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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ksh님이 전에 역큐갤에 올리신 '허저족의 부계 하플로 그룹 구성' 그래프이다.

 

 

 

허저족은 러시아의 아무르강 유역에 1만명, 중국의 흑룡강성에 4640명이 거주하는 종족으로 일명 나나이족이라

고도 하는데 그들은 대조영을 자신의 선조로 생각하여 제사를 지낼 정도로 대조영에 대한 전승을 갖고 있다. 그

런데 그들에게서 검출되는 부계 하플로 중 하나가 만주인들에게서 검출되는 O2b1b2-K3이 아닌 O2b1b1-L682

인 것은 매우 주의를 기울일만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O2b1b1-L682는 금나라에 의해서 산동성으로

강제이주된 발해인들, 즉 예맥족과 속말말갈의 주요 부계 하플로라고 추정이 되기 때문이다. 즉 허저족의 기층을

이루는 종족은 산동성으로 강제이주되지 않고 흑수말갈 속에 살아남은 발해인, 그 중에서도 속말말갈일 가능성

이 높아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협계, 영순, 통천 등의 태씨(太氏)가 대조영을 자신의 선조라고 여기고 있으며 그 족보에 또한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사에 의하면 서기 934년경 발해의 태자 대광현이 무리 수만 명(고려사 절요

에는 수만호)을 거느리고 고려에 내투(內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후대에 저술된 조선 성종

임금 때의 동국여지승람에 '통천태씨(通川太氏)는 중국 투화인(投化人)'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의 '중국 투화

인'이라는 기록은 성종 임금 당시의 발해에 대한 역사인식을 보여준다고 하겠는데 그 당시에는 발해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인식이 아직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정조 임금 때에 가서야 유득공이 '발해고'라는 저서를

통해 발해가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인식을 보인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기록된 동국여지승람에서 발해에

서 귀순한 대광현을 '중국 투화인'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대광현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태씨(太氏)의 부계 하플로가 O2b이다. 그들의 부계 하플로가 O2b

인 것은 밝혀진 바 있는데, 그 하위 하플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나도 그 하위 하플로가 무

엇인지 매우 궁금하다. 그 하위 하플로가 허저족처럼 O2b1b1-L682일까? 물론 발해인들이 대거 강제이주된 것

으로 여겨지는 산동성 일대를 포함하는 북중국에서 O2b1b1-L682, O2b-SRY465가 모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태씨의 부계 하플로가 꼭 O2b1b1-L682라고만은 할 수가 없겠다. 그러나 대조영을 선조로 여기고 제사지내는

허저족에게서 주요 부계 하플로 중 하나가 O2b1b1-L682로 나타난 만큼 태씨(太氏)들의 부계 하플로도 O2b1b1

-L682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참고-역사기록]

 

*서기 934년 고려 태조 17년 7월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이 무리 수만명을 거느리고 내투(內投)하거늘 성명(姓名)을 왕계(王繼)라고
내리고 종실(宗室)의 적(籍)에 붙여서 특히 원보(元甫)를 제수하고 백주(白州 : 지금의 배천[白川])
를 지키게 하여 그 제사를 받들게 하고 관리들에게는 작(爵)을 내리고 군사들에게는 전답과 주택을
내리되 차등이 있게 하였다.
-고려사, 세가, 태조

 

*925년 후당(後唐) 동광 3년
12월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다.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인데, 당나라 무후(武后) 때 고구려 사람
대조영이 달아나 요동을 지키니 당나라 예종이 발해군왕으로 봉하였다. 그 뒤에 스스로 발해국이라
일컬으며 부여, 숙신 등 10여 나라를 아울러 다 차지하고 문자, 예악과 관부(官府)의 제도를 세웠다.
5경, 15부, 62주를 두었으니, 땅이 사방 5천여 리이며, 인구는 수십만이었다. (중략) 거란 임금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발해를 쳐서 홀한성을 포위하여 발해를 멸망시키고, 동단국(東丹國)이라 고쳐
부르니,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과 장군 신덕, 예부경 대하균, 균로사정 대원균, 공부경 대복예, 좌우
대장군 대심리, 소장(小將) 모두간, 검교 개국남·박어(朴漁), 공부경 오흥(吳興) 등이 그 남은 사람을

거느리고 전후로 수만호가 도망하여 왔다. 왕은 이들을 매우 후하게 대접하며, 대광현에게는 왕계

(王繼)라는 성명을 내려주고 종실의 적(籍)에 붙여서 그 선대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요좌(僚佐)들

에게는 모두 작(爵)을 내려주었다.
-고려사절요, 태조 신성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