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중에서
ㄴㅇㄴ(223.33)
2014-05-06 10:41:00
추천 1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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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절좀 어딘지 갈쳐주세요ㅜ
전라도놈은 뒷통수 잘 친다고 임명을 안 한 것. ㅇㅇ 그의 원리원칙이 잘 드러나는 대목임.
갱상도 사기유전자 인증이욬 ㅋㅋㅋ
이순신은 전라도의 전략적 위치 같은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은 있어도 호남인에 대해 뭐라 말한 적은 없던 걸로 기억
약무호남시무국가 병1신아
8월 28일 [양력 10월 3일]<을묘> 맑다. 우리나라 팔도 중에 오직 이 호남만이 온전한 것은 천만 다행이며,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을 옮기는 것 모두 이 전라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폐해를 다 없애어 국권을 회복하 는 것도 이 도(전라도)의 계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월 22일 [양력 3월 24일]<정미> 조금 있으니, 진도의 지휘선 한 척도 적에게 포위되어 거의 구하게 되지 못하게 될 즈음에 우후가 곧장 달려가 구해내었다. 경상좌위장과 우부장은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끝내 구하지 않았으니, 그 괘씸함을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참으로 통분하다. 이것을 경상도 우수사에게 파 물었다. 한심스럽다. 오늘의 통분함을 어찌 다 말하랴. 모두 경상우수사 (원균)의 탓이다. 돛을 달고 소진포로 돌아와서 잤다. 아산에서 뇌와 분의 편지가 웅천 진중에 왔고, 어머니 편지도 왔다.
6월 5일 [양력 7월 3일]<무자> 이홍명(李弘明)이 왔다. 저녁에 밥을 먹은 뒤에 돌아갔다. 경상수사가 웅천의 적도들이 혹감동포(부산시 북구 구포동)로 들어올 수도 있으니 들어가 치자고 공문을 보냈다. 그 음흉한 꾀가 가소롭다.
7월 13일 [양력 8월 9일]<을축> 저녁나절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광양․두치 등에는 적의 꼬라지가 없다"고 했다. 흥양현감이 들어오고 우수사 영감도 들어왔다. 순천 거북함의 격군으로서 경상도 사람인 종 태수 (太守)가 달아나다가 잡혀 사형에 처했다.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가 와서 보고 흥양현감(배흥립)이 들어 와서, "두치의 잘못된 거짓 보고와 장흥부사 류희선(柳希先)의 겁 내던 일을 전했다.
7월 21일 [양력 8월 17일]<계유>경상우수사(원균)와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함께 와서 적을 토벌하는 일을 의논하는데, 원수사의 하는 말은 극히 흉칙하고 말할 수 없는 흉계이다. 이러하고서도 일을 같이 하고 있으니, 뒷걱정이 없을까? 그의 아우 원연도 뒤따라 와서 군량을 얻어서 갔다. 저녁에 흥양도 왔다. 땅거미질 때에 돌아왔다. 초저녁에 오수(吳水) 등이 거제 망보는 곳에서 와서 보고하기를, "영등포의 적선이 아직도 머물면서 제 맘대로 횡포를 부린다"고 했다.
7월 28일 [양력 8월 24일]<경진> 아침에 체찰사에게 가는 편지를 고쳤다. 경상우수사(원균) 및 충청수사(정걸)과 본도우수사(이억기)가 함께 와서 약속했다. 그러니 수사 원균(元均)의 나쁜 마음과 간악한 속임수는 아주 형편이 없다. 정여흥(鄭汝興)이 공문과 편지를 가지고 체찰사 앞으로 갔다. 순천부사․광양현감이 와서 보고 곧 돌아갔다. 사도 첨사(김완)가 복병했을 때에 잡은 보자기 열 명이 왜놈옷으로 변장하고 하는 짓거리가 매우 꼼꼼하다 하여 잡아다가 추궁을 하니, "경상우수사(원균)가 시킨 일이다."고 했다. 곤장만 쳐서 놓아 줬다.
5월 30일 [양력 7월 17일]<정미> 아침에 왜놈들과 도망가자고 꾄 광양 1호선 군사와 경상도 보 자기 세 명을 처벌했다. 경상우후가 와서 봤다. 충청수사가 왔다.
보다보니 거의 1/10은 경상 우수사 원균욕임ㅎㅎ
2월 16일 [양력 3월 26일]<기미>대청으로 나가니, 함평현감 조발(趙撥)이 논박을 당하여 돌아가려 고 하므로 술을 먹여서 보냈다. 조방장 신호(申浩)가 진에 이르 러, 교서에 숙배하고서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에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옮기어 정박했다. 밤 열 시쯤에 출항하여 춘원도(통영시 광도면 끄승개)에 이르니 날은 밝아 오는데도 경상도 수군은 와 있지 않았다.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늘날 적의 세력이 이와 같이 왕성하여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은 모두 해전으로써 막아내지 못하고 적을 마음대로 상륙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상도 연해안 고을이는 깊은 도랑과 높은 성으로 든든한 곳이 많은데, 성을 지키던 비겁한 군졸들이 소문만 듣고 간담이 떨려 모두 도망갈 생각만 품었기 때문에 적들이 포위하면 반드시 함락되어 온전한 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지난번 부산 및 동래의 연해안 여러 장수들만 하더라도 배들을 잘 정비하여 바다에 가득 진을 치고 엄습할 위세를 보이면서 정세를 보아 전선을 알맞게 병법대로 진퇴하여 적을 육지로 기어 오르지 못 하도록 했더라면 나라를 욕되게 한 환란이 반드시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분함을 더 참을 수 없다.
4월 29일 [양력 6월 8일]<무오>
처음에 이순신 장군 관직 자체가 전라좌수사였는데 ㅋㅋ씨1발 전라도사람 등용안하면 다른데서 다 데려오냐임마
ㄴ경상도 연해안 고을이는 깊은 도랑과 높은 성으로 든든한 곳이 많은데, 성을 지키던 비겁한 군졸들이 소문만 듣고 간담이 떨려 모두 도망갈 생각만 품었기 때문에 적들이 포위하면 반드시 함락되어 온전한 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천 거북함의 격군으로서 경상도 사람인 종 태수 (太守)가 달아나다가 잡혀 사형에 처했다.
아침에 왜놈들과 도망가자고 꾄 광양 1호선 군사와 경상도 보 자기 세 명을 처벌했다.
밤 열 시쯤에 출항하여 춘원도(통영시 광도면 끄승개)에 이르니 날은 밝아 오는데도 경상도 수군은 와 있지 않았다.
Reference :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1001&dirId=11&docId=14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