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장의 말 알겠습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과장이 조심스럽게 사과의 말로 정적을 깼다. 대대장은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은 상태였다.



"괜찮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어쨌든 체계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검을 통해 병의 원인을 알아낼 필요가 있구요."



"부검은 걱정 마시오. 곧 희생자가 생길 꺼요. 하루에 한 명씩 죽어나가고 있으니까.

일단 오늘은 마련된 숙소에서 쉬도록 하시오. 숙소는 원래 폐가이던 곳을 치워놓았소.

나야 군인이니까 이런 천막 막사에서 지내도

과장 일행은 숙녀 분도 끼어있으니 잘만한 데서 자야지 않겠소."


혜주는 자신을 위해 숙소를 마련했다는 말에 어쩐지

자신이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짐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어올 때 몸수색을 할 때도 그렇고.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선 전화의 벨소리는 귀청을 때릴 정도로 컸다.

대대장은 일어나서 뒤쪽에 있는 책상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래. 무슨 일이야? ........ 어디? 3중대?

알았어. 잠깐."



대대장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한 손으로 수화기의 송화구를 막고 일행에게 물었다.


"희생자가 발생했소. 지금 부검을 할거요?"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 합시다. 그래야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있지 않겠소."

과장이 먼저 말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겁니다." 과장이 대대장을 향해 알려주었다.



막 죽은 시신의 부검이라. 혜주는 어쩐지 소름이 돋았다.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죽은 시신의 해부도 수없이 해보았고, 살아있는 사람의 수술도 많이 해 봤지만

이제 막 죽은 시신의 해부를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 놈 태우지 말고 놔둬. 부검해야 하니까."


대대장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밖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봐!"


"상병 최정태!"


문 앞에 서 있던 초병이 크게 관등성명을 대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 분들 7구역으로 이동시켜."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은 혜주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어나셔서 제 7구역으로 이동하시죠. 그리고 내일 아침에 다시 뵙겠습니다."


과장과 일행은 일어나서 머뭇거리며 초병을 따라 막사를 나섰다.

대대장은 밖으로 배웅조차 나오지 않고 그들을 보냈다.



차는 바리케이트 앞에서 정차했다.

창문이 내려지고 화생방이 다시 호스를 꽂았다. 차안은 이내 연기로 가득 찼다.



"젠장. 이제 도대체 몇 번째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부검팀장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구역을 이동할 때마다 소독을 하는 탓에, 차로 이동을 하는 채 30분이 되지 않는 시간에도

벌써 다섯 번째 소독을 하는 중이었다.

짜증이 나는 건 혜주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느낌일거라고 위안하면서 참는 중이었다.

물론 계속 반복하다보니 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것도 있었다.


차가 출발하면서 운전을 하던 상병이 부검팀장의 불평에 대한 사과라도 하듯 알려왔다.



"이제 다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차가 멈추었다. 주위로는 군용 구급차 한 대가 서 있고,

화생방 복장을 한 군인들이 세네명 서 있었다. 일행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화생방 중 한 명이 일행에게 다가왔다.


"보호복을 착용하시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방독면의 울림판을 통과해서 나왔다.

마치 우주인처럼 온 몸을 감싼 그 복장을 혜주 일행도 착용하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런 복장으로 부검을 할 수 있을까요? 움직임이 둔해져서 힘들겠는데."


부검팀장의 말이었다. 아무래도 부검을 주도해 나갈 사람이 그인 만큼 그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안전도 생각지 않을 수 없지 않소. 앞서 온 네 명이 일주일 만에 죽었다는데."



보건부 관리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리고는 동의를 구하듯 나머지를 둘러보았다. 혜주는 자신의 생각은 뒤로 한 채 과장을 쳐다보았다.

과장이 팀장인 만큼 과장의 생각을 따를 참이었다.



"전에 왔던 부검팀은 보호복을 착용하고 부검을 했나요?"


과장은 화생방에게 물었다.

화생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는 착용을 했죠."


"보호복이 효과가 있었나?"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난 입지 않겠네. 빠른 부검을 통해서 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게 우선이니까.

거추장스러운 복장으로 부검을 할 수는 없네.

난 마스크와 위생복, 그리고 위생장갑만 준비해 주게."


과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혜주는 과장의 결단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혜주도 과장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저도 입지 않겠어요."


"난 아무래도 부검을 집도해야 할 사람이니 그런 거추장스러운 옷은 입지 않는 게 좋겠소."


부검팀장도 그렇게 거들고 나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건부 관리도 어쩔 수 없이 보호복을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보건부 관리의 얼굴에는 내심 불안해하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부검하실 시신은 저쪽 임시 막사 안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화생방은 뒤편으로 보이는 천막으로 된 막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화생방 복장을 한 군인 두 명이서 구급차에서 전선을 풀어 막사 쪽으로 끌고 갔다.

전등을 켤 전력을 차에서 끌어다 쓰려는 것 같았다.


화생방 한 명이 구급차의 문을 열고 위생복 네 개와 마스크 네 개, 그리고 위생장갑 네 켤레를 가지고 왔다.

혜주 일행은 서둘러 복장을 갖추었다.


"부검에 필요하신 모든 장구는 막사 안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화생방은 친절하게도 옷을 입고 있는 일행에게 알려주었다.

이 곳으로 이동하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잠깐. 사망한 지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죠?"

부검팀장이 화생방에게 물었다.




"네. 연락 드린 그 때 사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시신의 혈액이 아직 응고되지 않아

부검할 때 피가 많이 튀겠는 걸? 특히 전기톱을 쓰게 되면."


부검팀장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럼 보호복을 입고 부검을 하는 게 어떨까요?"



보건부 관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안을 했다. 부검팀장은 과장을 쳐다보았다.

의견을 묻는 눈치였다.


"전기톱을 쓸 경우에는 방독면을 쓰고 하도록 하죠."



과장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부검팀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보건부 관리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넷은 복장을 갖추고 막사로 향했다.


화생방은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아래에 늘어져 있는 코드를 꽂았다.

그러자 막사 안 천정 중앙부에 설치되어있는 수술용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전등 아래에는 흰 천에 덮여 있는 시신이 누워있었다. 천에 가려 아직 시신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건장한 군인일 것이었다.



혜주는 눈으로 어림해서 시신의 키를 재어보았다. 180센티미터가 넘어보였다.


화생방은 막사 한 쪽에 있던 부검 용구가 가득 놓여있는 테이블을 시신 가까이로 끌고 왔다.



과장은 화생방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제 나가봐도 돼요. 부검은 우리가 실시할 테니까."


"아닙니다. 부검 전 과정을 지켜보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화생방은 그렇게 말하고는 막사 한 쪽으로 물러섰다.


"부검은 1시간 안에 끝내셔야 합니다." 화생방은 한 쪽에 서서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과장이 의아스런 말투로 되물었다.


"1시간이라뇨?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시신은 사망 이후 두 시간 안에 무조건 소각해야 합니다. 대대장님 명령입니다.

시신이 사망한 지 30분이 지났기 때문에 부검은 한 시간 안에 끝내셔야 저희가 시신은 소각장까지 운반해서

총 두 시간 안에 소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대장에게 말하겠소. 시간은 넉넉히 하도록 해요."


"이미 대대장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과장은 불쾌한 표정으로 화생방을 쳐다보았다. 나머지 셋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소. 그 중령이라는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그냥 빨리 부검을 끝내도록 하죠."



부검팀장이 과장에게 달래 듯 말을 했다. 과장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부검에 들어갈 태세를 취했다.

시간이 제한된다면 1초라도 먼저 부검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검팀장은 시신 위에 덮여있는 흰 천을 걷었다. 그러자 나체의 남자 시신이 그대로 환한 불빛에 드러났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피부색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부검팀장은 메스를 들어 시신의 목 아래부터 서서히 절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에 힘을 주어 깊숙이 살을 갈랐다.

아직 응고되지 않은 피가 절개부위에서 스며져 나왔다.



혜주는 자꾸만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혜주 역시 수술을 위해 환자의 가슴 부위나 복부를 절개해 본 경험이 많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마취된 환자였다.



게다가 지금 부검팀장은 목 아래부터 해서 사타구니 바로 위까지 일자로 절개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일반 외과수술에서 이토록 광범위하게 절개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부검팀장의 손에 쥐어진 메스가 시신의 사타구니에까지 다다랐을 때에는,갑자기 시신이 살아서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죽은 지 30분밖에 되지 않은 시신이라도 어느 정도 근육의 경화가 일어났는지 부검팀장의 얼굴에는 땀까지 흘렀다.



그는 세로로 절개를 마치자 이번에는 가로로 절개를 시작했다.

부검을 마치고 시신을 원상복구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아예 십자로 상체 모두를 개복해 버리려는 듯 했다.

어쩌면 시간을 아끼는 데는 그것이 최선의 방도인 지도 몰랐다.


거의 20분이나 걸려서 절개를 마치고 피부를 사방으로 들어내어 고정시키자 내부 장기가 모두 드러났다.

복부에는 거의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폐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아 원인을 찾으려면 폐를 절개해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폐 절개는 내가 하겠소."


과장이 부검팀장에게 말했다. 부검팀장은 별 말없이 메스를 넘겨주었다.

그로서도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 터였다. 게다가 폐에 관해서라면 과장이 최고의 전문가였으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과장은 좌측부터 폐를 절개하기 시작했다. 폐는 피가 응고되어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폐에 출혈이 일어난 것이 직접적인 사인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조직을 떼어서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죠?"


과장은 혜주를 보며 물었다.


"네. 육안으로 봐서는 심부전으로 인한 폐울혈과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데요?"


혜주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때 뒤에 서서 부검을 지켜보고 있던 화생방이 불쑥 끼어들었다.

"현미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보시죠.

조직을 외부로 유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발병자의 시신의 전 부위는 소각하게 되어있습니다."



"무슨 말이요? 폐조직을 떼어서 보관하는 것도 안 된단 말이오?"


과장은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대대장님 명령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무슨 수로 사태의 원인을 밝혀낸단 말이오?

내가 대대장에게 이야기를 좀 해야겠소. 통신병을 좀 연결시켜 주시오."


"대대장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지난 번 부검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씀드려도 소용없을 겁니다.

원칙은 바꿀 수 없습니다."



화생방은 단호히 과장에게 말했다.



혜주와 과장은 어이가 없었다.


"왜 지난 번 부검팀이 원인을 밝히는 데 실패했는지 알 것 같군요."


혜주는 과장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과장은 혜주의 말에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럼 한 쪽에서 과장님과 혜주씨가 현미경으로 폐조직을 관찰하시죠.



그동안 제가 시신의 두개골을 절개하겠습니다."


부검팀장의 말이었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놓인 전기톱을 들었다.

"그렇게 합시다."


과장은 오른쪽과 왼쪽 폐의 조직 약간을 메스로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혜주와 한 쪽에 마련된 현미경으로 이동했다.


"전기톱에 전원을 좀 연결해줘요."


부검팀장이 화생방에게 말했다.

화생방은 말없이 전기톱에서 나온 전선을 가지고선 문 앞에 놓은 콘센트에 꽂았다.


지잉. 지잉.


부검팀장이 전기톱에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자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방독면 좀 가져다줘요."


부검팀장이 다시 화생방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자 화생방이 문 쪽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방독면 가져와!"


곧 화생방 복장을 한 다른 군인 한 명이 목까지 비닐커버가 달려있는 방독면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부검팀장은 방독면을 쓰고 시신 쪽으로 다가갔다.


"피가 튀니까 옆으로 비켜서요."



부검팀장의 목소리가 방독면에 달린 울림판을 통해 퍼져 나왔다.

할 일이 없어 시신 옆에 서 있던 보건부 관리가 슬그머니 화생방 옆으로 물러났다.

그는 혜주와 과장이 붙들고 있는 현미경 옆에도 갈 필요가 없고 시신 옆에 서 있을 수도 없어 멀뚱해졌다.



지이이이잉.


전기톱의 톱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부검팀장은 전기톱을 서서히 시신의 두개골 중앙부로 가져갔다.



현미경에 집중해 있던 혜주도 그 모습을 힐끗 아니 볼 수 없었다.



외과의로서 수술도 많이 해 봤지만, 두개골을 통째로 써는 부검 장면은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전기톱이 두개골을 파고 들어갔다.

과장의 옷까지 피가 몇 방울 튀었지만 과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건부 관리는 비위가 상하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화생방은 방독면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의 호기심으로 부검을 바라보고 있겠지만.


보건부 관리는 슬그머니 혜주 쪽으로 오더니 뭐라고 말을 했다.

전기톱 소리가 너무 요란해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손짓을 보아하니 밖에 잠깐 나갔다 들어오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어차피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혜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건부 관리가 문을 나설 때에도 화생방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두개골을 절단하고 있는 부검팀장을 쳐다보았다.

혜주 역시 그의 톱질 솜씨에 나름대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무도 과장이 폐조직의 일부를 위생장갑 안쪽으로 슬쩍 집어넣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출처 무늬만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