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는 패스트푸드점같은거다.






가야를 지배하는 패스트푸드점 '미마나MIMANA(任那 = 금관가야 , 대가야 )' 가 


백제 왕자 중 하나를 선발해 열도로 가서 패스트푸드점을 차리게했다.


어쩌어쩌다보니 오사카에 패스트푸드점을 열게되어 왜왕倭王을 인질로 잡고 최초의 쇼군이 된 것이다.


칠지도에 보면 백제 왕자가 왜왕이 된 고로 칠지도 조서를 만들어 널리 후세에 전한다라고 나온다.


백제 왕자는 패스트푸드점 '미마나MIMANA'로부터 감자튀김 재료 얻듯이 미마나의 아주 좋은 품질의 철鐵 덩어리를 수입한다.

그걸로 철제 무기 , 철제 갑주 , 철제 농기구를 만드는건데.  

수입의 대가는 잘 훈련된 왜군倭軍을 지속적으로 미마나로 보내주는 것이다. 


미마나는 수십개의 가라 소국들을 지배하는 전라도 섬들 ~ 거제도 ~ 김해 ~ 부산의 해상 해적 세력이기 때문에 

인력의 충원이 필요했다. 


이런 고차원적 교역은 백제 , 신라와도 이루어졌다. 


왜왕에게 천자문 , 논어를 가르쳐주고 왜인들에게 농경도 가르쳐주고 말타는 법도 가르쳐줄 필요성을 느낀 쇼군은

백제 , 신라를 고구려의 남침으로부터 지켜주는 인력 파견을 대가로 기술자를 제공받는다.

하도 고구려 때문에 다급했고 내분이 극심했던 백제 , 신라는 왕자를 인질로 보낸다. 


광개토,장수왕의 남침이 극심해지면서 도래인 쇼군과 미마나MIMANA는 그야말로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도래인 쇼군은 야마토의 대왕을 칭하고 중국에 사신을 여러차례 보내어 조공하고 야마토 왕으로 책봉받는다.

그리고 아울러 도래인 쇼군은 중국에게 자신을 신라,백제,미마나,가라,진한,마한을 지도하는 도독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라고했다.

중국은 그렇게 임명해줬다. 그만큼 이들 나라들은 땅덩이가 넓은 도래인 쇼군에게 꿀렸던 것이다.

바다를 건너가 이 교만스런 도래인 쇼군을 칠 수도 없고 또 자기들을 고구려의 남침으로부터 보호해주고있었고 

또 나름 정당한 교역을 서로간에 하고있었으니 도래인 쇼군은 마치 위기의 한반도의 맥아더와 같은 존재였다. 


광개토비에도 나오듯 이런 도래인 쇼군의 막강한 영향력은 고구려로서도 굉장히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열심히 남침하며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군량을 이동시켜 전장의 무대가 굉장히 넓어지는 고구려군에게 해로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며

고구려군의 엄청나게 먼 후방에서 기습적 상륙작전을 펼치는 미마나MIMANA 왜군은 당시에 통신체계가 발달하지않았던 시기

고구려군으로선 굉장히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미마나MIMANA 왜군은 고구려로부터 떠는 반도인들 , 반도 거주 중국인들을 안전하게 배를 통해 호송하고 반도로부터 여러가지 아이템들도

획득하고 주요 고구려 군사기지를 파괴하거나 고구려 장수를 사살하는등 여러가지 전과를 올리고 


도래인 쇼군은 사신을 반도로 보내 중국으로부터 얻은 엄청난 관작을 과시하며 백제 , 가라 , 신라 , 미마나의 여러 왕들에게 칙서를 보내 미마나MIMANA 와 협력하여 고구려를 격파하라고 자주 명령했다. 



미마나MIMANA는 왜군을 동원해 전라북도 , 전라남도를 정복 후 4개의 현縣들을 설치하여 왜군 장수들을 그 지역의 

왕들로 세워놓는다. 왜군 장수들은 미마나 토기도 사용하고 백제 도자기도 쓰고 왜倭식 전방후원분 묘제 , 왜倭식 횡혈식석실분도 쓴다.


그런데 왜왕을 인질 삼은 도래인 쇼군의 힘이 열도를 제패하게 되면서 

도래인 쇼군은 미마나MIMANA와 내통하는 규슈번을 견제하기위해 백제에게 전라도의 왜군 장수들과 영토를 준다.

왜군 장수들은 백제 동성왕 시절 동성왕이란 중간자를 통해 중국과 인연이 맺어져 중국으로부터 전라도의 왕들로 책봉받는다.

왜군 장수들은 백제의 왕족이 되어 백제에서 떵떵거리며 살려고했다. 그래서 백제로 통합했다. 


이 일로 미마나MIMANA는 도래인 쇼군과 단교를 하게된다. 그리고 신라에게 멸망한다.




규슈는 도래인 쇼군을 쳐서 일가 전체를 죽이고 왜왕을 독립시켜준다. 







서기 6세기까지 일본은 철도 못뽑고있었음.



삼성한국이 일본반도체의 경제적 속국인것처럼


당시 왜국 역시 미마나mimana의 경제적 속국이라는건 필연적임.



서기 5세기 후반 도래인 쇼군 왜왕이 중국으로부터 받은 '신라 백제 임나 가라 모한 진한' 도독 제군사라는 총사령관 직위는 그냥 열도 내에 있는 신라인 백제인 임나인 가라인 모한인 진한인  이 도래인들의 

총대장으로 임명한거에 불과.

또 도래인 쇼군 왜왕은 도래인을 통해 열도를 문명화시켜야했으니 도래인들을 고구려의 남침으로부터 보호하며 

해상작전을 통해 그들을 열도로 이주시키기위해선 그만한 '간판' 작위가 필요했음.

정작 반도 땅에선 그런 작위가 '통치적'인 관점에선 아무런 효력이 없었음. 


백제 , 신라가 도래인 쇼군 왜왕에게 왕자를 인질로 보낸건 사실 '인질'이 아니라

담보임. 기술자들과 함께 깜.  기술자 , 담보를 보내면 도래인 쇼군 왜왕은 반도를 위해 멸사봉공해야함. 도래인 쇼군 왜왕 따위가 왕자를 담보로 받을수있는 것도 '미마나mimana'라는 강력한 반도 왕국의 존재 덕분임.




일본서기를 보면 전라북도,전라남도엔 미마나(임나) 왕국의 4개 현縣이 있었다고나오며 그 현 이름도 모두 적혀있어.


야마토부府의 왜인倭人 장군들 조차 미마나MIMANA 왕의 지시를 따라 신라 구원에 출정하고있는 것도 적혀있어. 


고고학적으로 봐도 전라도에선 미마나 투구 , 갑주가 부장된 [대가야 묘제]가 출토되고있다. 


그리고 일본열도에선 서기 6세기까지 철을 뽑아내지못했다. 



고고학과 문헌 모두 미마나MIMANA의 위상을 적고있다. 








최초 왜왕이 도래인 쇼군이며 백제 왕자란 증거



1. 무령왕과 왜왕이 형 , 동생 관계라는 거울 유물 


2. 칠지도에 "백자 왕세자가 성음에 의지한고로 왜왕이 되었다 조서를 만드니 후세에 전하라"

라고 적혀있다.


3. 일본 기록들에 보면 오사카에 백제란 나라가 있던걸로 나온다. 이게 칠지도의 백자 왕세자의 

'백자국' 그러니까 서기 4세기 후반경 오사카에 세워진 제2의 백제국인거같다. 

의문의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는데. 인덕천황 시기 기록에 보면 야마토의 장군이 백제국으로 가서 곡식을 거두는 미야께를 설치하고

백제 왕족 '주군'을 포박하고 패는게 나온다. 

야마토가 서울까지 가서 백제왕족을 두드려팻을리는 없다. 그러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백제'는 무엇일까. 북한사학계에선 이를 일본열도 기나이 지역 그러니까 오진덴노릉 , 닌토쿠덴노릉이 있는

 

오사카 지역에 '백제'란 나라가 있었다고 보고있다. 



4. 야마토 웅략천황의 철검이 출토되었는데. 그 철검에 '와카 타케루 대왕의 철검'이라고 나와. 그 천황이 중국에 보낸 상표문을 보면 자신의 선조가 열도를 정복했다고말해. 그 선조는 '오구나 타케루(일본무존=야마토타케루)'를 말해. 웅략천황과 동시기인 백제 개로왕은 '근개루'란 칭호를 썼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와. 백제어에서 '근'은 '크다'는 뜻.


와카 타케루 대왕은 중국에 보낸 상표문에 고구려의 백제침공과 개로왕의 죽음 당시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다고적고있어. 이건 와카 타케루가 백제의 왕자 혈통이란 증거야.



5. 일본서기에서 14대 천황은 중애천황이며 그 아내인 신공황후는 근구수왕과 동시대 인물이다. 

중애천황의 아버지는 '오구나타케루'인데.  근구수의 아버지는 '근초고왕(여구)'이다.

오구나는 경행천황의 두번째 아들로 나오는데. 여구는 비류왕의 두번째 아들이다.


여구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는 ". 그는 체격이 크고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식견이 넓었다."라고 소개한다.

오구나는 일본서기에선 '키가 1장이나 되며 용모가 괴위하고 웅략의 기상이 있었다.'라고 적혀있다.

 

둘 다 같은 인물이기에 표현이 서로 유사한 것이다.


백제 왕자 '오구나'가 일본천황이 되었다.



  진(晉)서지리지 평주 


    평주(平州) 

생각컨대 우공(禹貢)에서 기록하기를 평주는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국(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요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창려(昌黎) 요동(遼東) 현토(玄莵) 대방(帯方) 낙랑(樂浪) 등의 군국(郡國) 5으로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




 진(晉)나라에서 알자를 파견하여 모용황을 진동대장군,평平주자사, 대선우(大單于)에 임명하였다.  <- 진서의 모용선비에 대한 기록



양직공도 등 중국 기록엔 요서 진晉평平군郡에 예속된게 백제군百濟郡이고 백제군의 지배를 백제가 받는다라고 하였다. 

모용선비(=요서 라마동고분=요서 진평군)의 부하들 부여족이 바다를 건너 백제를 정복하고 백제군을 설치한 것이다.


삼국사기 등 한국 기록들엔 이 사건을 백제 책계왕이 한족,맥족의 연합군에게 사살당하고 





백제 분서왕이 낙랑태수(이 무렵 낙랑태수는 요서 진평군에 있음.)가 보낸 여장 자객 '황창랑'에게 암살당한다. (황창랑은 일본서기엔 여장하고 백제귀신들과 관련있는 구마소타케루를 죽인 

오구나타케루로 나온다.)

책계,분서왕의 연도는 삼국사기에 잘못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부여씨 백제가 책계 분서 계통 백제를 박살내고 세워진 것임을 숨기려는 것이다. 

부여씨 왕조는 비류왕의 아들 근초고왕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비류왕은 분서왕 사망 후 즉위한 자다.  근초고왕이 황창랑=오구나타케루와 동일한 인물이란 증거는 많다.

 

예를 들어 '오구나'하고 근초고왕의 이름 '여구'가 서로 비슷한게 그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