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 생각은 하지 말자. 그녀를 의심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녀와 그렇게 계속해서 만나갔다. 만나가면서 나는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됐지만 더욱 불안해 졌다.
그녀는 지금까지 나에게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왠지 뭔가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연락도 적어지고, '바쁘다'는 말로 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 바쁜 걸까. 또다시 안 좋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얼굴에 피곤이 쌓여 보이는 것이,

무언가 밤마다 일을 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오늘도 밤이 되도록 그녀에게서 연락이 없다. 내일은 꼭 만나고 싶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헉..헉.. 여보세요?"


뭘 하고 있는걸까. 가뿐 숨을 내뱉으며 전화를 받는다.


"응 나야. 지금 뭐하고 있어?"


"아.. 그냥 조금.. 일좀 하고 있어."


"...무슨 일인지는 말해줄 수 없고?"


"..미안.. 나중에 꼭 가르쳐 줄게."


그녀를 믿고 싶지만.. 믿고 싶지만..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주위의 소리가 더욱 날 무섭게 만든다.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온다.

 


콰직


철퍽


콰직

철퍽

 

무슨 소릴까. 그녀가 사람을 찌르고 있는 모습을 나도 모르게 상상해버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우씨?"


"아아 미안.. 잠시 생각 좀 하느라고. 혹시 내일 얼굴 좀 볼 수 있을까?"


"음.. 잠시라면 괜찮아."


"그럼 내가 내일 오후 6시쯤에 너희 집으로 갈게. 밥이나 한끼 같이 하자."


"집은 안돼.."


......그녀가 이상해진것 같다. 아니, 이상해졌다. 갑자기 왜 이리 나를 멀리하는 것일까.
이렇게 숨기는 것이 많으면 나도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한다.


"대체 왜. 너 요새 왜 그래. 너가 이러면 나도 너를 못믿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치만 내일은 그냥 공원에서 보자.. 미안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또 울먹이고 있는 모양이다. 미안할 짓을 왜 하는지..
그렇지만 가슴이 아파 일단 공원에서 보자고 했다.

 


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나 행복했던 우리의 만남의 공간이지만,
오늘마저도 그녀가 나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는다면 공원에 오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야 류신우!"


누군가 하고 돌아봤더니 영호였다.


"너 어디가냐? 그건 그렇고 걔는 정리 된거야?"


"아니 아직.. 지금 걔 만나러 가는 중이야."


"너 위해서 하는 말이다.. 만나지 마. 너가 화낼까봐 이 일은 말 안하려고 했는데.."


"괜찮아 말해봐. 솔직히 나도 걔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


조금 망설이더니 영호가 말을 이어간다.


"우리 어머니가 그 걔네 집에 꿀을 사러 갔데. 원체 안가려고는 했는데 중요한 손님이 오신다 해서 꿀이 꼭 필요했나봐.
그래서 꿀을 사는데, 그 애의 손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거야..
소문도 있고 하니까 너무 무셔우셨겠지.."


"사실이라면 무서우실 만도 해. 그렇지만, 착각일 수도 있는 거야."


"거기서 끝났으면 나도 말을 안해.. 꿀을 계산 하면서 창고쪽을 봤는데.. 창고에 있는 서랍마다 무슨 암호같은 영어가 쓰여져 있고..
싸이코임에 틀림 없어. 가장 중요한건.."


"가장 중요한건?"


"창고 옆에, 시뻘건 핏물이 담겨진 병에 손가락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보셨데..
결국 꿀도 못사고 도망쳐 나오셨다지.."


더 이상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섰다. 우연이 겹치고 겹치면 그건 필연일 수 밖에 없는 법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내 마음은 그녀를 믿고 싶다고 소리친다.


"그래 알았다. 내가 알아서 정리 할게. 다음에 술 한잔 사마."


영호와 헤어진 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전화해 그냥 내일 보자고 했다.

지금 만나봐야 그녀는 또다시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을 것이다. 영호도, 그녀도 이젠 누구도 믿기가 힘들다.
모든건 내가 확인 할 수 밖에 없다.
오늘 밤에 그녀의 집으로 예고 없이 찾아가 직접 내 두 눈으로 모든 걸 확인 할 것이다.


11한시쯤 됐나, 집을 나섰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산 속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평소에는 소박하고 예쁘게 생긴 집이라 생각했었지만,
오늘은 무언가 음산하게 느껴진다. 지금 이 나무 문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돈되고 깨끗한 평소 그녀의 집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