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賦役)이 번거롭고 무거워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는 데다가 형벌마저 매우 가혹하므로 군졸이나 백성들의 원망하는 마음이 뱃속에 가득한데도 호소할 길마저 없어 그들의 마음이 이산된 지 벌써 오래입니다. 그러므로 왜국은 정수(征戍)나 요역(徭役)이 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그들을 좋아하고 있는데 왜적이 또 민간에 명을 내려 회유(誨誘)하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모두 왜적의 말을 믿어 항복하면 반드시 살고 싸우면 반드시 죽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연해의 무지한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의복도

바꾸어 입고서 왜적을 따라 곳곳에서 도적질하는데 왜적

은 몇 명 안되고 절반이 배반한 백성들이니 매우 한심합니



선조 27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6월 28일(병진) 4번째기사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이 기록 이외 삼국의 의병 기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