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이 살고 있지 않다구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듣자 난 크게 당황했다.

"김희애씨가 여기 살고 있다는 기록이 없어."

"그게 말이 돼요!? 다시 한번만 더 찾아보세요!"


경비원이 약간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다시 책 같이 생긴것을 뒤적였다.


"다시 찾아봐도 역시 김희애란 이름은 없어. 학생이 잘못 찾아왔다거나 아니면 착각하는 거 아닌가?"


".....제가 착각했을리가 없잖아요.."

 

나는 경비원을 향해 답답해보이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것 참... 기록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자네 사정은 딱하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전부야.

그리고 원래부터 여기 안 산 거 아냐? 그것도 아니면 그 김희애란 사람이 이사를 갔다든가."

경비원의 단호한 말에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말 한 마디 없이 그냥 뒤로 돌아섰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말도 안돼....'



몇 년 전 마지막에 친척집을 한번 방문했던 이후 이사했다는 그런 소식같은 것을 듣지도 못했다.


하물며 드문드문 그 친척과 어머니가 전화통화를 하는 모습과 또 이따금씩 집을 새로 알아본다는....


별안간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혹시 지난 3년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을 때 이사간 거 아냐?


만약 이사갔다는 게 사실일경우 더 이상 친척집에 의지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온데갈데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난 어쩌면 그 경비원이 잘못 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계속 기다려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지개아파트 입구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친척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발... 개시발...절대 그럴리가 없어..'


그게 사실일리 없다고 자위하면서 마음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잘 모르겠지만 환하게 비추던 햇빛은 저물어가고 없었다.

그 동안 무지개아파트 입구 근처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친척, 아니 그 비슷한 사람조차 전혀 보이질 않았고

난 그로 인해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친척이 정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까...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두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있던 나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씩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힘들게 나아갔고 바로 앞에 무지개아파트의 상가가 나왔다.

상가 앞쪽에 거울이 하나 보였는데 그건 사람의 모습을 전신으로 비출 수 있는 아주 큰 거울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커다란 거울 앞으로 다가가 내 모습을 한번 자세히 비춰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사회의 패배자이자 형편없는 인간의 한 모습이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지...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학창 시절의 한 때였다.


고등학교를 형편없는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서 어렸을 적 내가 희망했던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해 자괴감에 휩싸였었다.

차선책으로 전혀 관심도 없었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지방대학에라도 들어가려 했으나 그 벽조차 높았다....

그래도 학업이 아닌 취업 쪽을 가급적 지향하는 전문계를 졸업했기 때문에 몇몇 중소기업에라도 취직하길 간절히 바랬건만 어림도 없었다.

내 생각이지만 이력서를 받아든 그들이 처음에는 친절한 얼굴로 날 응대했겠지만 뒤에 가서는 내 이력서를 쓰레기통에 쳐박았을 것이다.

대학 진학과 취업, 두 개를 다 놓친 이후 폐인으로 전락했고 그 와중에 학창시절 허무하게 날려버렸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괴로웠다...













 



 

 


 

 




 

- 후루루룩..... 후룩....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무지개아파트의 상가 바깥 쪽에 붙어있는 국수집에서 국수를 하나 시켜 먹었다.


국수를 먹는 와중에도 친척이 지나갈까 하는 은근한 기대감에 내 눈길은 항상 무지개 아파트 입구쪽을 주시했으며

제발 친척의 얼굴이 내 눈 앞에 띄길 바랬다.

수중에 있는 돈도 점점 떨어져 가는 내게 친척은 희망이 가득 찬 하나의 빛줄기같은 존재였다.

"올해 지진의 횟수가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가운데 지리학계 관련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음... 웬만해선 지진이란 게 감지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 한 가운데에는 요즘 들어 아시아 쪽에서

많은 휴화산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짐작합니다..

더불어 전 세계 각지에서도 잠들어 있던 휴화산이 활동을 하며 그 중 일부는 활화산이 된 예가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후지산도 그렇고 북한의 백두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수집 TV에서는 YTN 뉴스가 지리학쪽의 관련된 사람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몇 개월전에 일어난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대지진이라거나 중국 북경에서 일어난 대지진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설령 북한의 백두산이 폭발한다 해도

대한민국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백두산 폭발로 인한 시뮬레이션 검증을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대에 들어서 살펴보면 일본처럼 진동을 감지할만한 소규모 여진들이 자꾸만 일어나니 시민들도
많이 걱정하는 분위기입니다. 또 요즘 들어 특정 동물들의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어제도 해운대 쪽 바닷가에서 갈매기 수천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혔는데요."

"요 근래에 일어난 지진들은 모두 여진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진 관측계에서도 그 정도의 상태가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의 이상징후가 있다 하셨는데 그런 것들이 때론 괜한 발작이거나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갈매기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만약에 미국이나 중국, 일본처럼 큰 지진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국가에서는 뭔가 대응책이라도 있을까요?"

...웬만해서는 지진 한번 일어나지 않았던 대한민국이었기에 최근 들어 이런 뉴스가 자주 나올만 했다.

몇 달 전 게임에 미쳐있었던 나도 미국이나 중국에서 일어났던 대지진을 게임 속 사람들의 얘기나 실시간 뉴스로 접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은 어차피 다 시간이 흘러가면 자연스럽게 알아서 안정될터였다.


그 때의 난 오히려 게임 속 캐릭터 레벨업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뭐,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진이 처음에 발생했을 때 난리가 아니었지만 그것이 두번세번 반복될 때마다 사람들은 대체로 적응해갔다.

지진이 일어날 때만 잠깐잠깐 놀라고 하루이틀만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내 곧 자연스러워하는 그런 반응 말이다.....


 


 


 


 

 













국수를 먹고 난 뒤 이제는 완전히 어두캄캄해진 환경 속에서 무지개 아파트 입구쪽에 친척이 다가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져서 조금 더 자세히 봐야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살짝 훓어보면서

친척인지 아닌 지 구별했다.

만에 하나 오늘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은 돈이 조금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하루이틀 정도만 친척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 뒤

정 못 찾겠다 싶으면 그냥 어쩔 수 없이 다른 친척들에게 가야만 한다. 물론 그런 방법들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샤워나 수면같은 것도 비용이 제일 저렴한 찜질방에서 해결해야한다.

...대체 왜 하필이면 이럴 때 휴대폰이 없는 지 내 자신에게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고등학교 졸업 전 박살내버린 휴대폰.... 이후에는 집 안에 처박혀 게임만 줄창 해댔기 때문에 휴대폰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안 썼다...

한두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도저히 나타날 것 같지 않아 그냥 무지개 아파트 정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 쿠구구구구구구.........

정문 바깥 도보의 신호등 앞에서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쯤  갑자기 땅 밑 발바닥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은 발 밑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진 따위 무시하겠지만 이번 것은 웬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근처에 있던 주위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 구구구궁..... 쿠구구구구궁!!!!!!!

지진의 강도는 처음 느낄 때보다 더욱 커져서 이젠 온 몸이 떨리는 데다가 근처 주차되어있는 자동차에서도

충격으로 인한 경적이 울리고 있었다. 결국 난 천천히 앉아서 바닥을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짚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때마침 내 눈에 작은 유모차 하나가 아직 초록 불로 바뀌지 않은 신호등 앞의 도로로 건너가고 있었다.


"안돼!!!!!"


곁에 있던 얘엄마로 보이는 한 여성이 유모차를 향해 비명을 질렀고 나는 재빠르게 뛰어나가 황급히 유모차를 손으로 잡았다.


그런 다음 다시 안전한 도보로 올라가려했지만 다소 강한 지진의 진동파로 인해 시야와 몸이 조금씩 흔들려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근처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이 알게 모르게 진작 멈췄다는 점이다.


- 구구구구........



지진이 점차 잦아들자 나는 도보로 올라와 얘기 엄마에게 유모차를 주었다.


이제 지진이 완전히 멈추자 얘엄마는 내 양 손을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내 근처에 있던 주위 사람들도 좀 전의 지진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면서 날 대견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리고 전혀 뜻 밖의 지진이었지만 아까 뉴스를 본 것도 있고 하니 아무리 강해봤자 어차피 곧바로 끝나버릴 단순한 여진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