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수메르 BMAC인 , 시베리아 안드로노보 하플로 R(선先 스키타이)이 알타이를 정복. 거기서 하플로 Q(주족周族의 선조) , 하플로 C (선先 동호)와 만나고 쿠르간 문화를 같이 이룸.
서북 중국~요서에 하플로 N(=유웅씨=유융씨)이 거주하며 그들은
요서에서 홍산문화 , 하가점하층문화를 세움.
알타이의 옥기 문화는 시베리아의 빗살무늬토기 루트를 통해 요서로
전파된다. 시베리아 고인골은 거의가N*과 N1C형이다.
기원전 10세기경 요서 하플로 N은 기후변화로 생활방식을 산에서 사는걸로 바꾼다. 그리하여 산융山戎(Dashanqian, Upper Xiajiadian Culture =
요서 하가점상층문화)이 된다.
산융은 요서 내몽고 적봉의 산융(하플로 N=공병식동검 돌널무덤 문화) , 난하의 고죽, 영지(하플로 O3=유병식동검문화) , 요서 대릉하의 도하(=하플로 C=요서 십이대영자 비파형동검 돌널무덤 토광묘 문화)에 걸쳐 공병검 , 유병검 , 비파검으로 구분되는 3개의 청동검 문화권을 구성하고 이 문화권은 전부 통칭 '하가점상층문화'라 불린다. 자신들 산융은 내몽고 적봉 홍산에서 돌널무덤 문화를 누리고 공병검 , 비파검을 같이 쓴다.
한편 기원전 13~10세기경 하플로 Q는 하플로 R로부터 받은 전차문화를
가지고 중국 서북부로 가서 전차를 아즈텍마냥 야만스러운 상나라 야만인들에게 수출하며 놀다가 돌연 내려와 상나라를 부수고 예법이 갖추어진 화려하고 장엄한 [주周 문명]를 세운다.
기원전 6세기경 요서 대릉하의 하플로 C(도하)는 자신들이 운영하던 십이대영자 비파형동검 문화 운영을 그만두고 요동으로 이주해서 정가와자 비파형동검 토광묘 목곽묘 문화를 세운다.
한편 요서에서는 기원전 6~기원전 4세기에 걸쳐 산융(내몽고 적봉 지역)이 몰락하고 문명의 중심이 요서 대릉하 조양시로 옮겨간다. 이때부터 동호東胡라는게 사료에 등장한다.
요서 객좌 남동구 비파형동검 석곽묘 문화 - 능원 삼관전자 비파형동검 토광묘 문화가 이에 해당한다.
이 둘은 하가점상층문화의 지역 요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원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있다.
객좌 남동구는 중국 문화의 특징인 청동예기(靑銅
禮器)·병기·거마기가 주로 나온다.
능원 삼관전자에서 출토된 동정(銅鼎)과 장호삼천동과 등은 모두 중원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분명 중원지역에서 수입된 것이다.
분명 연燕을 통해 들어온 것인데.
중국으로부터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산융.고죽,영지,도하가 야만족 상태를 벗어나 북아시아 호胡(동호)의 령도 하에 적극적인 중원문화식 개화를
밟아가던게 아닌가 싶다.
당시 요동~반도 북부에선 탁자식 고인돌이 널리 분포하고 사료 [맹자]에선
이것이 [맥貊]으로 나온다. [맥貊 원시 문명]이라 부를 수 있겠다.
고고학과 사료 [위략]을 통틀어 보면
기원전 5세기경 평양으로 중심이 옮겨간 맥貊은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비파형동검의 말기단계 세형동검을 만드는데. 이것은 [한국식 동검]으로
비파형동검과는 구분되고싶어하는 조선인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갈석산 , 낙랑 , 고죽 , 조선이란 지명이 요서 , 북경 노룡현 난하 , 평양에 동시에 존재하는걸 볼 때 요서의 호胡가 평양으로 이동하였다고 추측할 수 도 있다. 그 이동은 위만 때 절정에 달해 [조선]은 망하고 [낙랑]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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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s of ancient Y-DNA from China
This study from Jilin University on ancient Chinese Y-DNA features 119 samples from 13 archaeological sites in northern China. That's quite impressive considering that aDNA is extremely difficult to extract from Y-chromosomes. A paper from 2010 on the Tarim Basin or Xiaohe mummies listed seven R1a1a results, while here we have 11, plus a K*. So it looks like at least some of these are from newly tested Tarim Basin samples.
Northeast
Niuheliang, Hongshan Culture, 5000 YBP, 4 N, 1 C*, 1 O
Halahaigou, Hongshan-Xiaoheyan Culture, 4500 YBP, all N
Dadianzi, Lower Xiajiadian Culture, 3600 YBP, 3 N, 2 O3
Dashanqian, Upper Xiajiadian Culture, 3000 YBP, 1 C, 3 N1c, 1 N, 2 O3-M117, 2 O3-M324
Jinggouzi, 2500 YBP, all C
Northwest
Xiaohe, Xinjiang, 3500-4000 YBP, 11 R1a1a, 1 K*
Tianshan Beilu, Hami, Xinjiang, 3300-4000 YBP, 5 N, 1 C
Heigouliang, Xinjiang, 2000 YBP, 6 Q1a*, 4 Q1b, 2 Q
Pengyang, Ningxia, 2500 YBP, all Q1a1-M120
Taojiazhai, Qinghai, 1500 YBP, all O3-M324
North
Miaozigou, Central-South Inner Mongolia, Yangshao Culture, 5500 YBP, all N
Sanguan site, Yu County, Hebei, Lower Xiajiadian Culture, 3400-3800 YBP, all O3
Hengbei site, Jiang County, Shanxi, 2800-3000 YBP, 9 Q1a1, 2 O2a-M95, 1 N, 4 O3a2-P201, 2 O3, 4 O*
http://eurogenes.blogspot.com.au/2013/01/lots-of-ancient-y-dna-from-chin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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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 청동기시대 N은 동북쪽에선 많이 발견되는데, 서북쪽에선 아직 못 본 것 같다. R은 있다. 한 논문에 알타이 지역 청동기 쿠르간에서 R 4, Q 4, C 1구가 나왔다. Tsagaan Asga & Takhilgat Uzuur-5 Kurgan sites, Westernmost Mongol Altai, 2900YBP-4800YBP: 4 R1a1a1b2-Z93(B.C. 10C, B.C. 14C, 2 period unknown), 3 Q1a2a1-L54(period unknown), 1 Q-M242(B.C. 28C), 1 C-M130(B.C. 10C) 1.246.*.*
출처: Hollard et al., ‘Strong genetic admixture in the Altai at the Middle Bronze Age revealed by uniparental and ancestry informative makers, Forensic Science International: Genetics, published online 4 June 2014
위 보다 앞서는 유적은 24,000년전 말타 보이(Y-DNA R*, mtDNA U), 17,000년 전 아폰토바-고라 유골(Y-DNA Q, mtDNA R)이 있슴. 단, 아폰토바-고라 유골은 현대 R이 오염시켜 정식 발표는 유보되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Q1a1-F1215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아폰토바-고라 유적에서 나온 옥기들이 1만년 이후의 홍산문화 옥기와도 유사한 모양이라 어떤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알타이지역은 금속이 많이 매장돼 있어 금속문화가 일찍부터 발생했기에 정복자가 된 듯 하다.
주나라 때는 모르겠으나, 그 보다 좀 전인 3500-4000YBP의 타림분지 동부 라포박 지역에 있는 소하묘지에선 아름다운 백인 여성 유골이 발견되었슴. 이홍걸 논문에 보면, 이 지역에서 수거된 남성 12구 중 11구는 R1a1a, 1구는 K*로 나옴.
주나라를 서북 유목민족이 세웠다는 설이 있는데, 위 논문을 보면 주나라 건국 직전 서북방엔 R과 Q가 지배층인 듯 함. 그러나, 정확한 주족 하플로는 아직 모름. 한편, 곡GOK은 하늘이란 뜻이고 이를 명칭으로 쓴 것이 후대 돌궐(GK-TYRK: 천상의 투르크)인데, 만약 돌궐 지배층이 이들과 같은 혈통이라면 R보다는 Q일 가능성이 더 큼. 여러 증거상 돌궐의 지배층이 Q로 추정되기 때문에...(R이 주족이라면 현재 중국에 너무 희소함.)
작년에 나온 <알타이문명론> 책에 알타이문명이 요서문명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하는데, 양 지역의 옥기가 많이 유사하다. http://blog.sina.com.cn/s/blog_6a4e1c6f0101d1x5.html 문제는 신석기 이전(적어도 6천년 이전)의 알타이에서는 아직 N, O3, C 등(요서 하플로)이 발견되지 않았고 요서에서는 아직 Q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요서에 Q도 있다고 쓴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추측같다. 아직 그런 논문은 못 봤다. 그런 논문이 있다면 말해 주기 바람.) 따라서, 누가 문화전파 했는지는 아직 미상임.
앞에 하나 빼먹은 것이 있는데, 서북지역에서 N과 C도 나왔다. 즉, 신장 합밀지구에서 조사한 6구 중 5구는 N(x NIa, x N1c), 1구 C*이다. 연대는 3900~3300년 전이다. 대부분 측와굴신장이고 수혈식토광묘와 수혈식토배묘이다.(즉, 구덩이 파고 그냥 묻었다는 뜻) 대개 단인장이고 두 사람 이상은 드물다. 부장품은 대부분 도기류이며, 청동기와 골기 등도 일부 있다. 청동기는 무기도 있긴 하나 장식품 같은게 많다. 도기는 한 묘에 하나씩 부장되고 두 개 이상은 드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유목민일 수는 있으나 전투적 기마민족이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서몽골 R과 Q가 쿠르간에서 발견된 점이나, 2500년 전 영하지역 유적(4구 모두 Q)을 보면 한 묘마다 청동 무기류와 동물뼈, 순장 등이 수십 건 씩 나와서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리적으로도 영하지역(감숙성과 섬서성 사이)은 주나라 수도 서쪽에서 멀지 않고, 산서성 남부의 붕국은 서안에 가까운 동쪽이다. 즉, 유적들 중 서안에 가장 가까운 동서에 Q가 분포. // 전에 읽은 바로는, 주나라는 말과 관련된 용어가 매우 세분돼 있어 이들이 기마유목민족 출신임을 알 수 있으며 원래 감숙성 지역에 살다가 섬서성 주원으로 이동했다고 함.
QTquint** :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금빛/ 고대 서북중국에도 N이 발견되었음. Tianshan Beilu, Hami, Xinjiang, 3300-4000 YBP, 5 N, 1 C <http://eurogenes.blogspot.com.au/2013/01/lots-of-ancient-y-dna-from-china.html>
http://gall.dcinside.com/board/comment_view/?id=history_qna&no=9526&page=3&search_pos=&s_type=search_all&s_keyword=N
"
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와 주변 문화의 관계........
석곽묘가 나온 객좌 남동구유적43)에서는 중국 문화의 특징인 청동예기(靑銅
禮器)·병기·거마기가 주로 나오고, 또 조양·북표 등지에서 주로 나오는 요
령식 청동단검을 특징으로 하는 지방문화 요소도 함께 보인다. 따라서 이 무
덤은 요령성에서 청동기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연(燕) 경내 또는 이웃한 각
종족과의 교류·융합을 통해 이룩한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주나라 제후 조선의 등장)
대릉하유역 오금당(烏金塘) 토광묘에서 출토된 장호삼천동과(長胡三穿銅戈)와
환수삭도(環首削刀), 객좌 남동구 석곽묘에서 출토된 동궤(銅簋), 장호삼천동과와
거여(車軎), 포수영자(炮手營子) M881에서 출토된 말얼굴형 당로(當盧), 객좌 과목
수영자(果木樹營子) 토광묘에서 출토된 장호삼천동과와 동령(銅鈴), 능원 삼관전자
토광묘에서 출토된 동정(銅鼎)과 장호삼천동과 등은 모두 중원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분명 중원지역에서 수입된 것이다. (조선과 연나라와의 교섭)
이처럼 청동기시대에 이미 중국 동북지방인 요령지방에도 중원문화가 일
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기원전 5~4세기인 전국시대에 이르면 이
미 요령지역에는 중원 전국계(戰國系) 무덤을 대표적으로 하는 중원문화의 영향
이 많이 미치고 있다. 이후 하가점상층문화 및 요령식 동검문화 대신 새로운
전국계 문화요소가 대거 출현하는 문화 교체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고조선의 멸망)
43) 遼寧省博物館·朝陽地區博物館(1977), 「遼寧喀左南洞溝石棺墓」, 『考古』 77-6, 373~
375쪽.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 묘제의 변천과 주변 문화와의 관계 125
현재까지 기원전 5~4세기의 유적으로는 당시 주민이 살았던 문화층 및 저
장시설과 무덤들이 알려지고 있다. 무덤에는 돌무덤과 토광묘·목곽묘가 있
다. 특히 전국시대에 오면 요령지역에서도 지역 자체의 매장풍습을 기본으로
하면서 중원문화의 영향을 받아 토광묘가 많이 조영되기 시작했다. 이는 이전
청동기문화 단계의 문화적 영향과 달리 기원전 5~4세기를 지나면서 중국 유
이민들이 대거 요령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중국인들이 사용하던 여러 문화가
전해진 결과일 것이다.44)
기원전 5~4세기의 토광묘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은 아직 많지 않다. 적봉
시 일대와 능원시, 객좌현, 금서현 일대에서 당시의 토광묘가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대릉하유역에서 출토하는 전국시대 무덤은 1관 1곽식의 목곽묘이고,
부장품은 피장자 위쪽의 목곽과 목관 사이에 두었다. 예를 들어 금서현(錦西縣)
서가구(徐家口) 유적의 전국묘(戰國墓)45)는 단곽(單槨)의 토광묘로서, 중국 전국시
대 무덤에서 발견되는 청동창과 부장품들이 매장되어 있어 중국 전국계 문화
의 직접적인 유입을 잘 보여 준다. 객좌현 대성자(大城子) 미안구(眉眼溝)46)에서
도 목곽묘 2기와 옹관묘 2기가 출토되었는데, 이 무덤 역시 1곽 1관식 목곽[木
槨]묘로, 주 이래로 전통적인 중원계 묘제이다(그림 29 참조).
한편 능원시 오도하자유적에서는 기원전 4~3세기에 해당하는 석곽묘 1기
와 장방형 토광묘 10기가 조사되었다(그림 27,28 참조). 오도하자 묘지는 요령성
능원시 서남, 청룡하 상류 좌안에 위치한다. 유적에서는 모두 11기의 무덤이
44) 甲元眞之(1990), 「燕の成立と東北アジア」, 『東北アジアの考古學』;송호정(2003), 앞
의 책, 245~259쪽.
45) 錦州市博物館(1983), 「遼寧錦西縣台集屯徐家溝戰國墓」, 『考古』 83-11.
46) 徐基(1985), 「遼寧喀左大城子眉眼溝戰國墓」, 『考古』 85-1.126 요하문명의 확산과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발굴되었는데, 그중 1기의 석곽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장방형의 토광
묘였다. 개별 무덤은 목관 흔적이 있으며 무덤 바닥은 모두 화수피(樺樹皮)를 한
층 깔았다. 무덤 바닥 혹은 충전토 안에서는 말의 이빨이 발견되었다. 토광묘
안에서는 슴베가 있는 유엽형(柳葉形) 검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자루 부분에 볼
록무늬가 없는 점을 제외하고는 중국 도씨검(桃氏劍, 또는 燕國劍)과 비슷하였다.
또 건창현(建昌縣) 동대장자(東大杖子) M14 무덤은 토광묘로 그 규모가 비교적 크
며, 출토된 유물 역시 가장 풍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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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건창현(建昌縣) 동대장자(東大杖子) M14 무덤은 토광묘로 그 규모가 비교적 크
며, 출토된 유물 역시 가장 풍부하였다.
동대장자 무덤은 대릉하 부근에 위치하는데, 유적에서는 총 13기의 무덤을
발굴하였으며, 대·중·소형묘로 구분할 수 있다. 대형묘의 길이는 10m, 너
비는 5~6m였다. 무덤의 구조는 장방형이며 이층 대(臺)와 목곽[木槨]의 매장시
설이 있었다. 무덤의 상부는 대부분 큰 강돌을 한 층 쌓고, 그 위에 소의 이빨
을 배열하였다. 단인앙신직지장으로 두향(頭向)은 동쪽이다.
이 가운데 M14의 규모는 비교적 크고, 길이 4.3m, 너비 2.65m, 깊이
0.9m이다. 백목(柏木, 측백나무) 목곽이 있으며 길이 3.2m, 너비 1.3m, 잔존높이
그림 27_ 오도하자 5호 그림 28_ 오도하자 9호 그림 29_ 객좌 미안구 1호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 묘제의 변천과 주변 문화와의 관계 127
0.45m이다. 무덤에서 총 32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1점의 T자
형 검병(劍柄)이 있는 요령식 동검(곡인단검)이 가장 특징적이다. 병부(柄部)에는 금
이 상감되어 있는데, 그 주조기법이 매우 정밀할 뿐 아니라 금동합벽(金銅合璧)
의 곡인검(曲刃劍)은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던 유물이다. 이것은 동대장자 무덤
의 주인공이 일반 사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지배자나 귀족이었고, 그 위세가
대단하였음을 말해 준다.
동대장자 묘지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후기
T자형병부청동단검(T字形柄附靑銅短劍)은 그 형
태가 대릉하유역 청동기문화인 십이대영자
문화와의 계승관계를 나타내주거나 혹은 십
이대영자문화의 상층귀족을 포함한 주민 일
부분이 원래의 지역에 남아 점차 연문화(燕文
化)에 융합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기원전 5~4세기 이후
토광묘유적을 보면 대개 토착문화를 기반으
로 하면서 중원문
화의 영향을 받아
조영된 것으로 보
인다. 따라서 중
원계 문화가 현지
토착문화와 융합
하는 과정에서 새
로운 문화 유형을
보이며, 중원문화
그림 30_ 건창 동대장자 묘지 출토 T자
형병부청동단검
그림 31_ 건창 동대장자유적 전경128 요하문명의 확산과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로 부장품의 매장방
식 차이를 꼽을 수 있다. 중원계는 부장품 칸을 따로 마련하는 데 비해 요서지
역 하가점상층문화 출토 토광묘에서는 피장자의 몸 주위에서 부장품이 나오
고 있다. 하가점상층문화 무덤 부장유물도 중원지역과 달리 명기(明器)나 토기
보다 마구(馬具)의 부장이 두드러지고, 도씨검과 함께 퇴화된 요령식 동검과 중
국 북방 오르도스(Ordos)식 검이 보이고 있다.
기원전 5~4세기의 요서지역 청동기문화를 보면 요령식 동검문화 말기 양
상에 대한 새로운 특징을 알 수 있다. 종래에는 요령식 동검의 변형 양식이 나
오는 현상을 연(燕)의 세력 확장과 관련시켜 해석하였다. 그리고 요령식 동검
말기 단계의 변화는 요동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요서지역에서는 요령식 동검
이 전국시대 도씨검이나 이른바 중국 북방계 검으로 교체되는 것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능원(凌源) 오도하자(五道河子)와 객좌 노야묘향(老爺廟鄕) 청동단검묘47)
두 유적의 조사로 요서지역에서도 요동지역과 비슷한 말기 양상으로 나갔음
을 알 수 있다. 또 오도하자에서 보이는 중국 북방 오르도스계(系) 동검은 중국
북방민족과의 일정한 관계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추측된다."
-요하문명의 확산과 중국 동북지역의 청동기문화 동북아역사재단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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