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나른해지면서 힘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외마디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헉!"

내가 소리낸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건 소리도 아니다.

숨이 나오다가 목에 걸린 것이다.

영화 속의 비명은 다 거짓이었다. 정말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갑자기 사물이 멀어지고 눈 앞의 영상이 시선 중심으로 모아지면서 주변이 tv화면 꺼지듯이 어두워진다.

그래도 난 군인이었나 보다.

무릎을 털썩 꿇어 주저앉으며 기절 직전까지 갔지만 내 오른손의 소총은 놓지 않았다.

내 머리는 그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떨어뜨린 손전등 때문에 그 형상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소총을 들어 쏘라고 명령하였지만 정말로 바늘하나 들어올릴 힘조차 없었다.

"저..정ㅇㅇ 상병님....정ㅇㅇ 사..상병님...."

난 미친듯이 정상병을 불렀지만 만취한 사람처럼 혀가 구부러져 발음이 되지 않았고, 가는 숨소리만이 새어나왔다.

저항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기세에 눌린 나는 바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뭐하고 있어 강아지야!!!!!!"

정상병의 미친듯한 외침이 들렸다.

"야 이 신발놈아!! 불켜라고!!!"

그런데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자세로 머리를 숙인 채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장대비만 계속 맞고 있었다.

'차라리 기절해 버렸으면 좋겠다. 바보같은 내가 정말 싫다. 개병 신이다. 머저리같은 새끼. 지랄맞은 새끼'

이런 내 스스로를 자책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맴돌자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정상병이 참지 못하고 돌아왔다.

내 오른쪽 뺨에 손전등이 비춰지는 것이 느껴졌다.

"야....너 왜 그래©"

조용히 다가와 내 얼굴을 확인하던 정상병이 또 다시 물었다.

"야 신발놈아. 초소에 불 켜라고 했는데 너 뭐하고 있는거야©"

난 그제서야 고개를 천천히 돌려 울먹이며 거친 말을 내뱉았다.

"이...씨..신발..초소안에 있단 말입니다."

헉헉대는 정상병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뭐©뭐라구©"

"그 신발년이 초소안에 있단 말입니다."

평소 거친 언행을 하지 않는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뱉는 욕설을 막을 수 없었다.

정상병은 후다닥 총을 초소쪽으로 겨누고 천천히 손전등을 비추었다.

이리저리 살피던 정상병이 내게 물었다.

"뭐 ....뭐......뭐가 있다는 거야©응©아무 것도 없잖아"

화가 난 듯한 정상병은 초소문을 부셔져라 쾅 닫아 버렸다.

오늘 그 여자가 날 엿먹이려나 보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갑자기 군화발이 내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정상병이 욕설을 내뱉으며 나를 발로 밀어버린 것이다.


"이 강아지야! 정신 안 차려!!"

무릎을 꿇은 상태에 넘어진 나는 다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바보같이 보이는 내가 미웠는지 정상병은 다시 한번 군화발로 내 가슴팍을 밀어붙여 나를 넘어뜨렸다.

"병 신같은 새끼!! 일어나 이 강아지야!! 이런 일로 주저앉아 있냐©이 병 신새끼야!!"

내가 상체를 다시 일으키자 정상병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나를 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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