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내가 그 곳에서 꺼내줄게.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나의 당신에게.

 


당신에게 쓰는 이 편지가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부터 말이에요.

사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습니다.
평소 문 단속을 잘하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따라 왜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갔던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 아닐까 싶네요. 하핫

그 때를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도 약간 오싹하긴 해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몸이 굳어버렸었죠.
어두운 방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당신을 보고 말이에요.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저를 보고 당신이 속삭였었죠.

'넌 누구야?'

처음 듣는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 여자는 내 방에 들어와있는건가.
왜 이 여자는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걸까.

이 여자의 정체가 뭘까....

난 되물었었죠.

'그러는 당신은 누구신데 여기 들어와계신겁니까.'

하지만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당신은 그저 멍하니 나를 응시하고 있었죠.

가끔 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전할 듯 이런 저런 몸짓을 보이기도 했지만
어두운 주위때문인지,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내 머릿속 때문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죠.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문득 불을 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등의 스위치를 향해 몸을 돌렸죠.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내 손이 스위치에 닿는 그 순간 당신이 날 바라보던 그 안타까운 눈빛을..

불을 켜고서야 알게 되었죠.
내가 불을 켜는 순간 당신은 한 줌 먼지처럼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처음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낯선 이방인이 자신의 방에 떡하니 들어와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황이 달가운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아마 그때였던 것 같아요.
한없는 안도감 속에서 느껴지던 허전함을 인식한 게..


그 후로 매일매일 당신은 저에게 찾아왔죠.
푸르스름한 달빛과 영롱하게 빛나던 별빛을 등진 채 항상 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어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당신의 눈빛은...슬퍼보였어요.
그리고 그 슬픈 눈빛 속에서...당신과 닮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죠.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한줄기 달빛만을 위로 삼은 채
조그마한 상자에 갇혀사는 당신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속에서 한줄기 희망만을 위로 삼은 채
조그마한 원룸에 갇혀사는 나...

당신도 그랬었죠?
그래서 매일 밤 나를 찾아왔던 거죠?
어두운 방 한켠에 쭈그려서 세상을 원망하던 나를 구하려고..
조그마한 상자에 갇힌 당신을 구해달라고, 내 손을 잡으려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어쩌면
그때부터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을 보면 내 모습이 보이고
내 마음을 깨닫는 순간 당신의 마음이 보이는
'유대감'

내 생에 처음 느껴보는 그 유대감이란 게
그렇게 따듯한 것인 줄 몰랐어요.

그저 외모만으로, 내 겉모습만으로 날 흉보고
날 짓밟고 싶어하고, 날 경멸하던
'사회'라는 세상 속에서 날 이 조그마한 원룸에 가둬버린 사람들에게는 느낄수 없던
'유대감'

처음 느껴보는 눈빛..
나와 같은 눈빛을 한 누군가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날 보살펴준다는 느낌..

마약이란게 이런 느낌인걸까요?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당신을 사랑하면 안된다는 것을,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매일밤 내 방의 모든 불을 끄고 멍하니 시린 달빛만을 바라보며
당신을 기다렸어요.

언제나 찾아와주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만질수 없는 당신에게 손을 뻗으면서
난 당신을 기다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