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ㅇㅇ 상병님.. 괜찮습니까©"

나의 물음에 정상병은 아무 대답도 없이 담배만 깊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멍하니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연신 담배만 빨던 정상병이 입을 열었다.

"야.....이ㅇㅇ"

"일병! 이ㅇㅇ!!"

"그날...니가 귀신봤다는 날...."

"예.."

"니가 초소안에 그 여자가 있다고 했을 때 말야..내가 확인했잖아"

"예.."

정상병은 계속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를 빨며 말을 이었다.

"나도 초소안에서 그 여자 봤다.."

"예©"

"나도 너처럼 그 여자 봤다구..."

"그런데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정상병은 담배 꽁초를 슬리퍼 바닥으로 짓이기고,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말을 이어갔다.

"반투명한 희멀건 여자형상이 허공에 반쯤 떠 있더라.

그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내가 어떻게 해 볼 상대도 아니었어.

너무 겁이 나서 얼른 문을 닫았어. 정신 차리고 뭔가를 해야겠는데, 아니 미친척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니가 그러고 있는 걸 보니까 화가 갑자기 치밀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수송관이나 중대장한테 그 얘기 안하셨습니까©"

"넌 부사수고 난 사수 아니냐. 게다가 다음 달이면 병장 달 놈이 그런 소리하고 있으면 날 뭘로 취급하겠냐©

본의 아니게 너만 찌질한 놈으로 만든 것 같다."

그 해의 장마는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조금씩 정상병은 정상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부대원들은 야간근무에 대한 공포감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

조명이 없는 탄약고에 백열등이 설치되었고, 조금만 이상한 징후라도 보이면 위병소에 불이 켜지기 일쑤였다.

우리는 빨리 파견 나간 부대원들이 돌아오길 염원했다.

또 한번의 소동이 벌어진 것은 장마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완전히 장마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며칠동안 구름만 껴있고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그 날은 야간사격을 하는 날이었다.

DCInside for iPh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