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전환겸 한 잔 마시러 갈까도 생각했지만, 취한 채로 돌아가면 켄지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오는 길에 치한퇴치용 스프레이와 버저, 테이프와 비상식, 나무 판을 바구니에 넣고 계산대로 가려는데,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금속 배트. 꿈에서 켄지를 때리던 금속 배트. 사자... 그놈이 거칠게 굴면, 이걸로 때려 죽일 수 있다. 이 비현실적인 시간이 끝나게 된다. 내가 배트를 사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나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생각하는 걸까? 뭐가 날 바꾼 걸까. 내 몸이 누군가에게 납치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계산대로 향했다. 책방에 가서 [격퇴! 스토커, 괴한, 치한, 도난. 여성을 위한 방법 메뉴얼.]이라는 책을 사고, 슈퍼에 가서 식료품을 사고 집으로 갔다. 스프레이를 가방에 숨기고 집으로 갔다. 무사히 집에 도착해서, 곧바로 계획한 일을 실행했다. 창문에 잠금장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무판을 검정테이프로 붙였다. 창에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게 무서워서 그랬다.







우편 포스트에도 나무판을 붙이고 싶었지만, 나무판이 부족했기 때문에 테이프만 붙였다. 그날은 많이 지쳐서, 비상식만 먹고 샤워하고 메뉴얼을 조금 읽다가 자려고 했다. 잘 수 없을것 같았지만, 막상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으니, 자연스럽게 잠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현관으로 향했다. 우편 포스트에 붙어있던 테이프가 뭔가로 잘려 있었고, 거기에는 검은 봉투가 떨어져 있었다. 보지 않고 버리려고 했지만, 계속 마음에 걸리길래 그냥 보기로 했다.







1/1 나는 오늘도 살인자의 집으로 향한다. 오늘 나올려나. 나왔으면 좋겠다. 빨리 만나고 싶은데. 나는 이녀석의 집 앞에 숨어 있다. 내가 전에 왔을 때와는 약간 달라진 걸 깨달았다. 쓸데 없는데. 이런 짓은 쓸데 없는데. 뭐 해. 이런 일을 할꺼라면, 차라리 나랑 빨리 만나는게 더 좋은데. 살인자의 생각은 나는 모른다. 나는 앞 왔을 때와 집의 모습이 다른데 깨달았다. 쓸데 없는데. 쓸데 없는데. 뭐 해. 이런 일 한다면 빠르게 나와 만나면 좋은데. 살인자의 생각은 나는 모른다.







이번에는 안 태우고, 변기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뭘 생각했던건지는 기억하지 않지만, 아마도 어떻게 저놈에게서 도망칠까, 어떻게 살해당하기 전에 저놈을 먼저 죽일 수 있을까,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한 번 병원이라도 가야 하나..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친구에게 부탁할까하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도 없었고, 더우기 돈도 쪼달리기 때문에 가기로 했다. 알바하는 곳에서는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다. 이런 평범함이 계속 되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맨션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사람 그림자가 맨션에서 나왔다.





나는 재빨리 자판기 뒤에 숨었다. [이리로 오면 끝이다..] 가방에서 치한퇴치용 스프레이를 꺼내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그림자는 나의 기대를 배반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크게 뛴다. 판매기 근처에 있는 가로등이 그림자를 비추었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었다. 뭐 하는거야 난... 가볍게 인사하고, 맨션으로 향했다. 너무 신경쓰느라 지친걸까.. 그런 생각하면서 맨션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내가 아까 숨어있던 판매기 쪽을 쳐다봤다.





가로등 아래에 사람이 있었다. 장례식때 본 얼굴. 레스토랑에서 보고 있던 얼굴.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그 얼굴. 켄지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맨션으로 달렸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멈춰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갈까, 계단으로 갈까.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닫기 폐튼을 눌렀다. 빨리 닫혀라, 닫혀라! 닫혀라! 닫혀라! 내 소원이 통한 것인지, 엘리베이터는 켄지가 오기 직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너머로 켄지를 봤다. 켄지를 가방을 매고, 손에는 잭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나는 일단은 안심했다. 이제 안심이다. 엘리베이터 유리문 너머로, 켄지를 보려고 했지만 켄지의 모습은 안 보였다.





아! 계단이 있잖아. 안심하면 안 되지! [빨리 5층으로 올라가란 말이야!]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5층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켄지는 없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4층 정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재빨리 집 앞에 가서, 열쇠를 꺼내려고 했다. 초조한 나머지, 열쇠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서둘러 주웠다. 그리고 주우면서 계단쪽을 보았다. 켄지는 벌써 5층에 와 있었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열쇠를 주워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 온 순간, [쾅!]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잭나이프로 문을 쳤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현관문을 잠그고, 화장실로 가서 문을 잠갔다.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거 계속 올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