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언젠가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처음 여행을 생각했던 때는 스무 살 무렵이었다.
어떤 사람은 스쿠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했고,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했다. 그들의 여행기를 보고 있자면 나도 길 위에 있는 기분이었다. 계획에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은 장비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나는 막연히 생각하는 것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돈은 없고...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가지 못하는 것은 내 게으름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닌 것 같아 괴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답답함은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방황을 많이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집안이 많이 어려웠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중2 때였던가? 집에 오니 방안에 압류 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판잣집과 다름없는 집이었는데 집과 밖을 구분 짓는 문은 아파트사는 사람들의 방문과 같은 문이었다. 성인 남성이 전투화 신고 발로 걷어차면 단박에 부서질 그런 문. 집이 더 이상 아늑하고 안전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그 무렵 부모님은 길바닥에 가족이 나올 수는 없다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시느라 날 돌볼 여력이 없으셨다. 그때 내 담임선생님은 초임 여자 국어선생님이었는데 공부를 못하는 나를 매일 같이 교무실로 불러 반 평균을 까먹는다며 때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친구들과 노는 것. 그래서 오로지 친구들과 놀기에만 바빴다.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토요일마다 특별 활동을 했는데 동아리 모임 같은 개념이었다. 한 번은 그 특별 활동을 빼먹고 학교를 안 갔다. 그리고 월요일에 학교를 갔을 때 내가 소속된 특별 활동 선생님에게 멱살 잡혀 창고로 가 정강이 살이 다 까지도록 발로 차였다. 집에 갔을 때 교복을 벗으려는데 바지가 벗겨지지 않았다. 피고름이 교복 바지에 말라붙었던 탓이다. 누구는 학교에서 왕따로 괴로웠다지만 나는 담임선생님과 특별 활동 선생님에게 시달렸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반 석차 중간은 가도록 노력했고 수행평가도 꼬박꼬박했다. 그래도 종례 이후에는 나는 불려가 매를 맞았다. 그래도 나는 학교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을 부모님께 절대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고생하시는 걸 아는 것도 그렇거니와 실망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강이의 상처가 거진 다 나아갈 무렵 어머니는 내 상처를 보고 물어보셨고 얼버무리다 결국 사실을 말하게 됐다.
며칠 뒤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오셨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담임선생님은 전에 없는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났다.
그 뒤 암울했던 삶을 위로하듯 고등학교 졸업까지 좋은 은사님을 연달아 만나며 비로소 즐거운 삶을 살았다. 집의 사정은 위태로웠으나 무너지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머니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진즉 굶어죽었으리라. 그러나 수능 실패로 원하던 대학에 떨어졌다. 당시에 재수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며, 아버지 귀에 들어가게 되는 날에는 난 죽은 목숨이었다.
도망치는 나는 국립 전문대에 들어갔다. 원하는 과는 아니었으나 학비가 싸고 전문대 특성상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알선해준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마음에 없는 곳에서 정붙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많았고 그렇게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다. 그러다 군대에 갔다.
어머니는 온화하지만 강단이 있는 분이었는데, 군대로 가던 날부터 매일 같이 내가 힘든 곳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단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일까? 나는 102보충대에서 702특공으로 차출 당했다. 군대에서 느낀 점은 많지만 제일 크게 느꼈던 것은 하늘이 노래지고 시야가 흐릿해도 곧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알고 난 뒤부터 내가 생각하던 한계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어졌다.
전역 후 나는 관심 있던 다큐멘터리를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했다. 손수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방송에 나가던 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열아홉에 하고 싶어 했던 공부가 생각나 자꾸 뒤돌아봤다. 결국 편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편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전까지의 내 성격이나 행동이 많이 변했다. 자존감이 낮아 좀 잘나 보이는 사람들 따라 하기에 바쁘던 내가 언젠가 순수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겪었다. 그 도움이 됐던 것 중 가장 손꼽는 것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편입 준비를 위한 토익은 안 하고 인문학 서적을 저녁 먹을 때까지 앉아 읽었다. 밤에는 읽은 책을 곱씹으며 내용을 생각하고 내 것으로 소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난 토익을 편입 원서 넣는 순간까지 죽 쒔다. 그러나 그동안 독서를 하며 얻은 지식이나 내 생각의 정리를 통해 면접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합격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나아갈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순간순간 고통이었으나 돌이켜보면 행복했다.
이 여행은 내게 있어서 지난 힘든 날의 종착을 의미하기도 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시작이기도 했다.
주저리 주저리 무슨 말을 하는지...
여행기 쓴다면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놨다. 하고 싶던 공부도 마치고, 논문도 제출한 지금의 상황에서 여행기를 쓰려 하니 기쁘기도 하고 지난 속상하고 슬펐던 일도 생각나고... 기분이 이상하다.
이제 진짜 여행기 시작.
일단 여행은 2013.07.25 ~ 08.10 까지 춘천 → 부산 도보여행이다.
여행 장비 마련을 위해 3월 개강 때부터 7월 초까지 돈을 모았다.
사진에 나온 장비와 스포츠웨어 상의 2벌, 하의 2벌, 취침용 상하의 1벌을 챙겼다.
텐트를 전 날 설치하며 작동법을 익혔는데, 이런 건 처음 다뤄보는 거라 신기하기도 하고 이걸 길에 가서 치려니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사진 속 저~ 멀리에 있는 쪽이 우리 집인데 앞서 말한 옛날 집에서 이사 와서 이제는 아파트에 산다. 융자는 좀 남았지만 이제는 살만하다. 살면서 느끼는 것 중 또 큰 한 가지는 살려고 발버둥 치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여기는 도시를 벗어나는 외각도로 부분인데 급 커브 구간이라 사고가 많이 난다. 사진 찍으며 언제 어디서나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자며 찍었다.
춘천시 마지막 마트였다. 시간은 대략 6시 30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여행기 보면 파워 웨이드를 추천하길래 삼다수랑 같이 구매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서 이거 안 샀으면 죽을 뻔했다.
원창고개라고 불리는 곳인데 전문대 시절 여기 너머 홍천 가는 구간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버스 타고 넘어도 20분 걸리는데 걸어 올라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부산까지 갈 길이 천리인데 여기서 약한 마음먹지 않기 위해 헤헤 거리며 잘도 올라갔다.
무엇보다 배낭에 큰 돈을 썼는데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제품은 도이터
잠자리도 쉬어가는 모래재 정상
에너지바도 신의 한수였다. 미리 말하자면 1일차 저녁에는 밥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굶게 돼서 허기가 질 정도였지만 그나마 괜찮았던 건 끼니마다 에너지 바를 먹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봄, 여름에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은 에너지 바를 항상 2~3개 가방에 챙기는 것이 좋다.
올라온 곳이 보이지 않을 만큼 올라왔다. 첩첩산중
큰집이 홍천이라 가는 길은 가깝다 생각했는데 정말 멀었다... 정말 멀어...
첫 여행자를 만났다. 인사를 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자전거 뒤 짐을 싣고 쏜살같이 달리는 여행자를 보며 내가 무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각자의 여행 방식이 있는 거니 기죽을 필요 없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춘천 안녕~ 그리고 홍천 입성
홍천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슈퍼가 있었는데 거기서 잠깐 쉬어가기로 했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씻고 선크림을 다시 바르고 아이스크림과 물도 샀다.
할머니 혼자 운영하시고 있었는데 손주가 카약 선수인데 유망주라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며 자랑하셨다.
여행길에 처음 이야기하는 분이라 열심히 듣고 호응도 하며 휴식을 취했다.
홍천은 별거 없다. 외각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횡성 가는 길로 나오기 때문에 쭉 걸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모르는 길 시작이다. 횡성까지 갈까 생각은 아까부터 했는데 28km 남았다고 뜨니 좀 버거운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 홍천에서 오늘을 마무리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무작정 걸었다.
첫 터널의 시작... 사실 나는 도보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걱정되는 곳이 터널이었다. 그 좁은 곳에 사람이 지나갈 곳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너무 쏜살같이 지나다니던 터널이라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가도 가도 쉴 곳이 안 나와 걱정했다. 결국 밤이 됐고 저녁 8시가 돼서야 주유소가 나왔다. 주유소 반대편에 마을이 하나 보였는데 무조건 저기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로 가는 길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가드레일 넘어가볼까 했는데 길이 없었다. 그래서 주유소로 가서 물어보니 길을 다시 돌아가다 보면 굴다리가 하나 있는데 거기를 통해서 마을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인사하고 마을로 들어가니 입구에 정자가 있었다. 지붕이 있으니 비 걱정 없이 텐트 치고 잘 수 있겠다 싶어 허락을 받으려 하는데 마을에 인기척이 없다. 그나마 있는 3~4건물에 불은 다 꺼져 있고, 뜬금없이 막국수 집이 덩그러니 있었다. 다행히 장사를 하고 있어서 들어가 물었다.
나 : 안녕하세요. 도보여행하고 있는 학생인데 요 앞 정자에서 텐트 치고 오늘 밤만 쉬고 가도 될까요?
아저씨 : ㅇㅇ
의외로 별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아저씨의 퉁명스러움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후에 다시 수돗가를 보고 씻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 뒤 텐트를 쳤다.
사실 텐트를 치고 막국수 집에 가서 편육이랑 막국수 시켜서 저녁은 든든히 먹어야지 하는 순간이었다.
막국수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텐트 치다 말고 슬리퍼를 신고 막국수 집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영업시간이 지났는데 마무리가 늦어지느라 이제 끝나는 거라며 아저씨는 가게 문을 닫고 차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막국수 집이 문을 닫자 정말 마을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다들 어디 놀러 간 건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안 사는지...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옥수수 쉰내가 나는 몸을 씻고 얼른 내일을 위해 자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마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물론 내 추측이지만...
나는 거침없이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정말 먹고 자는 것 외에도 씻을 수 있다는 행복이 크다는 사실을 집을 나오니 알겠다.
적당히 걸었을 때에 쉬었어야 했는데 너무 걸은 탓인지 엉덩이가 쓸려 물이 닿자 쓰라렸지만 그래도 기뻤다.
텐트에 들어가 일기를 쓰고 누웠다. 걱정하실 부모님께 전화를 하고 여자친구와 연락을 했다. 봄에 구입했던 돗자리가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줬다.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앞으로의 부산이 과연 순탄히 흘러갈지 걱정이 앞섰다. 용기와 패기로 떠난 첫날부터 삐걱거림이 내심 불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잠 솔솔 온다. 걱정을 뒤로하고 알람을 새벽 4시로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씻는 곳에서 찍은 텐트를 친 정자
도보여행 (춘천 →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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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 부산 도보여행 2일차 (횡성군 공근면 상창봉리 → 원주시)
춘천 - 부산 도보여행 3, 4일차 (원주시 → 원주시 신림초등학교)
춘천 - 부산 도보여행 5일차 (원주시 신림초 → 충북 단양 가평초)
춘천 - 부산 도보여행 6일차(충북 단양 가평초 → 충북 단양 커피명가)
춘천 - 부산 도보여행 7일차 (단양 커피명가 → 충북 단양 길목펜션)
춘천 - 부산 도보여행 8~9일차 (충북 단양 길목펜션 → 경북 영주시)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0일차(경북 영주 현대여인숙 → 안동 스파랜드)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1일차 (경북 안동 스파랜드 → 경북 의성)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2일차 (경북 의성 → 경북 군위 의흥초등학교)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3일차(경북 군위 의흥초등학교 → 경북 영천시)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4일차(경북 영천시 → 경북 경주 게스트하우스)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5일차 (경북 경주시 →울산 울주군 신라장여관)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6일차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남도 양산시)
춘천 - 부산 도보여행 17일차 (경상남도 양산시 → 부산)
춘천-부산 도보여행 후기
출처: 여행-국내 갤러리 [원본보기]
잘 읽었습니다 2부도 기다리겠습니당 ㅋㅋ
ㅇㅇ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
잘읽었어요^^
꿀잼입니다.
부우, 를로르 //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_^
잘봣어
ㅁㅊ 나는 이거 절대 못할거같아
멘탈 굿 다쓰면 힛갤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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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권
쩐당
순위권?
혹시 리조트 안가셨나요?
수뉘권이넹
이정도 수뉘권은 처음이다
왤캐 무식하냐
그래도 대단하네 씨발..
전에 다른 내용으로 본 사진같은데
캬
초코파이 먹으면서 걸어 다니는 사진 올리면 힛갤인가요?
順位圈
육체는 단명이고 근성은 영원한 것..
야 까려는건 아닌데 한 3,4년전에 올라왔던 '그냥걷기'랑 구조 내용 문체등등 다 너무 똑같아서 그 게시물인지 알았다..
나도 그냥걷기 생각났음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진짜 잘봤었는데 이것도 괜찮네 ㅎㅎㅎ 훌륭해 아주 기분좋아졌어
나도 춘천 사는 사람으로써 정말 반갑군요
이런게 힛갤이지
감자맨 위엄 ㄷㄷㄷㄷㄷㄷ
감사게이 ㅇㅂ
이정도면 수늬껀?
!;Y4)방가워요
ㅇ
ㄷㄷ
내가본 여행기중에 젤 잼씀 후기도 안올라왔는데 벌써 힛갤왔네
감사합니다
알바 댓글 관리좀 해라
진짜 대단하시네요 요즘 같은 세상에 저 먼거리를 걸어다닌다는 게 굉장히 힘들텐데 ㄷㄷ 근성이 대단하십니다.
다리에 알배기시겟네요
나도 20대 다가기전에 한범 가고싶네...
자전거도 아니고 도보 ㄷㄷ 조선시대 체험했네
우와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이런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정말 사나이의 로망 아닙니까?
와시발 나도 무전여행할때 춘천 저 마트에서 생수샀는데 ㅋㅋㅋ 마지막마트맞음. 저기로 쭉가면 댐나옴.
무전인데 무슨돈으로 생수를 사냐?
필력쩐다
제가 도보여행이랍시고 다녔던건.... 별거 아니었네요^^.. 후기 잘봤고 고생하셨습니다^^
천리행군 잼
군대에서 좆빠지게 하던걸 사회에서 굳이 할 필요있냐
이상하게 자꾸 눈물 나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다음 여행때는 고생덜하시고 즐거운 여행길되시길
부산 양아치들 때문에 막판에 산통 다깨네
엔하위키에서 "극기훈련" 검색하면 이런 문구가 있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일부러 극기훈련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왜이렇게 다들 자기를 혹사시키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몰라.. 다들 사디즘에 중독된것도 아니고
아 다시 찾아보니까 "무엇보다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할만큼 한국인의 삶은 무르지 않다"였네 암튼 거기서 거기
저 막국수집 홍천 갈때마다 들리는 집인뎅 3대 봉창막국수이던가?
여행기 마지막에 나오는 양아치가 운영하는 부산 게스트하우스코리아...
http://www.guesthousekoreabs.com/board/index.html?id=board1&no=47
와 진짜 대단~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하실껍니다.
귀암 김정덕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아
아니 특공나왔는데 텐트를 첨 다뤄본다고???
좋은글 잘읽엇습니다. 노력이 정말 대단하시네용 ^^
다음부터는 퀵보드도 하나 챙겨가라 걷기만 하면 얼마나 지겹고 따분하겠노.. 걷다 보드도 타고 내리막길 신나게 내려오면 잼나지...
근성 쩌네
안녕하세요. 디시 트래픽의 암적인 존재, 디시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