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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권위 있는 논평 전문지인 '인민논단'이 방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중국의 10대 사회 심리적 병증을 짚어냈습니다. 우리가 먼저 겪었거나 겪고 있는 증상들입니다. 그래서 남의 얘기 같지 않습니다. 먼저 10대 증상들을 간단히 소개해보죠.
1. 신앙 결여 : 신앙이 반드시 종교적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조 결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가치의 다원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가치 판단 체계 자체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도덕에 대한 관념이 흔들리고 희미해졌습니다. 가장 많은 중국인이 꼽은 병증입니다.
2. 방관자 심리 : 모든 사회적 현상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그저 구경꾼일 뿐입니다. 내 이웃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습니다. 냉담합니다. 내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아예 관심을 꺼버립니다.
3. 사회적 노이로제 :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한순간 극빈층으로 밀려날까봐 불안합니다. 노후에 대한 보장이 없어 미래가 막막할 따름입니다. 모든 사람이 장기적인 긴장과 초조함에 시달립니다.
4. 습관성 회의 : 무조건 의심하고 봅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안전감은 결핍 상태입니다.
5. 과시 욕구 :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어쩔 줄 모릅니다. 한껏 허세를 부립니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고 깔볼까봐 더욱 치장하고 전시합니다. 뿌리 깊은 자격지심은 과장된 허영심으로 표출됩니다.
6. 트집 잡기 : 세상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비뚤어집니다. 무조건 트집을 잡고 딴죽을 잡습니다. 좋은 일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비아냥거리고 조롱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7. 향락주의 : 목숨을 걸고 놉니다. 더욱 강한 자극을 찾습니다. 변태적인 쾌락에 함몰돼갑니다. 마음이 바라서가 아니라 현실을 잊기 위해서 향락에 매달립니다.
8. 극단적 폭력 : 조그마한 자극에도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합니다. 쉽게 화를 내는 풍조 속에 사회는 광포하고 야만적으로 변해갑니다.
9. 인터넷 중독 : 인터넷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망에 갈수록 빠져듭니다. 잠시도 통신기기를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인터넷 의존증이 심각해집니다.
10. 자학 심리 : 스스로를 비웃고 괴롭힙니다.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내 것은 모두 뒤떨어져 보입니다.
인민논단은 이번 설문 조사를 진행하면서 재미있는 특징을 찾아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10가지 병증 가운데 상당수가 공직자와 관련돼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응답자가 이런 병증을 가장 심각하게 겪는 집단으로, 또는 유발하는 원인으로 공무원을 지목했습니다.
우선, 응답자의 절반이 훨씬 넘는 57.5%가 신앙 결여 현상이 가장 심각한 그룹으로 공무원을 꼽았습니다. 공무원들에게 아무런 신조가 없고 그러다보니 도덕성도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지난해 중국 사회를 시끄럽게 한 '왕린 대사 사기사건'을 들었습니다. 왕린 대사는 기공으로 사람을 치료한다고 속여 많은 고위 관료와 부유층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아 챙기다 해외로 달아난 인물입니다.
이 왕린 대사에게 부패 공무원의 대명사가 돼버린 류즈쥔 전 철도부 부장(우리의 장관)이 찾아가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비법'을 물었다고 합니다. 왕린은 ‘당신의 운명에 교량이 부족해 고비를 넘기지 못하니 다리를 많이 건설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류 부장은 실제 철도 부장으로 있으면서 필요 이상의 다리를 건설했지만 중국 역대 가장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부패 관료라는 악명을 피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접한 중국인들은 '공무원이 백성에게 묻지 않고 귀신에게 묻는다'며 개탄했습니다. '관가의 미신'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겼습니다. 공무원 집단의 '신앙 결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꼬집습니다.
'방관자 심리'가 가장 기승하는 집단도 공무원으로 꼽혔습니다. 응답자의 27%가 지목했습니다. 방관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지식계층, 청소년, 심지어 백수까지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중국인들의 뇌리에 박혀있는 공무원의 이미지는 이렇습니다. 항상 일반인보다 높은 단상 위에 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릅니다. 사회적 자원을 독점합니다. 계속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내립니다. 반면 민생을 살피고 개선하는 데는 무능합니다. 공무원의 이런 모습은 강제 철거 현장을 지휘하는 냉혹한 얼굴 속에, 각종 현장을 방문해 드러내는 무심한 태도에, 재난 현장에서 흘리는 미소에서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습관성 회의의 원인으로도 공권력이 꼽힙니다. 41.2%로 가장 많은 사람이 '정부의 얘기를 아무 것도 못믿겠다'고 답했습니다. 정부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향락주의의 원흉으로도 공무원이 뽑혔습니다. '가장 오락에 목숨을 건 집단'으로 36.5%가 공무원을, 27.1%가 청소년을 선정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습니다.
극단적 폭력의 배경으로는 '사회적 불평등이 커지면서 사회적 약자 계층의 박탈감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답이 42.4%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 역시 정부의 실정을 꼬집은 셈입니다.
중국의 인민들은 급격한 변화에서 오는 가치 혼란과 부재를 고통스러워합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항상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현실에 뛰어들 힘도, 용기도 없다보니 방관자가 되고, 인터넷에 매달리며 향락으로 현실을 잊으려 합니다. 그로 인해 겪는 좌절감을 폭력이나 트집 잡기, 자학으로 풉니다.
문제는 이런 고통을 치유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앞장서야할 공공 부문이 오히려 가치 붕괴를 부추기고 방관하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중국의 인민들은 정부를 비롯한 공공 사이드가 자신들을 돕기는커녕 더 절망으로 이끌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관영매체인 인민논단이 이런 민감한 내용의 조사 결과를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를 송두리째 무너트릴 수 있는 이런 악성 병증을 정부가 고치는 대신 악화시키고 있다니, 중국 지도층에게 모골이 송연해질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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