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동안 오십여장 남짓한 그림을 그렸다. 색과 크기에 대해 고민을 했다. 채도와 밝은색 어두운색에 대해 생각했다.

종이는 8절로 몇장 그리다가 떨어져서 4절로 바꿨다. 상상 혹은 사진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나름의 기준들이

생겼다. 또 눈은 섬세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 장시간 앉아 작업하는데 무리가 있다. 대여섯시 경에 일어나 집앞 호수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그림에 대한 구상이나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콘래드, 만,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읽었다. 신갈나무와 들꽃에 대한 책을 읽고 기타와 월든을 읽었다. 지금은 중용을

읽고 있다.

 그림에는 욕심을 담기도 하고 욕심을 빼려고도 해보았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좋은 그림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들의 지저귐이나 나무, 들꽃의 생명력에는 갈 길이 멀다.

 인간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말타는 법을 알려주겠다던 아저씨가 죽었다. 엄마와는 몇번 싸우고 풀어졌다. 작은 아버지들은

듣기 싫은 소리들을 한다. 제사를 한번 치르고 생굴을 먹었다.

 그림은 하나의 결과로 나타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과정중 한 사건이다. 사건 속 인과관계의 선후는 모호하다. 그리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예술이 가지는 비약하는 성질로 인해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경우, 한참을 해매었을 때

복잡해 보이던 세계가 내 이면임을 깨닫는 경우도 있다. 큰 역사에서 나의 역할, 쓰임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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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술 갤러리 [원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