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충하초. 겨울에는 곤충이었다가 여름에는 식물이 된다.


그것은 살아있는 누에의 세포에 포자를 내려 번식을 하는 버섯을 일컫는 말이었다.



살아있는 애벌래의 몸의 양분을 빨아 자라나는 버섯.


혜주는 현미경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세포를 뚫어지게 보았다.


만일 이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포자 때문에 부패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폐세포 속에 자리잡고 있던 포자가 번식을 하는 것이라면?



혜주는 자신이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살아있는 곤충의 몸에서 번식하는 세포가 변형하여 인간의 페세포 속에서 번식할 수 있게 되었다면?



만일 이번 사태의 원인이 그런 것이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지금까지 추출한 모든 폐조직은 급속도로 섬유화를 이루어 갔고,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만일 혜주가 지금껏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진규가 보낸 그 드링크제의 약효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이미 치료약은 존재하는 셈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다!'



혜주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진규를 찾아가야 해.'



진규가 개발한 그 약물의 자세한 정보만 알 수 있다면 해결은 이미 보인 셈이었다.



남은 일은 상부에 보고를 해서 진규가 개발한 그 약품을 대량으로 보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혜주의 머릿속에는 반론이 떠올랐다.


'만일 내 추측이 틀린 것이라면?'


그렇게 된다면 문제였다. 혜주가 이 곳을 나가서 진규를 만날 수 없으므로,

틀림없이 본부 측에서는 진규를 억지로 이곳 붉은방으로 끌고 올 것이었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만일 혜주의 추측대로 진규의 신약이 해독제가 될 수 없다면

이번에는 진규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이었다.

혜주는 고민했다.

과연 진규를 이 위험 속으로 빠뜨려도 되는 것인지.



'어떻게 몰래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오래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일분 일초에 몇 명이 더 죽어나갈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혜주는 대대장과 담판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당장 대대장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앞에는 초병 하나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혜주는 숨이 차도록 뛰어와서는 초병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대장님을 만나야 해요. 급해요."


"무슨 일이신지 말씀을 하시면 제가 깨우겠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하세요."



혜주는 아직 숨을 채 고르기도 전이었다.

초병은 혜주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대대장을 깨우러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혜주는 전번처럼 막사 안으로 불쑥 들어가지 않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대대장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되었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시켜야만 하니까.



잠시 후 막사 안에 불이 켜졌다. 안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초병이 문으로 나왔다.



"들어오시랍니다."


혜주는 안으로 들어섰다.


대대장은 군복 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그래. 단서를 찾았다고?"


"네."


"말해보시오."


"확실친 않아요. 하지만 제 추측으로는 이번 발병의 원인은 버섯이예요."



"버섯?"



대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혜주를 쳐다보았다.



"네.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버섯 중에 동충하초라는 게 있어요."


"계속하시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겨울에는 곤충이었다가 여름에는 풀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버섯이 살아있는 누에에 포자를 내려서 반년만에 누에의 양분을 빨아먹고 성장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당신 말은……?"



"그 버섯 포자가 인간의 폐에 포자를 번식시키고 있다는 거죠."



"그게 가능한 말이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종이 발견된 적은 없어요. 하지만 변종이라면 가능하죠."


"그걸 증명할 수 있소?"


"아직은요. 하지만 방법이 있어요."


"뭐요?"





혜주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지금부터 대대장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가 관건이니까.


"제 친구 중에 이 동충하초를 연구하는 학자가 있어요.

그리고 ,이곳 붉은방에 오기 전에 그 친구가 보낸 동충하초로 만든 드링크제를 마시고 왔어요.

시중에는 없는 제품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는데, 저만 죽지 않은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드링크 때문이라는 말인가?"


"물론 확실친 않아요. 모두 제 추측이죠.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여기 있는 모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어요.

그 친구를 한 번만 찾아갈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지금 작전지역을 나가겠다는 말을 하는 거요?"



"다시 돌아올 게요. 치료약을 가지고서."


"그럴 순 없소. 상부의 지시가 있지 않는 한은."



"하지만 누구도 그걸 허락해 주지 않을 거예요. 중령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해요. 부탁 드릴게요.

모두를 살리는 길이에요."


"미안하지만 내 지휘권을 벗어나는 일이오."





대대장은 차갑게 거절했다.


"아뇨. 여기 이곳의 지휘관은 중령님이에요. 중령님께서 결정하실 수 있어요."


"군대에는 지휘계통이라는 것이 있소."


"하지만 월남전에서는 그렇지 않으셨다면서요. 이곳도 전쟁터예요.

오늘밤 안으로 치료약을 구해오지 않으면 아랫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을 거예요."



대대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생각해보세요. 중령님의 부하들도 함께 죽어가고 있잖아요.



게다가 이번 작전을 성공했을 때 정부에서는 엄청난 보상이 주어질 거예요.

아마도 중령님도 별을 달 수도 있을 거예요."



"난 보상 따위를 바라고 이런 일을 하는게 아니오!"



대대장이 소리쳤다. 순간 혜주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아니, 전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혜주는 대대장의 예상치 못한 질책에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말을 주워담으려 했다.


"됐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소."



대대장은 그렇게 혜주의 말을 자르고서는 다시 한 번 긴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혜주는 조용히 대대장의 곁에 서서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좋소."







마침내 대대장은 혜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깐 기다리시오."



대대장은 책상 한 구석에 마련된 전화 쪽으로 가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이쪽으로 좀 와."



대대장은 아주 짧게 명령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혜주는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대대장을 그러고도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금 부른 그 사람을 기다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혜주는 그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달려왔는지 숨이 찬 기색이 역력한 중사 한 명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한참 자고 있다가 연락을 받았을 텐데 채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혜주는 군인의 민첩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잘 들어요. 김혜주씨." 대대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중사가 혜주씨를 비밀 통로로 해서 작전지역 바깥으로 인도해 줄 거요. 그러면 근처에 주차장이 보일거요."


대대장을 자신의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이건 내 차 열쇠요. 버튼을 놀렀을 때 시동이 걸리는 차가 내 차요. 그걸 타고 그 친구를 찾아가요.

만일 혜주씨가 생각한 그것이 병의 원인이 맞다면 어떻게든 치료약을 구해 오시오.



그러나 혜주씨가 틀렸을 경우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내일 아침해가 뜨기 전에 이 곳에 도착하시오.

그러나 만일 동이 틀 때까지 이 곳에 당도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복귀하지 말아요. 간밤에 혜주씨가 죽은 걸로 처리할 테니까."









"중령님……."











혜주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혜주씨를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오.

작전 구역에서 누군가가 이탈한 것이 발각되면 내 처지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오."


중령은 주머니에서 작은 캡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혜주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군인들이 특수 임무를 지니고 위험지역에 파견될 때 소지하는 것이오.



캡슐을 입안에서 깨물어 터뜨리면 고통 없이 바로 죽을 수 있어요.

만일 혜주씨의 추측이 틀린 것이라면 어차피 혜주씨는 죽을 거요.



그러니 동이 틀 때까지 돌아오지 못할 것 같으면,

병이 전염되지 못하도록 어딘가 고립된 장소를 찾아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네."











혜주는 캡슐을 손이 꼭 쥐었다.


"설마 이곳을 이탈해서 외부에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지는 않겠죠?"



대대장은 확인하듯 혜주에게 물었다.


"물론이에요. 그럴 것 같으면 이 곳에 오지도, 아직 여기 이렇게 남아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런 혜주씨를 믿겠소."


혜주는 대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사, 이 아가씨를 작전 지역 밖으로 안내해 주게."


"네, 중령님."



중사는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는 대대장이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충직한 부하로 보였다.



작전지역 외부로 통하는 비밀통로까지 알고 있을 정도라면 엄청난 신임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오시죠."


중사는 혜주에게 말하고는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혜주는 다시 한 번 대대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중사를 따라 막사 밖으로 나갔다.


혜주는 중사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그곳은 이곳에 와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길이었다.


마침내 중사와 혜주는 어느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중사는 바지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군용 플래쉬를 꺼내 길을 비추었다.



혜주는 조심조심 중사의 뒤를 밟아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허리를 숙이고서야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동굴의 위아래 폭은 낮았다.

혜주는 발목까지 물이 차 오른 것을 느꼈다.

천장에서도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중사를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앞장서서 걸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저 끝에서 약간의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출구가 보인다 한들, 지금은 캄캄한 밤인데 불빛이 새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걸음을 재촉하여 더 자세히 다가가자 비밀이 풀렸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전등이 달려있었다. 이미 전선까지 연결된 곳이라면 이 곳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통로임이 틀림없었다.

혜주는 대대장이 이미 유사시에는 이 곳을 통해 탈출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서 이 작전에 투입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중사는 전등이 달려있는 천장부분을 힘껏 밀어 올렸다.

그러자 위로는 별이 총총 떠있는 밤하늘이 훤히 드러났다.



"잘 들어요. 이 곳을 나가서 산길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공영 주차장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부터 중령님께서 시키신 대로 차를 찾아서 타고 가요. 제가 데려다 줄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저 역시 작전 구역을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요."


"네 고마워요."




"또 한가지.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오길 빕니다.

만일 당신이 실패하면 중령님은 보안을 위해서 나까지 제거하려고 들 겁니다.



물론 나 역시 국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군인이지만, 반드시 당신이 성공하기를 빌겠어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돌아올게요."





중사는 자신의 양손을 모아서 받침대를 만들었다.


"자, 이걸 밟고 올라가요."



혜주는 중사의 손을 딛고 위로 올라갔다. 중사는 힘껏 혜주의 발을 들어올려 혜주를 바깥으로 내어보냈다.

혜주가 나온 곳은 조그마한 참호였다.



참호 아래에 그런 비밀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혜주가 뚜껑을 닫으려고 하기도 전에 발 아래의 뚜껑은 닫혀버렸다.

혜주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아래로 연결된 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내려가자 정말로 공영 주차장이 나왔다.



이미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진 곳인지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고 해 봐야 채 다섯 대도 보이지 않았다.



혜주는 주머니에서 대대장의 차 키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딩동. 부르릉.


멀리 있는 승용차 한 대에 시동이 걸렸다. 혜주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차에 올라탔다.





출처 무늬만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