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일까, 어째서 달리고 있는 걸까, 하지만 걸어선 안 된다. 그 녀석이 오고 있다. 곧 근처까지 쫓아올 거다. 멈춰선 안 된다. 빨리 도망쳐야.. 도망쳐야.. 거기서 눈을 떴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 기분 나빴다. 샤워를 하면서, 방금 꿨던 꿈을 떠올렸다. 오늘은 여친을 만나는 날이라서, 밝은 얼굴을 하고 나가야만 한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울을 보고 있었다. 여친과 만난 지 몇 시간이 흐르자, 어제 있었던 일은 그저 꿈처럼 느껴졌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요리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반흔딸아. 오늘 첨 봤을 때, 안색이 많이 나빠 보이길래 놀랐어.] [아.. 그랬어? 난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괜찮은 거 같네. 기분 탓이겠지.] 물론 여친에게는 이야기 안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여친과의 만남이, 나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싫은 느낌이 들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 좀.] 여친은 그렇게 자리를 비웠다. 기분 탓인가. 가벼운 감기라도 걸린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이 무섭게 다가왔다. 왜일까, 왜일까? 뭐가 무서운 걸까? 평상시랑 똑같은 풍경인데도. 눈을 조금 흐리게 뜨자, 유리창으로 레스토랑 안의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얼어붙었다. 그 때, 그 장례식 때, 그 무서운 눈. 모든 것을 파.괘.한.다. 그런 눈망울로 나를 보고 있는 켄지. 그때처럼 눈도 하나 안 깜박이고, 오로지 나만을 보고 있었다. 그날은 점심식사를 하고, 여친의 집에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는 곳은 7층 건물에서 5층에 있다. 나는 항상 소리 없이 계단으로 올라간다. 천천히 올라간다. 매일 계단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한번 시험해보면 좋겠다. 꽤 운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피곤했기 때문에 계단으로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리고 이럴수록 자신에게 엄격하자는 생각에, 계단으로 가기로 했다. 소리 없이 조용히, 그리고 느긋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4층에 도착. 앞으로 한 층만 더.. 그렇게 생각하면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내 디뎠다. 그리고 반쯤 계단을 올라갔을 때, 우리 집 문 앞에 사람 그림자가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굴까, 친구? 그런 생각 하면서 올라가려는데, 그림자가 움직였다. 달빛에 비친 그림자의 주인공은 켄지였다.
어째서,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어떻게 알았지.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야. 도망치려고 했을 때, 내 몸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다리가 생각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켄지는 그런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벽에 몸을 기댔다. 다행히 켄지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켄지는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켄지가 들을 것만 같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켄지는 계단은 아니고 엘리베이터로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엘리베이터 쪽을 보고 말았다. 기분 탓인가. 켄지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았다.
말 먼저 걸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