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거기! 돈 좀 있어?"

"네...?"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듯 앳된 얼굴의 찌질하게 생긴 놈을 불러세운다.

"형이 돈이 좀 부족해서 말이야...돈 좀 줘봐."

"네..네?"

"아씨...새끼야, 말 안들려? 돈 내놓으라고!"

찌질이는 지갑을 꺼내고, 난 아이의 손에서 그것을 낚아챈다.

"만원..이만원... 형이 좀 쓸게."

찌질이는 훌쩍거리며 지갑을 받은 뒤 고개를 푹 숙인다.

"가봐."

"...네."








고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는 전교 1, 2등을 다투는 차지은이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그녀는 반반한 외모를 가졌고 가슴또한 상당히 크다.

그녀를 만나게 된 건 3개월 전 소개팅. 우린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연락을 유지하다 한달 전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너가 내 첫 남자친구야!"

"학교에서 진짜 웃긴 거 있었다?"

"걱정 마, 돈은 내가 다 낼게!"

"요즘 어깨가 축 처졌네.. 어디 놀러갈까?"

"자기가 정말 좋아!"

지은이는 내가 아니면 못살겠다는 듯 나를 대해주었고, 난 그런 그녀가 정말 좋았다.


"시험도 끝났는데 술 마실래?"

"응? 나 한번도 안 마셔봤는데.."

"괜찮아, 과일소주같은 약한 거 마시면 되니까."

"음...그럼 조금만 마셔볼까?"

"나만 믿어~ 설마 자기한테 나쁜짓 하겠어?"

"헤..."


나는 현재 부모님과의 불화로 집에서 나와 따로 살고 있다.

물론 아빠로부터 용돈이 매달 들어오고, 가끔씩 엄마가 와서 찌개나 국거리 등을 해주시곤 하신다.

덕분에 생계 걱정 없이 이렇게 자유분방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왔니?"

단골이라 민증검사를 하지 않는 술집에 들어왔다.

"과일소주 두 병 주세요."

"그래 알았다. 안주는?"

"오뎅탕으로 주세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을 들이켰다.






술에 완전히 취해 비틀거리는 지은이를 설득해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괜찮아? 여기서 술 좀 깨고 들어가자."

잠시 후 그녀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드디어 이년을 따먹는구나.'

옆에서 누가 소리를 질러도 모를 만큼 태평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벌써부터 물건에 힘이 솟는 듯했다.




교복 단추를 두어 개 푼다. 와이셔츠 사이로 드러난 속살을 살며시 만져본다.

단추를 하나 더 푸니 여고생다운 분홍색 속옷이 내 시선을 끈다.

나머지 단추를 마저 푼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내 이성을 마비시킨다.

지은이의 브라를 풀자 숨겨져있던 탱탱한 가슴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과일향이 느껴지는 알코올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귓볼을 매만지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핑크빛 꼭지를 살짝 깨물어본다.

"으...으음.."

완전히 잠든 건 아닌 듯하다. 그녀도 이런 행위를 즐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온몸의 피가 세차게 질주한다.

치마를 걷어올리고는 길게 뻗은 다리를 탐닉한다.

그녀에겐 조금 작은듯한 하얀 팬티가 살짝 젖어있다.

음부를 가린 천조가리를 오른쪽으로 젖혀내고는 구슬을 자극시켜본다.

그녀의 입을 비집고 조금씩 부끄러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지은이의 숲에서는 끈적거리는 액체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내 물건을 들이박는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첫경험의 상대가 나인듯하다.

18살이 되도록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단 말인가?

처녀를 공략하고 있다는 쾌감에 조금씩 나의 운동에 속력이 붙는다.

"아..아파.."

처음이라 그런지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한껏 달아오른 물건을 그녀의 입에 집어넣었다.

"읍...읍!"

지은은 이제 자세를 바꿔 나를 공격한다.

순진한 얼굴로 내 위에 올라탄 모습에 나는 알수없는 짜릿함을 느낀다.

"으읏..하...어때?"

밤은 점점 깊어져만간다.

















나는 어젯밤 있었던 일이 마치 훈장인 마냥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그년을 먹었어? 이야.."

"어. 그리고 걔 아다였다?"

"우와 진짜? 나도 함 먹어보고싶다."

"지랄하네, 나만 먹을 수 있어."



그러던 어느날 지은이에게서 도착한 문자 한 통.

[너.. 나랑 한거 소문냈어..?]

친구들에게만 말했는데, 아무래도 그들 중 한명이 떠벌리고 다녔나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가 부풀려진건지, 지은이는 어느새 전교에 창녀로 소문이 나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종적을 감춘 채 모습을 통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몇번의 관계를 가진 이후 지은이가 지루해진 나는 그녀를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다른 애들과 함께 그녀를 씹어대고 있었다.

"창1녀 맞아 레알. 테크닉 개쩐다. 니들도 언제 한번 먹게 해줄게. 올라탈 때 미친다. 크.."




그리고 다른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던 어느날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휴대폰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창현아..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너만 내편이면 돼...응?]

"누구야? 여자야?"

"응? 아 씨발, 잠시만.."

흥이 깨진 것에 화가 나버린 나머지 난 루머를 들먹이며 그녀의 가슴에 사정없이 비수를 꽂아댔다.

[나 다른 여자 생겼거든? 너보다 훨씬 나은 애다. 어디서 창1녀같은 년이 짖어대? 앞으로 이 번호로 다시는 연락하지마.]

냉기가 풀풀 풍기는 답장을 보내고 난 후 맛본 얼마간의 해방감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다.

"아 왜, 연락하지 말라니까?"

"왜 그러는거야...나 창1녀 아니야..알잖아...너만 생각했었는데...제발, 한번만 더 생각해줘.."

"아 몰라, 씨발년아 전화하지 마. 끊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나는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1주일, 휴대폰에서 한동안 내 연락목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지은이라는 이름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고,

덕분에 그녀의 존재는 서서히 내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갔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서 온 한 통의 문자.

[우리 처음 만났던 곳으로 와줄래? 주고싶은 게 있어.]

난 그 문자를 보자마자 삭제했지만, 잠시 후 그녀로부터 같은 내용의 문자가 10통이나 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답장을 보냈다.

[지금 가면 돼?]

[응]


소개팅을 계기로 그녀를 처음 만난 카페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가 손을 흔든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상태는 무서울 정도로 처참했다.

퀭해진 눈두덩에 타고 남은 나뭇가지가 연상될 정도로 말라버린 몸, 심지어 며칠을 안 감았는지 머리에서는 안 좋은 냄새까지 난다.

"이거 받아. 마지막 선물이야..꼭 갖고 있어줘."

그녀는 나에게 지갑 정도 크기의 부적 한 장을 건네주더니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3일 정도가 지났다.

"너 소식 들었니?"

"뭐?"

지은이가 자살했단다.

'내가 좀 심했나..'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난 그녀의 부모님으로부터 온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녀의 핸드폰을 건네주셨다.

놀랍게도, 전화번호부에는 내 번호 외엔 아무것도 없었고, 심지어 이름마저 ☞♥☜로 저장되어 있었다.

"흑흑...일요일날 갑자기 집을 나가더니 몇 시간 째 들어오지 않아서 전화해보니 전화를 받지 않았어. 나중에 알고보니 나가자마자 옥상에서 뛰어내렸대.."

"그, 그렇군요... 지은이는 좋은 곳에 갔을 거예요. 여자친구인데 지켜주지 못했네요..죄송합니다."

가식적인 태도로 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는 노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눈을 부비며 잠에서 깨어난 나의 눈에 비친 풍경은 나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언제 여기까지 걸어나왔지?'

내가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위에는 1층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주변을 돌아보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1층인데도 불구하고 계단과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술이 덜 깼나? 좀 춥네, 집에 가야지.'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가까이 다가가며 문에 붙어있는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본 순간 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휴, 꿈이었구나.'

식은땀을 흘리며 난 침대에서 일어났다.

분명 여자로 보이는 형체가 흥건한 피바다 속에 앉아 있었다.

악몽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어 불안함을 떨치고는 하루를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누나는 본인이 원하던 일류 대학에 합격하고 할머니의 간암이 완치되었다.

나도 덕분에 일주일 용돈이 두배로 늘어났다.

하지만 갑자기 탁 트인 운수가 무엇 때문인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느날처럼 오늘도 난 친구들과 불금을 달리고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집으로 들어간 나는 아무렇게나 옷을 던져놓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었다.

익숙한 풍경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엘리베이터 빼고는 온통 새하얀 벽 뿐이다.

단 하나만 빼고, 엘리베이터 위에는 2층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기에 나는 지난 번처럼 버튼을 눌렀다.

'어?'

버튼을 누르니 문이 살짝 열린다. 하지만 이 틈으로는 개미새끼나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보았다. 구석에 앉아있던 여자가 고개를 드는 것을.

'지은이..'

나는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꿈에서 깨자 단지 우연에 불과할 뿐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고는 일주일의 시작을 맞이했다.

친구놈들에게 이런 꿈을 꿨다는 것을 말해볼까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분명 날 병신 취급하겠지.'

소개팅녀와의 첫 약속이 있는 날이라 오늘은 특별히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연희라는 예쁜 이름을 가졌을뿐더러 순수한 매력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금세 그녀에게 푹 빠졌다.

"안녕?"

"오빠 안녕하세요!"

"말 놔. 편하게."

"응! 오빠 진짜 잘생겼다~"


그녀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연희는 완벽히 나에게 빠졌다.

그리고 요즘은 삥뜯는 애들의 지갑이 두툼해서 참 좋다. 덕분에 연희에게 선물을 많이 사줄 수 있다.

며칠 후엔 아빠 회사의 주가가 몇 배나 올랐다. 엔젤 투자자(새로 창업하는 회사에 미래의 가능성만 보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는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결과가 좋으니 다행인 거 아니겠는가. 이런 행운이 앞으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하며 잠에 든 나는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다.







"씨발..도대체 뭐야."

이번엔 3층이다.

무작정 가만히 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이에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이 열린다. 그리고 지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또다시 난 기절한다.


이쯤되다 보니 아무리 배짱좋은 나라도 슬슬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 친구의 전화번호를 다급하게 눌렀다.

"여보세요?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야, 내 말 좀 들어봐. 미친, 꿈에 자꾸 그 좆같은년이 나와."

"어? 뭔말이야?"

"지은이 있잖아 그년. 일요일마다 같은 꿈을 계속 꿔! 씨발"

"좀 제대로 말해봐."

"후, 그러니까. 일단 엘리베이터가 앞에 보여. 주변은 새하얀 벽뿐이야. 그리고 꿈을 꿀때마다 층수가 하나씩 올라가. 그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문이 조금씩 열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그년이 있는데 점점 나한테 다가오는 것 같아."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꿈의 내용을 친구에게 전달했다.

"그냥 개꿈같은데. 나 학교가야돼, 끊자."


뚜뚜뚜-


역시 예상대로 미친놈 취급을 당했다.

학교 측에서는 그녀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며 사건을 묻어갔다.

'그게 아닌데...'

찜찜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연희와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또다시 일요일 밤이 찾아왔다.

'아, 씨발..자지 말아야되나?'

나는 밤을 새기로 결심하고 밤새 컴퓨터게임을 했다.

하지만 졸음을 이길 수 없었는지 도중에 엎드려 잠들어버렸다.

그런데, 꿈에 엘리베이터가 나오지 않았다. 그년도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요일을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위이이잉-

모처럼 맛보는 달콤한 잠을 깨운 것은 내 핸드폰이었다.

책상에 놓아둔 휴대폰이 책상을 때리며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을 보니 예전에 내 꿈을 말해줬던 그 친구다.

"야, 씨발 좆됐어. 엘리베이터 그거! 나도 꿨어!"

"응?"

"니가 나한테 말해서 꿈 옮아간거 아냐?"

"어...나도 잘 모르겠는데.."

"너 어제, 그 꿈 꿨냐?"

"아니? 너가 개꿈이라며. 개꿈이라고 생각하니 안나오던데?"

"아 씨발 너한테서 넘어온 것 같다. 저번에 개꿈이라고 한거 미안하다. 이만 끊자."

아무래도 친구의 말이 사실인 듯하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친구에게 꿈이 넘어갔다고 생각하니 맘 편하게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

아빠의 사업은 점점 번창해가고, 나는 연희와의 관계를 더욱 진전시켰다.

'조금만 더 나가면 연희도 따먹을 수 있겠군.'







오늘도 그년이 꿈에 나오지 않으면 꿈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음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그년이 나타나지 않기를 빌며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깬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 개같은 공간에 서 있다.

"어째서?"

이번엔 4층이다.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린다. 조금만 더 열리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씨발.."

그녀가 일어나자 그녀의 형상이 육안으로 식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엔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진 수박처럼 너덜너덜해진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그녀의 모습을 인식하며 난 또다시 기절한다.









'대체 왜 나온거지?'

나는 무엇보다 또다시 같은 꿈을 꾼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월요일날 친구로부터 꿈 이야기를 접했다.



결국 난 모르는 사람에게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시죠?"

"제 말 잠시만 들어주실 수 있나요?"

"네?"

다행히 상대방은 전화를 끊지 않는다.

나는 재빨리 꿈의 내용을 요약해 말해주고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 전원을 껐다.

꿈이 옮겨간다는 말이 사실인지 이번주에는 어떤 꿈도 꾸지 않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찾아온 연희와의 데이트날.

주말에 모처럼 날도 풀려 놀이공원에 놀러가자는 말에 연희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연희는 뭐가 좋은지 나한테 계속 어리광을 부린다.

"오빠 나 팝콘 사올게 잠깐만 기다려~"

"바보야 팝콘은 영화관에서 먹어야지!"

"피~ 내맘이다~"

"맞다, 오빠 있잖아~"

"응?"

"아, 아니야. 이따가 문자로 말해줄게!"

하루종일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연희에게 문자가 한 통 왔다.

[오빠. 나 누구한테 들은건데 이거 대박이다? 엘리베이터가 나오는 꿈이 있는데 꿀 때마다 층수가 올라간대, 그리고 문이 조금씩 열리는데 문이 다 열리면 그 안에서 귀신이 걸어나온대!]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또다시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꿈의 내용을 말했다.










"연희야. 우리 그만 만나야할 것 같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미안..나중에 말해줄게.."

그리고 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다.

내 아파트 호수는 501호, 더 이상 꿈을 꾸면 일이 단단히 잘못될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꿈 얘기를 들을 들을까봐 온 신경이 곤두섰다.

언제부터 학교에 안 나갔는지 모르겠다.

오직 방안에 틀어박혀서는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로 살았다.

스트레스에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다크써클이 짙어졌다.

오랫동안 감지 않은 머리에서는 안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졌지만, 죽는 것만은 정말 싫었다.







그렇게 몇 주일이 흘렀다.

다행히 꿈은 다른 누군가에게로 넘어갔나보다.

그년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내가 자는 줄 아셨는지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는 가져온 반찬들을 옮겨놓았다.

"응, 영희야, 휴...너도 들었니? 요즘 이상한 꿈 얘기가 돌던데, 엘리베이터에 귀신이 있다나? 응, 그래, 자기가 사는 층에 도착하면 귀신이 나온대. 에휴, 우리 아들은 괜찮겠지?"





잠들기 직전 난 그말을 듣고 말았다.



















5층이다.

그녀, 아니 그년이 보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안 된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심지어 벽을 강하게 쳐보았지만 부서지는 쪽은 내 주먹이었다.

"미친, 존나 아프네!"

오직 정면에 말없이 자리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만이 이 공간에서 나갈 유일한 방법이다.

갑자기 엘리베이터의 문이 덜컹거린다.

그년이 엘리베이터 문을 비집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안돼! 오지마!"

영화에나 나오던 좀비마냥 썩어 문드러진 그녀의 발이 문 밖으로 나온다.

"으아, 씨발! 대체 나한테 왜그러는거야!"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끼어있는 그년을 쾅쾅 걷어찬다.

아뿔싸! 그년이 내 발목을 잡는다.

"씨발, 이거 놔! 놓으라고! 으아아!"

한쪽 발목을 잡힌 난 균형을 잃는다.

쿵!

엉덩이를 바닥에 찧었다.

그와 동시에 그년이 내 발을 잡아 엘리베이터 버튼에 갖다댄다.


위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년이 나온다.


쩌억 쩌억


그년이 한걸음 발을 내밀때마다 피와 진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상하다. 그년을 보면 바로 기절하며 꿈에서 깼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정신이 말짱했다.


그년의 턱이 쭉 빠지면서 기괴한 목소리가 들린다.

"보, 보고 싶었어..."

"으아아아!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용서해줘, 내가 그때는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었나봐! 정말 미안해, 살려줘, 제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입으로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그년. 나는 미친듯이 그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그년은 미친듯이 웃으며 나에게로 저벅저벅 걸어온다. 온 몸의 감각이 도망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미미한 저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버린다.

"으으..."

뒤는 벽으로 가로막혀있다.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그년이 내게 다가올수록 시체 썩는 냄새가 점점 강해진다.

나는 몸이 굳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살려달라고 수천 수만번을 말하고 있지만 입에서는 미미한 신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년이 내게로 온다.

그년이 내 앞에 앉아 눈을 마주친다.

"제..제발! 제발! 이러지마 지은아.. 우리 사랑했잖아...제발.."

그년이 내 자켓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낸다.






한동안 지긋이 나를 바라보던 그년이 나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너도 처음일거야...그치?"

"아, 아파! 끄아아아!"

너무 아프다. 괴롭다. 차라리 죽고싶다. 그년은 내 손톱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온 신경이 울부짖는다. 오른손이 시뻘겋게 물들어간다. 누가 보고 신고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멍청한 생각도 해본다.

이상하게 꿈인데도 현실처럼 생생하게 아픔이 전해져온다.

"내가...싫어?"

"아, 아니야, 지은아. 일단 말로 하자.. 으아악! 그만, 그만!"

그년이 나를 '먹는' 것을 멈췄다.



그년이 내 자켓 주머니에서 꺼낸 걸 내 앞에서 흔들어댔다.

"내가 이거...왜 줬는지 알고 있니?"

부적이다. 죽기 전의 그년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주었던 부적.

사실 그녀로부터 받은 부적의 존재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그건.."

"날 기억해주길 바랐어.."

"그래, 기, 기억한다고!"

"갑자기 일어난 행운... 왜 그런지...한번도 생각...안해봤어?"

"..."

"개...새끼... 새까맣게 모른척했어... 미안하다는 말 하..하나도 없이..."

"지, 지은아 그건..."

"...멀쩡한 애 창녀 만들어놓고...다른 여자랑 놀아나니...좋았지..?"

"미안,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너..너가 잘못한 거...없어. 너랑 사겼던...내가 잘못이지..."

"아니야, 지은아, 용서해줘, 내가 다 책임질게. 그러니까 제발 한번만 살려줘."

"책임...진다고?"















그년이 날 다시 '먹기' 시작했다.

살과 뼈가 통째로 으스러지는 고통에 난 몇번이고 실신하고, 다시 깨어나길 반복했다. 신경과 힘줄이 뜯겨져나간다. 차라리 죽는다면 더 이상 이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을텐데. 그년은 어느새 내 사지를 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아, 그년이 내 심장에 대가리를 처박는다. 내 몸에서 쏟아져나오는 피가 새하얀 벽에 그림을 그린다.

"끄으으...이제 그만.."

"너가 날 '먹었으니' 나도 널 먹는건데...문제...있니?"

"미, 미친년..."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년은 유일하게 나의 머리를 남겨두었다.

"으으...날 내보내줘, 제발.. 아악! 미안해. 앞으로 너만 생각하면서 살게. 진심이야."

머리만 남은 나는 초라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애걸복걸했다.

"싫어..."

그년은 피웅덩이 속에 남겨진 내 머리를 들어올리더니 소중하다는듯 꼬옥 껴안으며 말했다.































"이제 영원히 함께할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