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후에는 봄이며는 시골에와서 채마전을 다루고 토종닭 몇십마리를<?xml:namespace prefix = o />

키우며 여름에는 낚시질을 재미로 살아 가고 있다

할빈의 친구들이나 아들딸이 오며는 내가 키운닭을 한두마리씩 잡고 내가

낚은 물고기와 터전의 무공해 채소로 접대하는데 모두 대만족이다.

닭은 넓은 마당에 내놓고 키우는 놈들이라 닭장에 들어간 저녘에야 잡을수 있는데

닭장에 내가 들어가며는 이놈들도 닭백정이 들어온줄을 알고는 모두 구석으로 피하여

달아 나는 것이였다. 한번씩 이러고 나며는 그이튿날에는 닭들이 닭알도 제대로

둥지에 들어가 낳지 않고 해가 저물어도 닭장안으로 잘들어 가지 않는다.

닭을 짐승이라 간단히 생각하였었는데 그들도 죽음의 공포를 알고 있었다.

금년 사월에 접어들어서 나의 어머니와 먼일가의 형되는 분이 세상을 뜨셔서

장례에 참가하고 돌아오니 그이튿날 나의 고향 현의 민족종교국에서 사업하는

50십대 젊은이가 죽었다. 그장례가 끝나고 이틀후에는 내가 살든 동네의

당지부서기로 사업하는 동생같은 친구가 교통 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하직

하였는데 뺑소니 사고라 장례가 언제가야 마무리될지 무기한이다.

요사이 련이은 장사집에 정신이 없는데 어쩌다 한국tv 켜도 그넘의

세월호 사건의 사망자 신문이 도배되다 싶이 되고 있으니 tv켜기도 겁난다.

어쩐지 나의 닭장의 닭들과 같이 죽음의 공포에 잠기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 너무나 가깝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어는날 사신이 나에게 문뜩 달려들것이라는 공포가 생긴다

이번 여러차례 장례 참가하면서 갑자기 새롭게 느낀점은 세상이 변하였다는 것이다.

광주나 상해같은 먼곳의 자식들도 하루 이틀이며는 장례에 참가 하기위하여

집으로 돌아오지만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외국에 있는 자식들도 하루이틀이며는

도착하는 것이였다.

또한가지 심심히 느낀점은 ; 이번차사고를 당한 동생같은 친구는 당지부서기를

하느라고 한국에 나가 있는 처와 십여년 별거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그의 처가

불법체류에 잡혀서 들어오게 되여 오손도손 부부가 함께 생활한다고 축하하여

주었드니 일년도 아니되여 청천벼락같은 변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다.

부부가 돈을 위하여 별거 생활 보람이 무엇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