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룩! 끼룩!


"아이 씨..."


 

새들이 울려대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날이 갰는 지 하늘이 온통 새파랬고 새들의 흔적은 이미 저 멀리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잠시 새들을 바라보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한번 달아난 잠은 더 이상 오질 않았다.

게다가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냉기때문에 몸이 덜덜덜 떨렸다.

...몇 번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모래가 잔뜩 묻은 옷을 털면서 일어나고 보니 주변에 해운대를 거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웬지 이 이상 누워있다간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이 노숙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왜 내 지갑이 없지? 그리고 가방은?'

낯선 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혹시 해서 주머니를 뒤져보니 지갑이 사라지고 없었다.

집에서 나올 때 생필품만을 가득 챙겨왔었던 가방 또한 없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주머니 안에 지갑이 들어있었고 또 가방도 머리에 베고 있었는데 둘 다 없어진 것이었다.

"시발!"

분노로 끊어오르던 내가 큰 소리로 욕을 하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내 물건들이 어디로 간 거야...'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듯한 사람들의 시선에 난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해운대 백사장을 거닐며

지갑과 가방을 찾으려 애를 썼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냐구... 빌어먹을 시발..'

약 30분간 해운대의 이곳저곳을 뒤져 발견한 건 지갑이나 가방이 아닌 동전 몇 개 뿐이었다.


동전이라고 해봤자 겨우 10원, 50원짜리 몇 개가 전부였다.

'.....'

가방이야 그렇다 쳐도 정작 지폐가 가득 든 지갑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니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피곤함에 골아떨어져 있을 때 누군가 가방과 지갑을 훔쳐간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바깥 주머니가 아닌 안 주머니 속에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넣어뒀던 거였다.


이 돈은 아직 내 주머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선 배고픔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해운대 바깥으로 나와서 근처 국밥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였다.

국밥을 먹으면서 배고픔을 달래며 돈을 세어보니 만원짜리 단돈 4장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방금 주문한 국밥 한 그릇이 5천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장 물리고 싶을 정도였다.

'...괜찮아... 어차피 친척집에 들어가면 되니깐 말이야.'


국밥을 먹고 난 후 해운대 손님 전용 표시가 되어있는 싸구려틱한 비닐막 샤워실 안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샤워를 하고 나자 한층 개운한 기분이 들면서 지갑과 가방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생각들은 잠깐 사라진 듯 했다.

그래도 어딘가 모르는 답답한 마음에 조금만 더 해운대를 머무르며 계속 돈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어린애들이 모래성을 지으며 바닷가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는 모습,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팔짱을 끼는 모습,

모래사장 한 가운데 그물을 놓고 족구를 즐기는 대략 여덟명 정도의 학생들까지...

그 중에서 가장 볼만했던 것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갈매기였는데 수백수천마리쯤 되어보이는 숫자가 무리지어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나를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서 물놀이를 잠시 중단하거나 멍하니 지켜볼 정도였다.

아마도 내 일생중 절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웬만해선 잘 볼 수 없는 장면을 보고 난 뒤 여전히 지갑과 가방을 찾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어서 다시 기운이 쭉 빠졌다.

'이제 못 찾을 것 같은데 그만 가볼까... 여기서 자는 게 아니었는데.... 바보같은 생각이었어..'

친척집으로 가기 위해 해운대를 벗어나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이 보였다.

마침 목에서 타는 듯한 갈증이 나서 해소하기 위해 물을 살 목적으로 근처 편의점에 들렸다.

- 쿠구구구....

편의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려 할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고 동시에 내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 쨍그랑~!! 털썩!!! 털퍼덕!!!!!

편의점에 가지런히 진열되있던 상품들이 하나둘씩 땅 아래로 툭툭 떨어졌고 내가 열어놨던 편의점 냉장고 안의

캔, 병, 플라스틱 따위의 내용물들도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편의점 주인과 나는 몹시 당황하여 몸을 아래로 숙이고는 양 손으로 땅바닥을 짚었다.


두려움 속에서 몸을 떨고 있을 때 땅 위를 미세하게 흔들던 지진이 점차 약해지는 느낌을 받었다.


- ....구구구......


잠시 후, 지진이 완전히 멈추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깨끗했던 편의점이 바닥에 떨어진 각종 물건들 때문에 좀 많이 지저분해져있었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편의점 바깥으로 나가 상황을 살펴보니 거리의 사람들도 많이 놀란 듯 보였다.


 

편의점 위쪽 상단 맨 좌측에 있는 작은 TV의 뉴스 방송에서도 방금 전 지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후 별다른 진동이 없었던 걸로 보아 이번 지진은 잠시 일어나고 마는 여진이었다.

지진의 강도 또한 약했기에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뉴스 속보입니다. 지진이 한 차례 일어났습니다. 강도는 약했으며 며칠 전에 일어난 지진과 유사합니다.

우선적으로 방금 일어난 지진은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진에 따른 피해 소식은 아직 알 수 없으나

차후 상황을 파악하는 대로 속속 보내드리겠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나는 방금 산 물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지하철이 XX역에 도착하자 표를 내고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약 5분간 걸었다.

걷는 동안에 지갑과 가방을 동시에 잃어버린 나의 무지함과 어머니를 때렸던 절망감등이 겹쳐 머리가 아파왔다.

또 한 가지 골치아팠던 문제는 친척집을 방문하게 되면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드디어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인 무지개아파트 정문 앞에 다다르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였었지...?'

친척이 살고 있는 무지개아파트까지 온 것은 정말 좋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요 근래 친척을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관심도 없다 보니 대체 몇 호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전화번호는 무엇인지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도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자칫했다간 친척을 만나보기는 커녕 또 어제처럼 해운대 모래사장에 누워서 노숙자처럼 지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나는 한숨을 내쉬며 약 18층 높이의 수많은 무지개아파트들의 ???동들을 보면서 찾아다녔다.


한시간 동안 돌아다녀봤지만 찾을 수 있기는 커녕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냥 생각나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혹시 이 무지개아파트에 사는 김희애 씨라고 아세요?"

친척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다니며 근처를 지나다니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다.

하기사... 이런 식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었다... 요즘 사회는 한 곳에서 수십년을 오래 살아도
자기 이웃 이름조차 모르는 일이 태반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부터가 그랬으니 말이다....

"누굴 찾는 것 같은데...그러지 말고 아파트 입구 근처 경비실에 가서 물어보세요."

모르는 사람이 날 안쓰럽게 생각했던 지 말을 건넸지만 그렇다고 내가 경비실을 안 가보려했던 건 아니었다.

단지 나같은 외부인에게 경비실의 절차가 조금 까다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게 그 이유였다.

...계속해서 주위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내가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무작정 입구에서 기다리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무지개 아파트 입구 쪽에 있는 4인용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도보 위를 걷고 차들이 도로 위로 운행하는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았을까..... 정말 지루하고 따분했다.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져 오던 중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어느 덧 오후 5시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 앉아있으면서 찾아야 하는 거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생각으로 끈기 있게 몇 시간을 버텨왔던 나였지만 이제 더 이상은 한계였다.

결국 난 마음을 굳게 먹은 뒤 입구 근처의 불빛이 환한 아파트 경비실로 가서 경비원에게 말을 건넸다.

"무지개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희애씨를 좀 찾을 수 있을까요?"

"찾아줄 수 있긴 한데 누군지...?"


천으로 안경알을 닦고 있던 경비원이 안경을 다시 얼굴에 쓰고 나서 말했다.


"전 서울에서 왔는데 김희애씨의 친척 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도 오랜만에 찾아와서 김희애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과 호수가 어딘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렇습니다."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네. 부산 해운대 구경차 온 김에 기왕이면 친척집에 잠깐 들르려고 왔어요."

"그렇구만.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지."

나이가 좀 있어보였던 경비원은 생김새가 좀 까다로워 보였지만 직접 대하고 나니 그렇게 까다로운 건 아니었다.

책 같은 걸 뒤적이며 한참을 찾던 경비원은 다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곳에선 자네가 말하는 김희애씨가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말이죠?"

난 전혀 예상치 못한 경비원의 말에 크게 당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