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당신이 다시한번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죠.
'넌 누구야?'
참 웃겼어요.
분명 처음 당신이 나에게 건넨 말과 같은데..
토씨하나, 억양하나 다르지 않은데..
기뻤거든요.
당신도 날 알고 싶어하는구나.
당신도 날 바라보고 있었구나.
당신도 날..
사랑하고 있었구나.
난 입을 열었어요.
말해주고 싶었으니까요. 대답해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물어볼 생각이었어요.
당신은 누구신가요? 라고...
하지만 묻지 못했었죠.
왜냐구요?
부끄러웠기때문이냐구요?
아니에요..
당신의 그 물음에..
그저 간단한 질문..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들어볼 법한 그 질문..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내가 누군지 말하면...
당신이 지금과 같은 눈빛으로 날 봐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날 알고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던 경멸의 눈빛처럼
지금 당신의 그 눈빛 역시 변해버릴 것 같은
'확신'
세상을 향해 찍소리도 내뱉지 못한 채 항상 당하기만 했던
나약한 내 자신에게는 없었던
'자신감'
슬펐어요.
아팠어요.
괴로웠어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당신의 그 따스한 눈빛때문에 잊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의 나약함이
다시금 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거든요.
'넌 누구야?'
당신의 이 질문은
나에게 있어선..판도라의 상자와 다름 없었어요.
상자를 열지 않기엔
에피메테우스의 호기심처럼, 프로메테우스의 불안감 처럼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너무나도 컸었고
상자를 열기엔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을 모든 역겨운 감정들과
터질것 같은 두려움이 너무 컸었고
상자를 열어도 당신은 여전히 지금의 눈빛으로 날 바라봐줄거라는
희망만을 가지고 살기가 두려웠거든요..
그 후로 저는 바깥은 나가지도 않고,
세상과의 모든 소통을 철저히 닫은 채
거울 속의 나에게 되뇌었어요.
'넌 누구야?'
'넌 누구야?'
'넌 누구야?'
'넌 누구야?'
그렇게 되뇌었어요.
나란 사람의 존재를 잊어버릴때까지 그렇게..
그렇게 나에대해 점점 잊어가고
잊어가고
잊어가고
잊어가고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커져가고
커져가고
커져가고
커져가고
내 몸 속에 흐르는 피 한방울 까지
내 머릿 속에 맴도는 생각 하나까지
나를 움직이는 신경 하나까지
당신으로 채워가고
채워가고
채워가고
결국엔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내가 사는 세상이 당신이 사는 세상처럼 네모난 곳인지
당신이 사는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처럼 역겨운 아집으로 가득 차있는 곳인지
구별조차 되지않을 그 무렵에
당신은 또다시 나에게 물었죠.
'넌 누구야?'
그제서야 난 대답할 수 있었어요.
'난..당신이야.'
그래요.
난 당신이고
당신은 나고
당신이 살고 있는 네모 반듯한 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조그마한 틀일 뿐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역겨운 이 곳은
당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비친 이데아에 불과할 뿐이었고
우리가 살고있던 세상은
결국 하나의 통로로 이어져있을 뿐이었고
그렇기에 당신이 날 찾아온 거였죠.
'날 구해줘.'
알 수 있었어요.
'날 여기서 꺼내줘'
들을 수 있었어요.
'날 이 네모난 세상에서 꺼내줘!'
드디어 당신의 외침을 난 느낄 수 있었어요.
난 결심했어요.
당신을 구해내겠다고.
그저 네모난 세상 속에 갇혀서
매일매일 똑같은 무언가를 투영할수밖에 없는
답답한 그 상황에서 구해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그 순간이 다가왔어요.
솔직히 조금 두려워요...
하지만 겁내지는 않아요.
당신이 그 답답한 곳에서 나를 향해 보였던 그 눈빛들이..
나를 향해 보내줬던 그 모든 마음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아니까..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냈던 그 눈빛들이..
그 사람들에게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던 내 모든 마음들이..
그만큼 간절했으니까..
이제 내가 열어줄게요.
당신이 나를 바라봐 준 만큼
내가 당신을 바라봐 줄게요.
다만 한가지만 약속해요.
지금까지 당신이 나를 향해 가졌던 그 마음이 설사 변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당신을 위해 쏟은 노력과 내 마음을
잊지않고 기억해주겠다고 말이에요.
당신의 눈빛 속에서 그저 당신을 비추는 무언가가 될 뿐이라도 좋아요.
당신의 모습을 비출 수만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니까..
그럼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아요.
당신의 그 슬픈 눈빛을 가진 사람은
당신의 그 슬픈 눈빛을 기억할 사람은
나 혼자로도 족해요...
이제 당신을 가두고 있는 그 무언가에서 당신을 빼내 줄게요.
당신과 나를 단절하고 있던 그것을 열어 줄게요.
제발 행복해줘요.
사랑해요.
2010년 7월 21일
당신을 사랑했던
외톨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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