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을 전부 죽이고 왕을 토막내고 수령(대막리지) 독재 체제로 무사들과 민중들을 이끌고 

고구려를 통치하고있는 연개소문이 김유신과 평화회담을 열고, 

김유신이 김춘추 죽인 결과 최초의 남북 우호가 이루어져.


이렇게하여 남북조 구조가 이루어진건데.


그렇게 되니 적으로 삼아야될 대상이 중국이 되는데...,


연개소문은 사람이 착해서 남생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죽이는걸 하지않았다.


그 결과 남한을 먹기위해선 친중을 해야된다는 안시성 세력과  복수를 위해서 반중,친남의

평양 세력으로 갈렸을 거고.

남생은 아버지의 정책을 따라 반중,친남을 하자했으나 동생들이 안시성 세력과 연합해 

형 남생을 쫓아내고 남생은 중국으로 튄다. 

 

그 때  기근에 지진이 잇달아 터져대서 공산주의적 정치체제의

연개소문 정권은 살기위해 도둑질 약탈해대는 백성들로 인해 와르르 급속하게 무너져내렸다. 

그 결과 고구려를 쳐들어온 이적,설인귀의 군대는 거의 무인지경 지나가듯이 성들을

너무나 쉽게 먹었다.

 

 

"이 해에 개소문이 죽고, 그의 아들 남생男生[註124]이 대신 

막리지莫離支가 되었다.

그의 아우 남생男建·남산男産과 화목하지 못하여 각자 붕당朋黨을 만들어 

서로 공격하였다. 

남생男生이 두 아우에게 쫓겨 달아나 국내성國內城에 웅거하여 성[城을] 사수死守하면서, 

아들 헌성獻誠을 보내와 궁궐宮闕에 이르러 구원을 요청하였다. 조서詔書를 내려 

자효위대장군左驍衛大將軍 계필하력契苾何力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응접應接케 하였다.

남생男生이 [국내성國內城에서] 몸을 빼 도망오자, 

조서詔書를 내려 특진特進 요동대도독遼東大都督 겸평양도안무대사兼平壤道安撫大使를 

제수除授하고, 현도군공玄莬郡公에 봉封하였다."-구당서 고(구)려전



"고구려는 기근飢饉이 거듭되어 사람들은 서로 약탈하여다 팔고, 지진地震으로 
땅이 갈라지며, 랑호狼狐가 성중城中에 들어가고 두더지가 성문城門에 굴을 뚫어, 
인심人心이 불안에 떨고 있으므로, 이번 걸음에 다시는 출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신당서 고(구)려전

고구려는 스스로 무너진거고, 당나라가 이때 쳐들어온거고. 신라는 당나라의 독주를 막기위해 군사 출병을 단행했다. 나당연합으로 망한게아니라 이미 망한거다.
엄청난 지진의 여파로 고구려는 늑대 여우가 성 안에 들어가고 두더지가 성문에 굴을 뚫는 등 완전 지옥이 되버렸고, 기근. 그리고 지배층끼리의 분열과 내전 때문에(안시성 세력vs 평양 세력). 그리고 백성들이 신나게 약탈해대서 도저히 버틸 힘이 없었다.

고구려는 자연대재앙으로 방어할 능력이 거의 없어졌다. 구당서,신당서 기록을 보면 당나라군은 거의 무인지경 
돌파하듯했다.  



고구려 멸망 원인은 엄청난 자연대재앙이었다. 이를 학자들은 중점을 두지않고 나당의 탓으로만 돌렸다. 그리고 연개소문 정권을 단순 독재정권으로 매도한게 문제인데. 연개소문 정권은 수령과 장군들만이 지배하고 귀족은 없는 공산주의 독재 정권과 똑같았고 공산주의 사상도 거의 비슷하게 똑같았다. 이에 초점을 안둔 것이 학계의 실패다.
당나라로선 공산주의 독재정권을 지향하는 고구려를 가만 놔두면 그 사상이 동아시아에 확산되므로 절대 놔둘수없었고
신라도 공산주의든 당나라의 독주든 둘 다 마음에 안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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