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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위나라魏 말기末 - 요양시(요동성) 삼도호요업제2장묘三道壕窯業第2場墓(일명 영지영묘令支令墓) 묘주부부도


벽화의 두 부인은 묘주인처럼 각기 독자의 평상 위에 앉은 점에서 고구려 각저총 벽화의 두 부인과 차이를 보인다. 

묘주인 오른편의 탁자에 앉은 인물에 비견되는 존재가 한대漢代 화상석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양의 삼국三國 · 위魏 · 진晉대 고분벽화에 보이는 묘주인에게 보고하는 인물과는 대비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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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중앙과 우측의 두 귀부인(요동군 태수의 부인들)은   백제시대 여성귀부인의 관모와 거의 매우 유사하게 일치한다.


아무도 이에 주목하지않았던게 실로 놀랍다 할 수 있다.  즉 백제시대 여성귀부인의 관모와 관모 앞 장식은 반도 자생自生이 아니라

요동군 혹은 삼국지 말기의 위진 시대를 기원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북사北史 백제전은  백제의 기원이 삼국지 시대 말기 요동군遼東郡 태수 공손씨의 사위인 '구이'라는 자와 100여개나 되는 피난 짱개 호족 가문들

에 있다고 했다. 

백제는 짱개의 나라임이 분명했다.  



더불어 삼국사기의 "대방군의 공주 보과가 백제 책계왕의 아내."라는 기록 역시 유물,중국 사료를 100% 뒷받침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