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해 개새끼들아!"
민우가 일진들에게 맞고 있던 나를 향해 뛰어온다.
달려오는 민우의 기세에 질겁한 두명은 나를 두고 도망친다.
하지만 대장격인 우진이 새끼만큼은 자존심이 있는지 날 바닥에 내팽겨치고는 민우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때리던 장우진의 주먹이 민우를 향해 날아든다.
아래로 몸을 숙여 가볍게 공격을 피한 민우는 있는 힘껏 어퍼컷을 날린다.
퍽!
"끄으, 이 씨발새끼가?"
장우진이 민우의 어깨를 잡더니 배를 무릎으로 강하게 찍는다.
"으으…"
민우가 잠시 비틀거리는 틈을 타 장우진이 민우를 드러눕힌다.
정신을 차린 민우는 누운 상태에서 장우진의 얼굴을 머리로 받아버린다.
빠직!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이, 이 샤끼가!"
장우진이 고통스러워하는 틈을 타 민우는 몸을 돌려 반대로 장우진을 눕힌 뒤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한다.
퍽! 퍽!
듣는 내가 다 시원할 정도로 장우진을 패는 민우를 보며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 아까 달아난 놈들 중 하나가 각목을 들고 민우의 뒤로 살금살금 접근한다.
"안돼! 민우야!"
내가 지른 소리에 민우가 뒤를 돌아본다.
다행히 그 새끼가 접근하기 전에 민우가 눈치를 챘다.
민우는 주변에 있는 짱돌을 하나 집어들어 각목을 든 새끼의 얼굴에 적중시킨다.
퍽!
피할 새도 없이 날아온 짱돌을 맞은 놈은 각목을 떨어뜨리고 그자리에서 쓰러진다.
고맙다는 윙크를 한 민우는 다시 장우진의 얼굴을 묵사발로 만들기 시작했다.
"휴, 괜찮아?"
입에서 피를 한모금 뱉으며 나의 가방을 챙겨주는 민우.
민우 덕분에 살았다. 민우가 오지 않았다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건 장우진이 아니라 바로 나였을 것이다.
"또 쟤들이 돈 뜯으려고 했어?"
"응…"
"여기 지나가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
"이 새끼들, 이번에 아주 단단히 버릇을 고쳐놔야겠어."
바닥에서 신음하고있던 장우진한테 다가간 민우는 아까 던진 짱돌로 장우진의 팔을 가격한다.
콰직!
"으아아악!"
"내가 경고했었지?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왼팔 하나로 끝나진 않을거야."
민우는 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날 일으켜세웠다.
"누가 또 너 건드리면 말해. 알았지?"
"고마워…."
"내일 담임선생님이 만약 장우진 저새끼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야 돼?"
"당연하지!"
민우와 나는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다. 코드가 비슷해서인지 우린 정말 잘 맞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에 들어간 우리는 심지어 대학교마저도 같은 곳에 진학했다.
'아쉽게도 과는 다르지만…'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해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나를 만만하게 보는 애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민우는 그들로부터 날 지켜주었다.
덕분에 민우는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야, 만약 무슨 일 생기면 서로 꼭 지켜주기다? 약속, 오케이?"
"오케이!"
========================================================================================================================
#2
"휴..."
주룩주룩 비가 오는 토요일, 열심히 준비해서 고백했는데 보기좋게 차여버렸다.
슬픔에 잠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주 한 병을 열었다.
꿀꺽꿀꺽
안주도 없이 빈속에 먹는 깡소주라 그래서인지 상당히 역했다.
휴대폰을 열어 문자함을 몇번이고 확인해본다.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 - 연희♥
"씨발!"
몇 번을 읽어봐도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성질이 뻗친 나머지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진다.
머리 끝까지 올라오는 화 때문인지 억지로 먹은 술이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는 느낌이다.
바람이나 쐴 겸 내 방에 있는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쏴아아
차가운 빗방울이 창밖으로 내민 손을 향해 끝없이 떨어진다.
건너편 아파트에는 불이 몇 개 켜져있다.
비가 오는데다 시간도 새벽 1시가 넘어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마침 커플 한 쌍이 걸어온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자를 부축하고 있나보다.
오늘은 유독 여자친구를 품에 안은 저 남자가 부러워진다.
'어라?'
맞은편 아파트 벽에 무언가가 붙어있다.
그것이 조금씩 움직인다.
세상에, 사람이다.
'춥지도 않나? 이 날씨에 옷도 입지 않고 우산도 없이 아파트 벽을..'
잠깐, 벽을 타고 올라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침과 동시에 벽을 타고 올라가던 것이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씨익 웃더니, 잽싸게 벽을 타고 내려와서 이쪽을 향해 기어왔다.
"으아아아악!"
마치 드라군을 연상시키는 듯한 걸음걸이에 난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창문을 닫고,
아무렇게나 처박혀있는 핸드폰을 찾아서는 준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몇 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더 걸어보았지만, 마치 단체로 작정한 듯 전화는 끝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씨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며 핸드폰으로 일부러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재생한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내가 듣는 노래를 누군가 따라 부르는 것 같다.
노래를 일시정지해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환청인가? 잘못 들었겠지.'
다시 노래를 재생한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씨발 도대체 뭐야!"
노래를 끈다.
=스쳐가는 얘기뿐인걸..
들었다. 분명 들었다. 내 귀가 잘못되지 않은 이상 틀림없다.
"……"
아무래도 밤을 새야겠다.
2시 반이다. 해가 뜰 때까지 4시간 정도 남았다.
절대 고개를 돌리거나 자리를 뜨지 않기로 다짐하며 폰게임을 켰다.
한참 총쏘기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현관의 불이 두어 번 반짝거렸다.
고개를 돌리려는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며 게임에 집중했다.
'씨발…귀신은 무슨…번개가 친 거겠지…'
다시 게임에 집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고, 나는 액정에 이마를 쾅 박았다.
"으악!"
아파서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이것은 대체 누구의 소행이란 말인가.
"엄마야?"
일부러 큰 소리를 내본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 다른 방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갑자기 의자가 뒤로 확 넘어간다.
당황하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니 내 옆에서 한 여자가 날 보며 웃고 있다.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창문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나를 깨웠다.
어제 넘어진 자리에서 그대로 잠든 듯했다.
어제는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어제는 아무리 걸어도 받지 않던 녀석이 오늘은 전화벨이 몇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받아버린다.
"야, 할 일 없지? 당구나 치러갈래?"
"콜. 언제?"
"15분 후 너네 집 앞에 있을게."
"그래, 좀 이따 보자."
어제 아무리 걸어도 연락이 안 되던 녀석이 오늘은 신호음이 몇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덥썩 전화를 받는다.
준혁이를 만나 어제 있었던 끔찍한 일에 대해 말해주니 오히려 술에 취해 잘못 본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역시 잘못 본 거겠지?"
나를 안심시키는 친구의 말에 긴장이 탁 풀린다.
"좋아, 오늘은 지든 이기든 내가 쏜다!"
준혁이를 가볍게 이기고 들뜬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부엌을 쳐다보니 엄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한창이었다.
컴퓨터라도 할 생각으로 방문을 활짝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맞은편 벽에 붙어있는 어제의 그 귀신을 발견한다.
귀신이 낄낄거리며 나를 향해 기어온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얘야, 괜찮니?"
눈을 뜬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 엄마! 내 방에 귀신 있어!"
"응? 무슨 소리니, 그게?"
"여자귀신! 못봤어?"
"요즘 운동하느라 피곤해서 헛 것이 보이나보다. 좀 쉬어라."
아무래도 엄마 눈에는 저 빌어먹을 귀신이 보이지 않나보다.
"저기 저렇게…응?"
살짝 고개를 돌려 방안을 바라보았으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뭐가 있다는 거니 대체, 쌍화탕이라도 하나 사줄까? 응?"
하지만 잘못 본 것이라고 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증거로 내 이마엔 새파란 멍이 선명하게 나 있다.
"씨발…"
엄마가 가자마자 저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멀리서 가만히 날 응시한다.
덕분에 귀신의 형상을 조금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어깨 조금 너머까지 기른 갈색 머리에 오똑한 코
누가 보면 사람이라고 착각하기 쉬울 정도였으나, 눈에 흰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징어가 와서 먹물이라도 뿌렸는지, 새까만 동공만이 눈을 뒤덮고 있었다.
부엌으로 돌아간 엄마를 다시 부를까 생각을 해봤지만, 저년이 또다시 날 농락할 것이 틀림없다.
'어?'
갑자기 귀신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뭐, 뭐지? 사라진 건가…?'
불안함을 애써 외면하며 컴퓨터를 켜는 순간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 야!
어제 노래를 들을 때 들리던 그 목소리다.
=야! 야!
'어디서 나는 거지?'
나는 용기있게 주위를 살펴봤으나 보이는 건 평소와 다름없는 내 방이 전부였다.
=야! 야!
귀를 막았다.
=야! 야!
=야! 야!
=야! 야!
혹시나해서 대답을 해보았다.
"왜!"
=야! 야!
쓸데없는 짓을 한 것 같다.
=야! 야!
듣기싫은 소리는 12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야! 야!
덕분에 난 잠을 설쳤다.
결국 난 초췌한 표정으로 월요일 첫 강의에 참석했다.
=야! 야!
=야! 야!
"으아아 씨발!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강의 도중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쳤다.
모든 학생들과 교수님이 날 쳐다본다.
"황민우 군? 무슨 일 있나?"
"죄, 죄송합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아 씨발, 쪽팔리다. 내가 왜 그랬지?"
=야! 야!
저 소리는 도무지 끊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이명 현상인가?'
혹시나하는 맘에 이비인후과에 들러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의사의 진단은 잔인하게도 내 기대를 산산히 무너뜨렷다.
"정상입니다."
"아, 그렇군요…"
=야! 야!
집으로 가는 길에도 끝없이 저 개같은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다. 꿀꿀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야!
=야! 야!
이상하다. 전화기를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준혁이의 목소리는 커녕 전화 신호음도 들리지 않고, 오직 지긋지긋한 야야 소리만 들린다.
=야! 야!
결국 준혁이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어, 왠일이냐? 아까 너 전화 받았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더라."
"야, 나 지금 좆됐어. 자꾸 누가 귀에 대고 야! 야! 라고 하는데…"
"무슨 소리야, 밖에 추우니까 일단 들어와."
"저번에 말한 귀신 있잖아, 너랑 헤어지고 나서 집에서 그걸 또 봤어. 씨발 개쫄고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어."
"그래서?"
"그런데 그 이후 계속 야!야! 거리는 소리가 들려. 혹시 너도 들려?"
"아니, 너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진짜야, 씨발. 지금 내가 소설 쓰고있을 만큼 여유롭지가 않다고!"
-쨍그랑!
갑자기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쨍그랑!
-쨍그랑!
우린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릇 두 개가 찬장에서 저절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이다.
"……"
"……"
"이제 장난이 아니란 걸 좀 알겠지?"
준혁이는 처음 겪어보는 말도 안되는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헤 벌렸다.
"으, 으응…"
"어떻게 하지?"
"몰라, 씨발…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알아…"
"……"
준혁에게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았던 나는 그의 집에서 서둘러 나왔다.
[정말 미안하다. 혹시 무슨 문제 생기면 전화 말고 문자 줘]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귀신 퇴치하는 법을 검색하니, 용한 무당을 찾아보거나 절이나 성당에 가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나는 무교였기에 무당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씨발…내가 이기나 너가 이기나 한 번 해 보자."
[민우야 큰일났어 자꾸 야야하는 소리 나ㅠㅠ 나 밖으로 나왔어. 지금도 계속 난다..지금 어디야?]
'큰일났다. 설마 준혁이한테…?'
[야 빨리 우리 집으로 와!]
잠시 후 준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괜찮아?"
"어떻게 하지?"
"지금도 소리 계속 나?"
"응…"
"씨발… 인터넷 좀 찾아봤는데 무당한테 한번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무당?"
"응, 지금 그년이 아무래도 너한테 넘어간 것 같아. 미안하다. 야 이 씨발년아! 내말 들리냐!"
"괜찮아, 내일 가 볼게. 그리고 나 아는 무당 한 명 있어."
"정말이야? 아, 미안한데 나 내일은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1교시 강의가 있거든…"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은걸?"
"그래? 쩝…알겠어. 뭔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야된다?"
"그래, 그래~"
========================================================================================================================
#3
=야! 야!
아무래도 민우가 말하는 야야소리가 이건가보다.
쉴새없이 '야'라는 소리가 반복된다.
그리고 지금 그년은 내 옆에서 날 괴롭히고 있다.
가끔씩 코와 입을 막는다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화장실에 가면 그년이 모습을 드러내서는 미친듯이 웃으며 춤을 춘다.
팔과 다리에서 엄지손톱만한 붉고 검은 반점이 나기 시작한다.
민우가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정말 미안해."
민우와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민우와 나는 아침 일찍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그럼 나 이제 가볼게.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기까지 같이 와준 게 어디야, 고마워. 학교 잘 다녀와!"
민우를 보내고 나는 무당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3평 남짓한 방에는 온통 수많은 장군님의 그림들이 붙어있었다. 한쪽 벽에는 과일이 가득 쌓여있는 식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양초 몇 개와 향이 꽂혀 있는 비취색 공예품이 있었다. 맞은 편 벽면에는 장구와 북이, 그리고 천장에는 부적이 몇 장 걸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당님이 앉아계시는 옆에 노란 장막으로 가려진 공간이 하나 있었다.
처음 보는 무당집의 모습에 감탄하는 와중 장삼을 입고 고요히 앉아있던 무당님이 나에게 호통을 친다.
"어쩌다 이지경이 될 때까지 찾아오질 않았느냐!"
"예?"
"이리 오거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평소와 달리 야야거리는 소리가 급격하게 커졌다.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더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내가 왜 이러지?'
내 손이 멋대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무당님의 얼굴을 향해 집어던진다.
무당님이 다급히 몸을 틀어 피하시더니 옆에 있던 칼을 집어 나에게 던진다.
'허, 헉!'
내 몸이 저절로 몸을 틀어 칼을 피한다.
그와 동시에 무당님이 나에게 희뿌연 물을 뿌리며 팥을 집어던진다.
=끼야아아아악!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내 몸이 다시 내 통제를 따르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죠 무당님?"
"빠, 빨리 이쪽으로 오거라!"
무당님이 내 몸을 잡더니 노란 장막으로 가려져있던 방안으로 날 이끌었다.
은은한 향냄새가 나는 방에는 온통 이상한 글씨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야...야...
지긋지긋한 소리가 전보다 조금 약해진 것 같다.
"엄청난 악귀가 씌였어…쯔쯔…"
"……"
"최근에 귀신을 접한 친구와 만났었지?"
"네…"
"그럴 줄 알았네, 기도 허한 녀석이 왜 그런 녀석을 만나!"
"흑흑…살려주세요 제발…"
무당님의 말을 들어보니 민우가 무슨 짓을 해서 귀신을 노하게 했단다. 그런데 귀신이 민우 몸에 들어가는 게 어려워 계속 쫓아다니기만 하던 와중 민우가 날 만나면서 그것이 내 몸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미 늦었어…"
"네, 네?"
"몸을 대부분 잠식당했어…"
"그러면…"
"결정해야 한다. 굿을 하겠느냐? 굿을 하면 악귀는 소멸할 것이다!"
"하지…않으면요?"
"네 몸을 점점 잠식하다가 결국 빙의하겠지…"
내 몸에 그것이 빙의하게되면 결과는 뻔하다. 자기를 엿먹인 민우에게 제일 먼저 복수를 하겠지.
"그럼 당연히 굿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다가 죽을 수도 있어."
"……"
고민 끝에 나는 굿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할게요."
"혹시 모르니 마지막 말이라도 남겨놓는 게 어떻겠니?"
"진짜 죽어요?"
"그럼 가짜로 죽겠느냐?"
"……"
무당님께 펜과 종이를 받아 가족들과 민우에게 전할 말을 남긴 후 무당님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우선 이 부적을 들고 있거라. 그리고 만약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거나 머리가 아파진다면 '대리사사부오수서망'이라고 외거라. 혹시 만약에 도중에 그만두고 싶다면 고개를 세 번 끄덕이거라.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의식을 놓아선 안돼!"
무당님은 나무로 된 의자에 내 몸을 앉힌 뒤 튼튼한 줄로 꽁꽁 묶고는 입을 청테이프로 묶었다.
정오가 되자 굿이 시작되었다.
-휘이이잉
무당님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마당에 돌연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들이 흔들리며 세찬 비명을 지른다. 처음보는 신기한 현상을 넋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끼야아아아악!
그년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무당님의 춤이 점점 빨라진다.
칼과 과일들이 마치 날개를 단 듯 마당을 날아다닌다.
바람이 아까보다 거세게 불기 시작했고, 손에 쥐고 있던 부적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윽!'
날아다니던 칼이 내게로 날아와 어깨를 관통하더니 아래로 길게 내려 벤다.
'으아아악!'
근육과 뼈가 잘려나가는 엄청난 고통에 두 눈이 뒤집힌다.
=키키키킥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무당님이 알려준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대리사사부오수서망…대리사사부오수서망…'
빌어먹을 칼은 한쪽 팔로는 모자랐는지 반대쪽 어깨를 향해 날아온다.
-푸슉
'끄아아아!'
당장이라도 고개를 젓고 싶다.
굿을 그만두고 빨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싶다.
하지만 절대 의식을 놓아선 안 된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민우가 위험하다.
=죽어! 죽어! 꺄하하하하하
-휘이이이이잉
아까 전보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귀신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진다.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구공(九孔)에서 피를 토하고 있다.
=캬아아아악! 안돼! 그럼…너라도…!
푸욱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던 칼이 심장을 향해 날아와 박힌다.
가슴 언저리에서 뜨거운 것이 자꾸 솟는다. 점점 눈이 풀리고 의식이 흐려진다.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민우와 놀이터에서 놀던 모습, 중학교 때 나를 대신해서 양아치를 혼내주는 민우의 늠름한 모습, 대학교에 가기 위해 같이 공부하던 모습…
무당님이 춤을 추는 것을 멈추며 말하셨다.
"수고했다, 다 끝났어…"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나는 의식의 끈을 놓았다.
========================================================================================================================
#4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가던 도중 준혁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민우야, 흑흑, 준혁이가…준혁이가…"
"네? 준혁이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준혁이가…준혁이가…"
"말씀하셔요."
"미, 민우야, 준혁이가…죽, 죽었어…"
"뭐, 뭐라구요?"
"……"
"……"
"……"
"에이, 장난이시죠? 준혁이가 왜 죽어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어요. 장난이라고 해주세요, 제발…"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으로…와줄래?"
"……"
말없이 전화를 끊고 준혁이의 집으로 미친듯이 달렸다.
'씨발…씨발… 대체 무슨 일이야!'
준혁이의 집에 들어가니 준혁이 가족들이 다 모여있었다.
"이, 이게 무슨…"
"민우…왔니?"
준혁이 어머니가 나에게 봉투를 하나 건네준다.
"준혁이가 남긴 유서야…"
"……"
말없이 봉투를 열어 접혀진 종이를 폈다.
너가 이 글을 안 봤으면 좋겠다.
아까 너 간다음에 무당한테 말하니까 글쎼 굿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대.
설마 죽을리야 있겠냐만 혹시 모르니까 써두래서 쓰는거야
이런 거 태어나서 처음 써본다 ㅋㅋㅋ 이나이에 쓰는것도 솔직히 이상하긴 해
아참. 이건 말 안한건데, 고등학교 때 돈 못 가져와서 장우진 패거리한테 정말 죽을 뻔했었어
너가 그날 와준 덕분에 죽을 고비 한 번 넘겼다 ㅋㅋ
엄청 걱정할까봐 말 못했는데 이걸 너가 볼 리는 없으니 절대 이 사실은 모르겠지?
굿 끝나면 귀신 사라진대! 귀신 사라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거야
나 동기 중에 예쁜 여자애 하나 있거든? 끝나면 꼭 소개시켜줄게! 이름은 정혜진이고 진짜 예뻐. 너랑 잘 어울릴거야 ㅎㅎ
고백하다 깨졌다며, 짜식..너같은 애를 걷어차다니 걔도 참 불쌍하다. 나중에 내가 술 한번 거나하게 쏘마.
민우야. 항상 내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너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 이런거 쓰고 있지도 못했을걸?
어릴 때 약속 기억나지?
이번엔 내가 널 지켜줄 차례야.
친구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액션 공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