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했는가? 발해는 한국사인가?

발해의 고구려계 토기 - 지배층이 사용. 그래서 그런지 말갈토기보다는 단정한 제작기술을 보인다.

발해의 말갈계 토기 - 발해 토기 문화의 다수를 차지한다. 말갈토기라서 그런지 투박,무식하며 고구려 토기와도 모습이
상당히 다르다.


소련 역사 논문집
1. 에벤키족과 에벤키족 장군 '쪼쭌(조영)'이 발해를 세웠다.
2. 에벤키족의 중심 종족 '모헤'족이 발해 건국 세력이다.
삼국유사의 발해에 대한 관점 -
1. 발해는 말갈족 나라
2.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군이지만 강원도 태백산에 까지 진출해 거주하던 '말갈족'
3. 발해의 국호는 '진단','발해','말갈' 등으로. '고구려'가 아님.
4.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보구있지않음.
삼국사기의 발해에 대한 관점
발해는 적지도않음.
당나라 기록(구당서,신당서,통전)의 발해에 대한 관점
1. 발해는 말갈족이며 고구려의 별종이다. 국호는 '발해말갈'이다.
2. 국호를 '진단'이라 하더만 당나라가 국호 '발해말갈'을 하사하자 꼬리를 흔들며 '발해말갈'이라는 국호만
사용했다.
3. 대조영은 당나라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조공바치고 당나라의 책봉을 받고 벌벌 떨었다.
토기를 가지고 지배층이 고구려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에벤키 말갈족 장군 '걸걸조영'(대조영)은 강원도 태백산에서 활동하던 고구려의 '별종'이란 개념으로서의
말갈족이었다.
그러니 당연 쓰는 토기는 고구려 토기일 수 밖에 없다.
에벤키 말갈족 대조영의 생각 속엔 망하여 사라져버린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 역사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동족 말갈족이 고구려를 뛰어넘는 웅대한 나라가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발해의 궁전이 당나라 궁전과 비슷하지만 기본 모델은 고구려 수도 평양의 안학궁이라는 거라던가
고구려의 온돌 문화는 고구려 문화를 흡수한거라 볼 수 있다.
발해는 개국 초기. 국호를 '진단'국이라 했는데.(통전에 나온다.)
불교에서 동방東方을 부르는 말이다.
즉 발해는 자신들의 국호를 '말갈'이나 '발해'가 아닌 '동방 제국'으로 선포한 셈이다.
발해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는 황제국이었으니 '동방 제국' ...,
이것이 바로 대조영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당나라로선 이를 인정하지못하고 말갈족의 원 발음인 모헤Mohe를
한자로 비교적 비슷하게 표기한 보카이bokai를 한자로 '발해'라 표기한 후
이를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공식 국호로 주었다.
발해는 국내에선 진단제국(동방제국)과 발해를 공용하여 사용 하였을것이고.
일본에는 고려高麗가 자기들 국호라고 알려서 (고려는 장수왕 시절부터 고구려 멸망 때까지
고구려의 공식 국호였다.) 고려 즉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부여의 풍속 계승까지도
선포하며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두텁게 했다.
그렇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통일신라란건 결국 말짱 도루묵에 불과하다.
고려高麗를 제2차 국호로 쓰는 동방제국(진단제국=발해)이라는 아주 당돌하고
멋진 나라가 떡 하니 만주,연해주에 있었으니까.



발해에게 있어 당나라는 복수 대상이지만 당나라 문화를 훔쳐 자기들 것으로
삼는다.
일본이 서양 문화를 훔쳐 메이지유신을 이루어냈듯 발해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볼 수 있다.

발해는 북방으로 진출 또 진출해 동족 말갈족을 흡수하고 영토들을 미친듯이 확장해나가
그래서 연해주,흑룡강 저 너머너머너머머머머까지 아주 미친 멀리 멀리 북방대륙에까지
발해 유적들이 미친듯이 발굴된다.
신당서는 이를 "발해가 부여,옥저,변한,조선 등 바다 북쪽에 있던 여러 나라의 땅을 거의 다 차지하였다."라고
적는다. (고조선,부여,변한,옥저가 망하지않고 연해주 쪽에 살아있었다는 뜻)
그러나 발해는 당나라 문화에 미쳐버려 말갈족 고유의 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고 결국 백두화산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결국 그 정도 그릇 밖에 못되었던 것이다.

발해가 망하자 고려 태조왕건은 대량의 발해 유민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발해의 건축 문화가 고려의 건축 문화의 한 요소가 되었다.
태조왕건은 발해를 '본래 우리의 친척 국가'라고 불렀다.
태조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행위에 분노했다.
태조왕건의 친척,복수론 덕분에 고려(코리아)는 발해사를 흡수하였고
삼국유사에 발해가 등록되어있고 대조영을 말갈족이지만 고구려 장군이며
강원도 태백산에 거주하고있었다고 적고있는건
당시 고려는 발해를 자국사로 인식하고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고려의 동북쪽 영토는 연해주 부근까지 뻗어 여진족,아이누족과 접경하고있었다는걸
서긍의 고려도경, 공험진 문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도 역시 발해의 고토를 찾기위한 고려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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