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사를 보면 전주 이씨 왕족들이 아내로 맞아들인 성씨가 대부분 파평 윤씨, 여주 민씨, 한씨, 경주 김씨 등이 최다인데..

유독 신라 왕족인 밀양 박씨만은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신라계인 김씨는 아내로 선뜻 받아들인 반면, 박씨(밀양)만은 기피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DNA적인 거부감에서 찾고 싶다.

박씨야말로 오리지널 신라계로서 그 폐쇄적인 족내혼으로 DNA가 너무 단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취약하다. 즉 어느 정도는 DNA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그 중에 특출난 유전자가 나오는 법인데,

너무 단일한 DNA 안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냥 고만고만한 놈들만 계속 복제되는 것이다.

박씨 중에 머리 좋은 인물이 없는 이유다. 박씨는 신라 초창기부터 장수 혈통이며, 운동 선수 중 유명한 선수는 있을지언정 머리 쓰는 일에는 약하다.

그 단일하고 균일한 DNA가 족내혼을 할 경우 유지되는 장점이란 지배층부터 가져왔던 옹졸하고 고집스러운 특권의식의 반영일 뿐

자연선택적인 측면에서는 너무 부적절한 것이었다.

전주 이씨들은 이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유전적 결합이 있었던 김씨를 왕비로 선택한 것이다.

또 하나 자신들이 신라 성골이라는 허망한 환상에 사로잡혔던 밀양 박씨들이 조선을 역성에 의해 세워진 국가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 반골 의식 때문에 전주 이씨에게 찬밥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이조 500년 동안 벼슬다운 벼슬을 한 밀양 박씨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결국 전주 이씨가 가장 멀리 하려 했던 건 박씨이며, 온건한 이씨 덕분이지만, 강경파들이 득세했다면 박씨들을 한반도에서 씨를 말렸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