가점상층문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산융,순유(chun-wei),험윤,훈육(xun-yu),흉노(xiong-nu)은 모두 발음이 유사하여서 진나라 한나라 이전의 흉노의 다른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할수있다.
기자의 이름도 '서여','수유'임은 우연이 아니다.
( 《기자묘석기(箕子廟石記)》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유종원(柳宗元)이 쓴 《기자묘지(箕子墓志)》에 관해 쓴 글인데 우리에게는 《고문진보(古文眞寶)》로 익숙하듯이 중국에는 《고문관지(古文觀止)》란 글 모음집이 있는데
기자묘비(箕子墓碑)를 쓴 유종원의 문집인 《유종원집(柳宗元集)》에 의하면 기자의 이름이 원래 "수유(須臾)"로 되어 있는데 다른 기록에 의해 "서여(黍餘)"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수유(須臾)나 서여(胥餘)나 중국어 발음으로는 모두 xu yu로 읽혀져 이상할 것이 못 된다.(중화서국, 《유종원집(柳宗元集)》 제1책, 119쪽 참조) )
은나라의 수도인 은허의 옥인玉人(기원전 13세기경 제작)을 통해 확인되는
은나라 왕족,귀족의 머리스타일을 보면 시베리아 안드로노보 문화인의 머리 스타일과 똑같다.
은허 시기인 기원전 13세기경에 상나라가 갑자기 국호를 은나라라 바꾸고
청동기 문화가 갑자기 급속발전하고 안드로노보-카라수크 문화의 전차 비슷한 전차가 등장하여 갑자기 정복제국이 된 것도 지배층이 안드로노보-카라수크 계통의 시베리아 흉노로 대체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이 단계에서 하가점상층인종이 중원에서 형성된것이고 은나라가
쇠해가자 이들은 요서로 쫓겨가서 하가점상층문화를 세운 것이다.
하가점상층문화가 기원전 11~10세기에 갑작스런 등장을 보이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출처] 기자조선은 유전학,고M134, M117그룹이 카라숙, 오르도스, 하가점상층문화 다 깊이 관여한 종족고학,사료학으로 증명 (『미마나 교회 (임나任那 하나로우花郞 Church)』)
하플로그룹으로 봐도 하가점상층문화는 은나라인 하플로그룹 M117이 유입되어
세워졌다. M134, M117그룹이 카라수크 문화 , 오르도스 문화 , 하가점상층문화 다 깊이 관여한 종족이라는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카라수크~오르도스를 통해 내려온 카라수크인은 상나라 지배층을 대체해 은나라라 국호를 바꾸었다. 그리고 은나라가 망하자 은나라인들과 함께 요서로 쫓겨간다.
그리고 하가점상층문화(기자조선)를 요서에 세운다.
그리고 하가점상층문화 건국자인 기자는 요서로 넘어온 숙신인들(고태산문화인들)과도 많은 문화 교류는 물론 피도 섞고 숙신의 원발음 '주션'에서 국호를 따서 조선朝鮮이라 국호를 정한다.
그리고 주나라 문왕에게 조선제후로 책봉받아 주나라 투구,주나라 청동예기,주나라 청동무기 등 주나라 문화를 자체적으로 많이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병식동검에서부터 시작해 청동검을 만들다가 단계적인 검몸체의
발전으로 비파형동검을 만든다. 그리고 요서 조양시의 발인發人에게 하사하여서
발인은 요서 조양시에 '십이대영자 문화'를 세운다.
요렇게 시나리오가 다 완성되는 것이다.
(M117은 부여,고구려,백제 하플로도 된다고한다. 고구려,백제가 부여 후손인건
명확하다.
부여는 삼족기,고배를 사용했으며 뼈다귀로 점치고 은나라 달력을 사용하며 순장문화가
존재하고 은나라처럼 가뭄들면 왕을 잡아죽여버려 기우제를 지낸다.
하가점상층문화 역시 삼족기,고배를 사용했으며 위영자 문화,요서 비파형동검문화도
삼족기를 사용한다. 하가점상층문화는 뼈다귀 점,순장문화가 존재함이 확인된다.)
이상 살펴본 결과 하가점상층문화는 기자조선임이 명백하다.
기자조선 실존을 인정치않으려하는 조센사학계와 조센징은 조상을 부정했으니
자살하여 죄를 씻음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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