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달렸을까. 혜주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경남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 해안도로를 혜주는 엄청난 속력으로 달렸다.



차의 성능도 좋았다. 속도계는 거의 시속 160 킬로미터를 넘어가고 있었다.



해안도로에는 가끔 인근 산에서 야생 동물들이 나와 차에 치이기도 하는 법이지만 혜주의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상 혜주의 지금 심정으로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면 그대로 치고 지나갈 각오도 되어있었다.


결국 혜주는 자정이 되기 전에 밀양 관내에 진입할 수 있었다.



혜주는 고향을 떠난 지 10년만에 다시 이 곳에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옛 고향을 찾는다는 그런 여유있는 형편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둠 속이었지만 주변 풍경을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혜주는 옛 기억을 더듬어 밀양 대학교 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정문에는 수위아저씨로 보이는 사람이 차단기 너머로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혜주는 정문의 차단기 바로 앞으로 차를 멈췄다.


수위아저씨는 이런 야밤에 누가 찾아왔나 궁금한 표정으로 차 쪽으로 걸어왔다.





"무슨 일이슈?"


"저기 죄송한데요. 석진규 박사님 댁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 양반? 왜? 만나러 오셨수?"


"네. 옛날 친구인데 지금 급하게 꼭 좀 만나야 하거든요."


"그래?"



수위아저씨는 혜주를 수상쩍은 듯이 쳐다보았다.


"그 사람이야 연구실에서 거의 사는 사람이니 아마 지금도 연구실에 있을 거요.

이름을 말해주면 내가 전화를 해서 들여보내도 되냐고 물어보리다."



"김혜주라고 전해주세요."



"좀 기다리슈."





수위아저씨는 차단기 옆에 마련된 부스 안으로 들어가더니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짧은 통화 후에 차단기가 놀라갔다.


"저기 보이는 건물이 연구실이우."



수위아저씨는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물로 손가락질 하며 혜주에게 소리쳤다.

혜주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차를 운전해 들어갔다.


건물 앞에는 진규가 나와서 서 있었다.

혜주는 진규 앞으로 차를 멈췄다. 혜주가 차에서 내리자 진규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혜주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진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말을 꺼냈다



. 헤주 역시 10년만에 만난 옛 친구와의 재회에 쑥스럽기도 하고 한없이 반갑기도 했지만

, 지금은 그런 감상에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진규야. 사실 말야. 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


"어쨌든 이렇게 만나니까 정말 반갑다. 연구실로 좀 들어올래? 뭐라도 좀 마시게."



진규는 혜주의 사정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말했다. 혜주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진규의 연구 자료를 보아야 할 필요도 있으니까.



진규의 연구실로 올라가면서 혜주는 고민했다. 진규에게 모든 걸 설명해야만 할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외부인에게 붉은방에서 이루어 진 일을 알리는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보안에 구멍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진규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그의 연구물을 공개해 달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동충하초에 대한 연구는 진규가 오랜 세월을 연구한 피땀의 결과일 것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넘겨달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혜주는 진규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버섯을 연구했다는 진규의 말.

혜주는 진규를 믿기로 했다. 진규라면 혜주의 입장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진규라면 붉은방에서 이루어 진 일에 대해서 알게 되더라도 비밀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연구실에 도착하자 혜주는 진규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규야. 실은 엄청난 일이 있어. 그리고 네 도움이 필요해."


"무슨 일인데 그래? 물론 이 시간에 이렇게 허겁지겁 찾아올 정도면 큰일이겠지."


"아마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 일거야. 지

금 강원도 일대에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있어. 그리고 난 지금 거기서 오는 길이야."



무늬만토끼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