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이 집안에 있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출처가 삼국사기? 3세기중반에 새겨진 관구검 기공비에는  완도성만 나오고 광개토비에도 국내성은 나오지않습니다 . 집안에는 완도성만있고 , 국내성이 다른곳에있거나 국내성이 다른성이 아닐까요?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国内城을 不而城(不耐城)으로 보고있습니다 . 不而城은 낙랑군동부도위에 있는 不而县이고 ,원산만인근에 있습니다 . 삼국지기록에 관구검은 환도성을 점령하고  고구려왕을 1000여리나 쪼찾고 ,고구려왕이 남옥제에 도망갓는데 국내성에서 강원도 안변군까찌 300키로가 넘꼬 여기는 동예의 땅인데 不耐秽라는명칭도있습니다  평양동쪽150키로되는곳입니다 


그리고 완도성이 198년에 공손씨에 의해 도륙당했고 244년에는 관구검이 쳐부셧고 267년에 重修가되였지만 342년에 다시 모용선비족에의해 패쇠되였습니다 ,그러면 완도산성코밑에있는 국내성이 안전할수가 없겟죠 .  고구려완도성이 재더미가 되면 사람들은 강원도북부에있는 不耐城으로 천도하지 않았슬까요 .고구려왕이 기록에 남옥저로 자주 도망갑니다  그리고 不耐城의 발음이 puru na 라고 하는데 태조왕이 천도한 평양성도 puru na 임 , 위나암성과 완도성이 같은것처럼 . 不耐城과평양성의 na  는  고구려어의 땅内고  puru 는 크다는의미인것같습니다 그러니 不耐城-平壤城은 순고구려어고 한국어로하면  푹누리성, 완전중국식변역은 大野城인것임 . 푹은 푹짐하다 ,푹빠져있다등 한국어에서  많이 ,깊이 ,크게라는 의미로 남게되엿습니다 . 백두산옛이름 不咸도 고구려어 큰산이란뜻이고 일본어 부찌야마와 대응이됩니다   근데 왜 불,평은 크다 넓다 깊다인가 . 평양지역은 대평원이고 개마고원에서 남쪽으로 맨산만빽빽한데 원산만지역에 오면 평원이 생김니다 .한반도 동북부에 유일한 평원이지요 ,그러니 큰평야  불내성이라 이름지을수있지요 .  그리고 평양성도 고구려가 낙랑을 점령한후에 지은이름이지  한사군때는 조선현왕검성이라 불럿습니다 ,사서에나오는 고구려 성이름이 평양천도전 또다른 평양성이 발견된다하여 일부학자들은 집안완도성인근에 다른 평양성이 존재하지않았을까 추척하는데 나는  이것은 원산평원의 불내성이고 ,고구려완도성이 함락되거나 패쇠되면 피난하여 다니는 별도이고 ,예맥인들이 대평원에 도음을 지으면 모두 大野성이라 이름짖는 슴관이 있다고 봅니다 ,


불내성이 국내성으로 되버린점에대해서는 고려시대사람들이 800년전에 그것도 남의 나라강역이되버린 완도성에대해 정확하게 알지못하고 완도성에대한 기역보단 불내란 지명에 익숙하나 이것마저 어리버리하여  국내성으로 오필하고  국내가 완도다라 혼돈한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