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깬 2~3 명의 말년 고참들도 따라서 뛰쳐 나갔다.

100 여 미터를 달려 황급히 도착한 탄약고.

나무 다리를 건너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 탄약고 쪽을 총으로 겨누고 있었다.

장마철이었지만 간간히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 때문에 누구인지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후 레쉬를 박상병 등에 비추던 소대장이 물었다.

"박ㅇㅇ. 니가 쐈어©"

아무 말 없이 몇 초간을 계속 탄약고를 주시하던 박상병이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돌렸다.

후 레쉬 불빛 속에서 확인된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당시 목격했던 고참들 얘기로는 박상병의 튀어나올 듯 크게 부릅 뜬 눈이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한다.

소대장은 신속히 박상병의 총기를 회수하고 탄약고 근무를 2시간씩 복초근무로 돌렸다.

행정반에 돌아와서도 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흐느적 거리는 박상병의 목덜미를 당직하사가 움켜 쥐었다.

"야 미친놈아. 정신차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박상병에게 소대장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고개를 떨구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르는 분비물을 떨구며 박상병은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귀신을 봤습니다."

이 한마디에 행정반에 있는 사람들은 몇 초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다.

탄약고 초소 새벽 2시 근무자인 박상병은 이전 근무자와 교대를 하였다.

이전 근무자로부터 특별한 이상 징후를 보고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박상병은 늘 그렇게 자연스럽게 근무에 임했다.

탄약고 초소는 조금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블럭벽돌로 가슴 높이까지 쌓아올린 구조에 천장은 슬레이트로 덮어져 있다.

벽돌과 천장 사이에는 네 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고 정면의 공간은 유리, 그리고 측면과 후면은

비닐로 둘러싸여 있다.

20여분이 지났을까©박상병은 바람소리 사이로 들리는 작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박상병은 스스로 강건해지려고 했지만 정체모를 그 소리 때문에

초소밖으로 일단 뛰쳐 나왔다. 그리고 초소 뒤쪽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을 향해 총을 겨눴다.

"아...신발 뭐야©"

욕이 저절로 튀어나오면서도 박상병은 계속 자신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소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야..........하하하......'

박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총알 한발을 장전하였다.

전에 있었던 귀신소동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지만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은 그것이 아니었다.

"야이 신발년아 나와!!!!!!!"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 미터 언덕 위에 나타난 희멀건 형상.

극도로 흥분한 상태임에도 박상병은 천천히 초소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탄약고 초..초소에 누가 있습니다...지금.."

인터폰으로 통화를 하는 와중에 박상병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바로 코 앞의 유리창 정면에 나타난 희멀건 형상.

박상병의 온몸은 굳어버렸지만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조용히 소총의 안전핀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에 나타난 그 희멀건 형상이 자신의 뒤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상병은 고개를 모두 돌려 그 정체모를 형상의 얼굴을 확인할만큼 강심장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 박상병은 방아쇠를 당겨 허공에 총탄을 날린 후 미 친 듯이 초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건너 참나무 아래에 웅크린 후 초소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래도 난 아직도 박상병이 엄청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그 여자 형상이 초소안에서 내 뒤에 있다고 생각되었다면 난 그자리에서 기절하였을지 모른다.

모든 얘기를 마친 박상병은 내무반으로 조용히 이동하였다.

이미 내무반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였고 무슨 영문이지도 모르는 부대원들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들어오는 박상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야. 당분간 박ㅇㅇ, 야간근무 열외시켜."

행정반에서 들리는 소대장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무표정한 얼굴의 박상병은 침상에 걸터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두 세번의 긴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 병장들의 괜찮냐는 질문에 박상병은 괜찮다며 근무복장을 조용히 해체했다.

그러나 빨갛게 충혈된 박상병의 두 눈을 보고 더 이상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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