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부 관리와 과장은 서로 안면이 있을 법도 했지만 서로 말하기가 서먹한 듯 했다.
혜주와 과장 역시도 서로 무슨 말을 할 법도 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물론 혜주가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혜주가 묻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였다.
"과장님, 왜 저를 끌어들이셨어요?"
하지만 그 말을 이 자리에서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물어보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과장이 먼저 혜주에게 설명을 할 법도 했지만 과장은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차 앞으로 희한한 형상이 보였다. 우주인 같은 복장을 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화생방 차단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상한 기계가 놓여있었다.
지프차는 그 앞으로 와서 섰다. 그러자 화생방이 다가와서 경례를 붙였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상병은 차의 네 개 문을 모두 열었다. 혜주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화생방은 조수석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화생방은 무엇을 실례하는지 말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차안에 호스의 끄트머리 같은 것을 집어넣었다.
옆에 있던 이상한 기계에서 뻗어 나온 호스였다.
그리고는 그 끝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콜록콜록. 네 명은 기침을 했다. 별로 독하지 않은 소독연기였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차안에 연기를 뿜어버리자 순식간에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혜주는 아무런 통보도 없이 연기를 뿜어버리는 군인들이 너무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뭐하는 짓이오!"
부검팀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무런 해명도 사과도 없이 연기만이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연기가 어느 정도 가시고 나자 덜컹하고 차가 출발하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 속력을 내면서 운전을 하는 상병은 연기가 다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창문을 닫았다.
"죄송합니다. 대대장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작전지역에서는 누구나 구역을 통과할 때마다 소독을 해야합니다."
네 명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차에 몸을 맡겼다.
"저기 보이는 저 건 뭡니까?"
습관적으로 창 밖을 기웃거리던 부검팀장이 입을 열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검은 밤하늘에 희뿌연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뭐 말씀하시는 겁니까?"
운전을 하느라 한 눈을 팔 수 없는 상병이 되물어왔다.
"왼편에 보이는 연기 말이오." 과장이 부검팀장 대신으로 설명을 했다.
"아, 그건 시체를 소각하는 연기입니다."
"소각? 아직 원인이 구명되지도 안았다면서 막무가내로 소각을 하는 겁니까?"
과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대대장님 명령입니다."
상병은 속 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일 것이었다.
"그 대대장이라는 사람 좀 만나야겠군."
과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상병이 그 말을 들었는지 대꾸를 해왔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대대장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그리로 가는 중입니다."
네 명은 궁금증과 안도가 섞인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대대장이라면 이른바 '붉은손 하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런 위험한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투철한 군인정신을 가진 사람일까? 아니면 그 역시 사태수습 이후에
뭔가 엄청난 보상을 약속 받은 것일까?
아마도,
차에 타고 있는 네 명처럼 그런 심정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상태일 것이었다.
차가 몇몇 천막 막사가 마련되어있는 공터에 이르렀다.
군용천막으로 만들어진 막사라 어둠에 섞여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너댓개 정도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차는 막사가 모여있는 입구에 정차하고 시동을 껐다.
총을 든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젊은 중사였다. 그는 과장의 옆에 있는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중사를 따라갔다. 중사는 두 번째 막사 쪽으로 걸어갔다.
막사 앞을 지키고 있던 초병이 경례를 붙여왔다. 중사는 경례도 받지 않고 막사의 문을 열었다.
"충성."
"어, 그래. 왔나?" 안쪽에서 약간 칼칼한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에 고함을 많이 치는 사령관이라는 인상이 풍겼다.
"들어오시라고 해."
"네."
중사는 일행을 향해 뒤쪽으로 돌아섰다.
"들어오시죠."
과장을 선두로 일행은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막사 안에는 중령 계급장을 단 대대장이 서서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시오. 거기 의자에 앉아요."
한 쪽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를 가리키며 대대장이 말했다.
중간키에 약간 마른 듯한 그는 딱히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지는 않았지만 눈매만은 날카로웠다.
나이는 50대 정도로 보였지만 얼굴이 검게 탄 까닭에 늙어 보이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더 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행은 테이블 쪽으로 가서 각각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대대장도 남은 의자 하나에 앉았다.
테이블까지 마련된 막사는 사령관의 그것답게 나름대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소각을 지시하신 것이 중령입니까?"
다짜고짜 과장이 물었다. 원래부터 직설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혜주는 약간 놀랐다.
딱딱한 병영의 분위기에 혜주는 어느 정도 압도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역시 과장은 남다른 면모를 지니기는 했다.
"아, 그것 말이오? 그렇소. 내가 지시했소.
마침 버섯 재배하던 건물이 소각하기도 좋고 해서."
약간은 공격적인 과장의 질문에 대대장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직 사태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마당에 그렇게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되는 겁니까?"
과장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아까보다 훨씬 공격적인 질문이었다.
마치 문책을 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겼다.
혜주는 '아직 사태의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렇게 처리해도 괜찮을까요?'
하는 식으로 좀 더 공손하게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내뱉어진 말이고,
게다가 넷 중의 팀장은 과장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염병이 퍼지는 데에는 소각하는 게 최상이오.
사람을 묻어놓으면 들쥐가 파먹어서 병균을 옮긴단 말이야."
대대장은 역시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는 얼굴에 웃음마저 띠면서 대답했다.
사실 대대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전염병이라는 가정 하에 말이지만.
"하지만 전염병인지 어떤지도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이게 전염병이 아니면 뭐겠소?
하루에 사람이 하나씩 죽어나가고 있단 말이야.
시체는 발생하는 즉시 소각시키라는 명령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오."
대대장의 퉁명스런 대답이었다.
"그럼 군이 이 곳을 관할한 게 이틀 밖에 되지 않는 건가요?"
혜주가 과장과 대대장의 다툼을 끊을 겸해서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거의 일주일이 되었지."
"하지만 죽은 사병은 둘 뿐이라고 하던데요?"
"그럼. 사병 둘. 내 피 같은 부하들이 죽었지. 그리고 일차로 왔던 붉은손 네명."
넷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일차로 왔던 붉은손?
분명 소령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투입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린 우리가 처음인 줄 알고 왔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과장이 놀라운 침착성으로 물었다.
"그래요? 허, 거 참. 나야 외부에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 알 수가 있나.
어쨌든 그랬다니 유감이오. 뭔가 본부에서 행정상의 착오가 있었나보지."
대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마치 혜주 일행을 놀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우릴 속였어!" 부검팀장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제 와서 어쩌겠소." 보건부 관리가 체념하듯 부검팀장을 달랬다.
"부검을 할 시신은 남겨두시고 소각하신 겁니까?"
과장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나왔다. 혜주는 다시 한 번 과장의 과감성에 놀랐다.
이 사람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이 분하지도 않은 걸까?
아니면 혹시 과장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온 것이 아니었을까?
혜주는 과장이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을 끌어들였을 리는 없다고 믿으려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약간의 의심이 남았다.
"글쎄. 남아있는 시신이 있을까? 아마 없을 꺼요.
희생자가 생겨나는 족족 태워버렸으니."
"그런 무책임한 대답이 어디 있소!"
과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화가 폭발하는 듯 한 수준이었다.
실지로 무책임한 대답이기는 했으나 과장을 제외한 혜주와 나머지 둘은
과장의 따끔한 말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생각에 이미 자신들의 임무는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과장의 질책이 혜주 자신에 대한 질책인 듯 느껴졌다. 혜주는 다시 자신의 막중한 임무를 상기했다.
'그래, 우린 생명을 구하러 여기에 온 거다.'
혜주는 속으로 되뇌이는 순간 자신이 좀 덜 계산적으로 바뀌었다고 느꼈다.
대대장은 과장의 언사에 기분이 틀어졌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과장을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감정을 수습하는 듯 입을 아래위로 다물었다.
그리고는 군인 특유의 냉정함을 되찾고 대답을 했다.
"내가 무책임하다고 했소? 아무도 내게 무책임하다는 말을 할 자격은 없소. 알겠소? 아무도.
왜냐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여기 이 자리에 있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자신의 조국을 수호하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야전이 뭔지, 전쟁이 뭔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기생 오래비 같은 젊은 장교들은 하나같이 몸을 사리고는 도망쳐버리고,
나만 여기 지휘관으로 남아서 바로 이 곳을 지키고 있는 거요.
알겠소? 내가 목숨을 걸고 이 곳을 지키고 있는 거라고! 내가!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가고 있는 이 곳을 내가 지키고 있어!"
말을 하는 동안 대대장은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과장을 포함한 혜주 일행은 대대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대장도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듯 다른 곳을 쳐다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막사 내에는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출처 무늬만토끼
헠헠 공이갤은 내가살린ㄷ다 리추앙밍좆까!!
소재가 흥미로워서 계속 보긴 한다만 글이 꽤 어설픈데;; 재밌나 계속 봐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