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팀장과 보건부 관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과장은 간이 침대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누워있었다. 아무래도 새벽에 죽은 모양이었다.
시신이 어느 정도 경직되어 있었다.
혜주는 자신이 과장의 몸을 부검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마치 과장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줄로 알았다.
과장이 죽은 지금, 혜주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막사의 문이 열리고, 화생방 복장을 한 세 명이 들어왔다.
"두 분은 언제 오시는 거죠?"
혜주는 그들에게 먼저 물었다. 그러자 화생방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여기 왔소."
혜주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세 명 중 두 명은 보건부 관리와 부검팀장이었다.
혜주는 순간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검을 주도하던 과장이 죽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그들로서도 뭔가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과장이 죽은 지금은 붉은손 둘 즉, 부검팀장이 전체 팀장이었다.
그가 보호복을 입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혜주씨도 보호복을 입는 게 어때요?"
부검팀장이 말했다.
"아뇨. 전 됐습니다. 두 분께서는 몸 움직이시기 불편하실 테니 집도는 제가 하지요."
혜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놓여있는 메스를 들었다.
부검팀장과 보건부 관리는 별 말 없이 혜주의 곁으로 와서 섰다.
혜주는 과장의 쇄골 가운데에 메스를 찔러 넣었다.
이미 사망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지난번 해부에서처럼 혈액이 스며 나오지는 않았다.
혜주는 손과 팔에 힘을 주어 천천히 메스를 아래쪽으로 그었다.
과장의 복부를 완전히 절개하는 동안 혜주는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자꾸만 눈에서 눈물이 흐르려 했기 때문이었다.
과장도 온 시신이 다 찢어진 채로 소각장으로 가게 되겠지?
과장의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만 할까?
혜주는 과장의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범하고 조용조용한 부인이었다.
과장이 지닌 명성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현명한 여자였다.
아마 과장의 부인도 과장의 이러한 비밀을 알고 있지는 않으리라.
혜주는 자신이 언제고 이 모든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장은 그녀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이 곳에서 이루어진 이 일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흘러 만일 그녀도 혜주도 늙어졌을 때,
그 때가 오면 혜주는 그녀에게 이 모든 사실을 말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으니까.
혜주는 자신이 과장의 몸을 갈가리 찢은 이 사실을 과장의 부인이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장의 두개골은 전번처럼 부검팀장이 절개했다.
전기톱은 전번과 다름없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그 동안 혜주는 과장의 폐에서 떼어낸 조직을 한쪽 구석에 마련된 현미경에서 관찰했다.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과장과 혜주가 함께 관찰하던 것을 이제는 과장의 것을 혜주가 관찰하고 있다는 것밖에.
혜주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자신의 눈앞이 자꾸만 흐려짐을 느꼈다.
조직에는 잔뜩 섬유화가 일어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폐울혈에 수반되는 일반적인 폐조직의 섬유화보다 훨씬 진척되어 있었다.
과장이 사망한 시각을 아무리 이르게 추산한다고 해도 전혀 들어맞지가 않았다.
혜주는 과장의 폐조직을 슬쩍 위생장갑의 손목에 넣었다. 아무래도 과장의 전자 현미경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날 밤이었다. 혜주는 아까부터 전자 현미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혜주의 옆에는 부검팀장이 서 있었다.
과장의 죽음 이후에 전의 숙소는 폐쇄되었다.
그리고 혜주 일행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숙소를 잡게 되었다. 과장의 전자 현미경은 자연스레 혜주의 차지가 되었다.
부검팀장도 보건부 관리도 ,그것을 가져가려 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서로 떨어진 곳으로 재조정됨에 따라 밤에 서로가 서로의 숙소에 가는 것이 용이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혜주는 의논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억지로 부검팀장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과장이 죽은 마당에 이제 팀장은 부검팀장이었고, 그렇다면 그와 상의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혜주 혼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한 이유도 있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폐에는 곰팡이 같은 것만 잔뜩 피어버렸고."
혜주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부검팀장은 팔짱을 끼고 서서 혜주와 혜주의 방을 쭉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직을 몰래 떼어와서 지금까지 관찰을 해 왔군요.
전 까맣게 몰랐군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 놈의 대대장의 명령 때문에 조직을 따로 보관할 수가 없으니까."
혜주는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는 부검팀장에게 현미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보세요."
"그래요. 한 번 봅시다."
부검팀장은 약간 머뭇거리며 현미경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죽은 과장의 유품이라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그는 현미경에 얼굴이 닿지 않게 약간 거리를 두고 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조직에 이물질이 묻어버린 모양인데요?"
"첨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까 부검실에서 조직을 막 떼어냈을 때도 상태가 비슷했어요. 도대체 왜 이런 건지 알 수가 없어요."
"네."
부검팀장은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원인이 뭘까요? 공기로 전염되는 걸까요? 아니면 신체접촉?"
혜주가 부검팀장의 의견을 물었다.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소. 아무 것도 종잡을 수가 없군요."
"아랫마을에서는 벌써 두 명의 희생자가 더 발생했대요.
이대로 나가다가는 조만간에 아랫마을 주민들도 모두 사망하고 말 거예요.
한 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돼요."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과장님이 돌아가셨으니 이젠 당신이 팀장이잖아요.
전 과장님만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사실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알고 있소.
나도 최선을 다 할거요. 혜주씨도 최선을 다 해줘요. 우리 함께 끝까지 해 봅시다."
혜주는 부검팀장의 말에 나름대로 위안을 느꼈다.
아침에 부검팀장과 부건부 관리가 부검실에 보호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만 해도 둘에게 배신감과 절망을 느꼈던 혜주였다.
사실 보건부 관리는 아니라도 부검팀장은 뭔가 강단이 있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기에
부검팀장에게 더욱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었다.
부검팀장이 돌아가고 나자 혜주는 잠자리에 들었다.
과장이 죽고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나름대로 부검팀장의 마지막 말을 상기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 어떻게든 이 역경을 이겨내야 해.'
혜주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자신감이 솟아오르는 듯 하기도 했다.
이 곳에 온지 처음으로 혜주는 그나마 푹 잘 수 있었다.
출처 무늬만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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