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중순의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후. 

불법 유턴하는 차량과 접촉 사고가 있었다.

서로의 보험사에 접수를 하였고 나 역시 안전지대 침범이었기에 쌍방과실로 처리되었다.

사고 시 넘어지면서 생긴 약간의 타박상과 근육통을 치료하기 위해 이튿 날 진료를 받았고

입원하는 것은 오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냥 통원 치료를 받겠다고 의사에게 말하였다.

대략 일주일 정도 물리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는 와중에 상대편 대인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짐작했던 것처럼 합의 권유 전화였고 집 근처로 찾아오겠다기에 그러시라고 하였고 

우리는 그날 오후 은평구의 한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아이스초코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대인 담당자는 내게 조곤조곤한 말투로 상대편 운전자의 곤란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운전자는 사고 경력이 워낙 많아서 보험료 할증이 엄청나게 된 상태인데

이번 토요일아점님과의 사고로 인하여 대폭의 보험료 할증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운전자의 자비로 처리할 수 있도록

15만원에 합의 해주시면 안 되겠나며.. 선생님의 선처를 바란다며.. 울듯말듯한 표정으로 내게 구구절절히 읍소하였다.

교통사고를 겪어 본 사람들은 합의금 15만원의 의미를 알 것이다... 15만원이라니ㅋㅋㅋㅋㅋ 슈발ㅋㅋㅋㅋㅋ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미 호구 모드로 셋팅 완료한 이후였고 맹자의 측은지심을 실천으로 옮길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약하게 남아있는 근육통은 며칠이면 없어질 게 분명하고.. 허리와 어깨죽지에 생긴 피멍은 시간이 다 해결해 줄 테지..

어린 아이 둘 키우는 가장인데 보험료 할증 폭탄 맞으면 타격이 클 테지..ㅠㅠ

그래 주식으로 하루에도 몇 십, 몇 백 왔다 갔다 하는 마당에 그냥 쿨하게 합의해주자!!! 착한 일은 좋은 일을 낳는 법!!! 싸인 완료~ㅋ

만족스런 표정의 대인 담장자와 나는 호쾌하게 웃으며 서로의 건강까지 염려해주며 바이바이 하였는데...

그날 이후 대물 합의를 어떻게든 안 해주려는 가해자 씨발새끼의 태클로 인하여 석달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겨우 겨우 수리를 끝냈다.

수리점 사장님도.. 상대방 보험사 대물 담당 직원도.. 살다 살다 이런 진상은 처음 본다며.. 

정말 지지리도 운이 없는 케이스에 걸리셨다며 대인 합의를 쉽게 해주지 말지 그러셨냐며.. 나를 위로하더라.. 그 씨발새끼네 보험사 직원이 말이다. 






2. 11월 12일 월요일 오전 10시 경. 그러니까 바로 엊그제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모니터 한 쪽에는 주식HTS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다른 한 쪽에는 디씨를 띄워 놓고 있었다.

헐! 근데  내가 집중 투자했던 종목이 장 초반부터 요동을 치기 시작하더니 꾸준히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앗싸 가오리~ 냐하하하핫!!! 이 기쁨을 나의 충실한 따라쟁이 제자 3호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네이트온을 켰더랬다.

응 없네? 카톡으로 보낸 어디냐는 나의 물음에 지금 밖이라며.. 보고 있다며.. 앗싸 좋다며.. 우리는 깨방정을 실컷 떨었더랬다..ㅋㅋ

그때 갑자기 뜨는 절친 of 절친의 메세지.. 뭐하고 있어?

평소와 다름없는 그 녀석의 질문에 나 또한 평소처럼 답을 하였는데

이 녀석이 갑자기 급전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어랏? 지금껏 살면서 돈 얘기라고는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이런 철저한 녀석이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그것도 260만 원이나? 헐;;;;;;;;;

평상시의 나였으면 이런 생소한 상황에 의문을 품고 전화를 하거나 좀 더 검증 절차를 밞았을 것이다. 분명히.. 아마도.. 그랬을 거야.. 진짜로..ㅠㅠ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또 호구 모드로 셋팅이 변경되어 있었더랬다.. 요동치는 내 주식을 신경쓰느라 정신이 완전히 팔려 있었거든.. 에휴...

아아~ 이 녀석이 얼마나 급했으면 전화도 아니고 네이트온으로 나한테 돈 얘기를 다 할까..ㅠㅠ

돈 얘기 남한테 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나니까 이렇게 부탁을 하는 거구나..ㅠㅠ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줄게!!! 너의 ATM이 되어 줄게!!!ㅠㅠ

현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얼른 연이율 9.5%짜리 주식 담보 대출로 260만 원을 대출 받았다. 

금융위기 시절 깡통계좌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던 내 모습과 

믿었던 지인들이 돈 앞에서 냉정히 돌아서던 그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나는 KB국민은행 인터넷뱅킹 이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60만 원 이체완료..

돈 보냈어 확인해봐~

응? 근데 얘가 대답이 시큰둥하네?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가 없어;;;

그제서야 나는 물어 보았다. 

토점: 근데 외한은행 XXX가 누구야?

친구: 응 친한사이^^

토점: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친구: 좋은 일이야

으응? 뭔가 좀 이상하다? ㅡ_ㅡ;;;

토점: 천천히 줘도 되니까 여유있을 때 갚아

친구: 아니 계좌 불러봐.. 래일 보내줄게~


래일??? 내일이 아니고 래일? 오타라면 매일,애일,재일,내잏,내맇,내익 중에 하나일 텐데.. 
래일이라고? 래일?!! 씨x 래일!!!!!!!!!!!!! 조선족 애미나이!!!!!!!!!!!!!!!!!!!!!!!!!!!!!!!!!


내 몸의 모든 수의근들이 불수의근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덜덜 떨리며 목이 뻣뻣하게 굳으며 

심장은 쿵쾅쿵쾅 뛰는 동시에 내 동공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물은 흑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씨발씨발개씨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뭐부터 해야하지????

일단 확인사살이 필요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꺼져있었다.. 호구 당첨이요~ㅋㅋ큐ㅠㅠㅠ

어 그래 씨발 국민은행에 전화부터 해야지.. 전화를 걸었다.. 대기자가 많으니 기다리래 씨발!!!!!!ㅠㅠ

잠시 후 안녕하시냐고 인사하는 상담원의 말을 잘라 먹고 용건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내가 안녕할리가 없잖아...

지급 정지 요청 콜? 콜~ 신속한 처리 감사!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외환은행으로 전화를 걸었다.. 대기자가 많으니 기다리래 이런 개썅!!!!!!ㅠㅠ

잠시 후 안녕ㅎ..까지 듣고 내 용건 발사! 내가 입금한 씨발놈 계좌에서 돈 인출 됐는지 확인 부탁이요~ㅠㅠ

죄송합니다~ 고갱님~ 본인이 아니시면 계좌내역을 알려드릴 수가 없구요~^^;;

아오 씨발........ 사기라구요 사기!!! 돈 빠졌나 안 빠졌나 졸라 중요하다구요 지금!!!ㅠㅠㅠㅠ

내 샤우팅에 당황한 상담원은 잠시만 기다리시면 전화를 주겠단다.. 그 사이에 조선족 썅간나새끼는 이미 로그아웃..

2분 뒤 전화를 걸어온 상담원은 내게 답을 해줬다. 

이를 어쩌죠 호갱님.. 입금하신 직후에 전액 인출 되었네요.. 잔액이 8000원 남았네요;;; 남은 8000원 지급정지 요청되어있습니다;;;

게임은 끝난 것이었다.. 나는 호구였던 것이고.. 대차게 털렸을 뿐이고.. 조선족 썅간나는 예정에 없던 회식을 할 게 분명하고..

그리하여 어제와 엊그제는 경찰에 사건 접수하느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나의 소중한 여가 시간을 왕창 빼았겼고..

구경도 못 해본 연이율 9.5%짜리 대출금 260만 원의 이자를 이틀 째 물고 있으며..

일본, 캐나다, 호주에 있는 친구들 사이에도 쫙 퍼져버린 소문으로 인하여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사칭을 당했던 그 절친 녀석은 이번 일로 인하여 깊은 감동을 느꼈다는 후문이며..

나는 그 녀석에게 니 생일선물은 앞으로 30년간 없을 거라고 선언하였다. 





스무살 무렵 알바로 쌔빠지게 모은 돈 300만 원을 친구에게 3년 간 무이자로 빌려줬지만 

몇 년 후 금융위기 때 그 친구에게 돈 빌리려다 거절당한 사연은 나중에 기회되면 또 들려줄게..ㅠㅠ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호구가 맞다.

이 글 올리고 나는 또 은행 가봐야 해.. 지급 정지 요청 연장하러.. 씨발..



출처: ROOM 갤러리 [원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