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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
이번에는 조선의 여성 ceo 김만덕 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060812115537418305371700.jpg\"1739년(영조15)에 제주도 구좌마을의 주민이었던 김응열의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만덕은 9살 때에 양친을 질병으로 잃었습니다.
20060813115543092999355800.jpg\"양친의 사망으로 집안 경제가 어려워져 2명의 오빠는 친척집으로 맡겨졌고
김만덕은 제주읍성 유곽의 하녀로 들어가서
13세 때 기생이 되었습니다.
20060812115537424363883300.jpg\"20세 때, 기생을 그만두고 30세의 고선흠과 결혼하지만, 얼마후, 그녀의 남편도 질병으로 사망합니다.
결국, 그녀는 제주읍성에 객상(물품 교역소)을 설립하여, 한반도 남부의 항구도시와의
교역을 시작합니다.
20060812115537429575440200.jpg\"그녀는 적극적으로 제주읍성에 육지의 상인들을 유치시켰고,
제주도의 특산물인 말총, 미역, 전복, 양태, 우황, 진주 등을
한반도 남부의 항구도시에 판매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본토로부터는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의 여성 용품을 구입해서
제주도의 여성들에게 판매했습니다.
그녀의 가게는 언제나 붐볐습니다.
20060812115537431900196900.jpg\"그녀의 장사수완은 뛰어나서 한반도 각 항구도시의 객상들과 연계해서 유통체계를 만들었으며,
그녀 자신의 선박들도 소유했습니다.
그녀의 상품은 서울에서도 유통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관청의 물품조달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그녀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20060812115537439685615900.jpg\"1794년(정조 18) 제주도에 수해가 발생.농작물에 큰 피해가 있어 기근이 생길 위험에 처하자,
조선정부에서는 20000섬의 쌀을 제주도로 보냅니다.
하지만 쌀을 수송하던 선박 중 5척이 태풍으로 침몰하여,(피해액수: 11000섬)
제주도에는 큰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20060812115538826492477300.jpg\"이에 김만덕이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서 한반도로부터 쌀을 구입하여,
1/10은 자신의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9/10를 굶주리는 제주도 주민들에게 기부합니다.
결국 수천명의 제주도 주민들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20060812115538617194868300.jpg\"이 소식이 알려지자 정조임금은 크게 감동하여,
김만덕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김만덕이 말한 소원은 2가지 였습니다.
첫번째는 서울로 가서 임금님을 만나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금강산 관광을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20060812115537459385937000.jpg\"조선정부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김만덕의 여행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정조임금과 왕후를 만났으며, \'반수\'라는 벼슬도 받았습니다.
금강산에도 방문하여 1만 2천개의 봉우리를 관람합니다.
20060812115537470216647000.jpg\"김만덕을 만나기 위해 서울의 저명인사들이 그녀에게 방문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정승 체제공(현재의 총리)도 있습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57세 였습니다. 20060812115538827290712300.jpg\"이후의 김만덕은 제주도에서 조용히 소박하게 살아갑니다.
1812년(순조 12) 74세의 파란만장했던 김만덕의 삶이 마칩니다.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제주읍성이 보이는 곳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제주읍성이 보이는 \'가운이마루\'에 묻혔습니다. 20060812115537488412668800.jpg\"지금도 제주도에는 김만덕의 무덤이 남아있습니다. 자신을 힘들게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고큰 성공을 이룩한 김만덕.게다가 그 성공의 성과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수 있었던 그녀. 그녀의 생애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큰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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