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이런 날이 올줄 몰랐는데
 인간극장을 100편 찍어도 모자랄 우리 가정사
 
 아버지가 사업 실패 하시고 형편이 너무 어려워
 밥도 못 먹이는 누나가 불쌍해서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
 나랑은 9살이나 터울이 있는 누나
 대학 들어가서야 누나의 존재를 알았고 그때부터
 여동생이랑 사방팔방 누나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만 7년이나 흘렀다
 얼굴도 모르는 누나
 입양 당시 남겨진 사진 한장이 전부인 누나를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취직이 결정되고 곧이어 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누나를 찾았다는 홀트의 연락
 
 이름도 못지어준 채로 입양을 보내야 했고
 하루도 편히 잠을 이룬 적이 없으셨다는 부모님
 눈을 감으면 우는 누나의 모습 밖에 떠오르질 않으셨다며...
 누나를 만나기도 전부터 하염없이 우시기만 하셨다
 37년만에 찾은 누나

 중간 중간 찾으려 갖은 노력을 했으나 찾지 못했던 누나는
 미국으로 입양 되어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 나라 저 나라 다녀
 아마 찾기가 쉽지 않았었다고 한다
 결혼 후, 미국에 정착하고 아들 두명을 두고 살고 있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 후 만나기까지 3주가 조금 넘게 걸렸다
 누나를 만나는 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마음을 뒤로 한채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홀트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 앞에 서 있던 누나와 누나 가족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울고 또 울기만 했다

 아버지는 서툰 발음으로 쏘리라는 말밖에 하시질 않으셨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통역사를 두고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서로의 마음은 충분히 통했을 꺼라고 믿는다

 솔직히 믿기지도 않았고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평생 어쩌면 만나지도 못했을 얘기로만 듣던 누나의 존재
 하지만 누나를 보는 순간

 아, 우린 가족이구나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p.s 누나의 입양 당시 사진과, 가족 사진
       그리고 누나의 큰 아들 맥이 그린 태극기와 성조기
   
      한국을 미워하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자기 아들들에게만큼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던 누나의 한국에 대한, 부모님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출처: 자랑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