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일 테니까.
진규는 혜주의 말을 다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 아까 말한 첫 희생자의 이름 말야. 내가 아는 사람이야."
혜주는 진규의 말에 깜짝 놀랐다.
"뭐라구?"
"그 사람. 이 곳에서 버섯재배를 하는 어떤 사람과 자주 왕래하면서 지내던 사람이야.
한 번 소개를 받은 적도 있어."
"정말?"
그러고 보니 첫 희생자의 집에서 경남행 차표가 수두룩하게 발견된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곳도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 곳에는 피해자가 없었구나."
"아니, 어쩌면 피해자가 있었는지도 몰라."
"무슨 말이야?"
"그 사람과 자주 만난 그 버섯재배를 하던 사람의 일가족이 사망했어. 거의 한달 전쯤의 일이야."
"그럴 수가. 그렇다면 왜 이곳에는 병이 퍼지지 않은 거지?"
"일가족이 버섯 재배를 하느라 워낙 외진 곳에 살았어.
가족이 죽자 산동네에서 의사 노릇을 하는 영감이 사망진단을 내렸지.
혼자 사는 영감인데 진짜 의사 면허증이 있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돌팔이야.
때로는 수의사 노릇도 하고.
그 영감과 인부 몇몇이 일가족을 산에 매장했는데,
매장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에 낭떠러지에서 차가 굴러 떨어져 모두 사망했어.
다들 그저 단순 사고라고 생각했지."
"그렇다면 이미 이 곳에서 먼저 병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우연히도 전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
혜주는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고향이 자칫하면 죽음의 도시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혜주야. 가 볼 때가 있어."
"어딜?"
"일가족이 묻혀 있는 곳을 알아.
그 곳에 가서 무덤을 파헤쳐 보면 진짜 병의 원인이 버섯 때문인지 어떤지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 내일 날이 새기 전까지 돌아가야 해."
"산을 질러가는 지름길을 알아. 내 짚 차로 가면 얼마 안 걸릴 거야."
혜주는 결국 진규를 따라 가기로 했다.
.희생자의 시신에서 완성된 균사를 채취할 수 있다면 밤새 치료약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차를 달려 산길로 접어들자 주위는 점차 음산해졌다.
곳곳에 무덤이 보이는 산은 옛적부터 귀신이 나온다던 그 산이었다.
육이오 동란 때 죽은 사람들을 무작위로 끌어다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은
그 후로도 이름 없이 거리에서 죽어간 수많은 걸인들의 묘지가 되었다.
한참을 길도 안 보이는 것 같은 산길을 헤치고 올라간 진규의 짚 차는 약간 편편한 산중턱에서 멈춰 섰다.
"여기야."
진규와 혜주는 차에서 내렸다. 어두운 수풀 너머로 약간 두툼한 무덤이 보였다.
볼록한 것이 하나 뿐인 것으로 봐서 일가족을 함께 매장해버린 모양이었다.
진규는 뒤쪽 트렁크를 열어 삽을 한 자루 꺼냈다.
"삽, 한 자루뿐이니? 나도 도울게."
진규는 혜주의 말에 순순히 삽을 한 자루 더 꺼냈다.
시간이 없었다.
여자인 혜주에게 삽질은 버거운 일 일 테지만 둘이 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는 빠를 것이었다.
둘은 각기 삽을 들고 무덤가로 가서 섰다.
혜주는 편히 잠든 자들을 다시 깨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화가 나서 혜주에게 저주를 퍼붓는 대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당장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당신들의 유해가 필요하니까.
진규가 먼저 삽질을 시작했다. 농군의 아들인 만큼 삽질이 능숙했다.
혜주도 어설픈 폼새로 진규를 도와 삽질을 계속했다.
얼마나 삽질을 했을까?
둘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허리 펼 새도 없이 삽질을 계속했고, 등줄기에는 더운 땀이 났다.
차고 어두운 밤 공기에 진규의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정도였다.
딸깍.
혜주의 삽에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드디어 관이 있는 부분까지 파내려 온 모양이었다.
혜주는 삽질을 멈추었고,
진규가 관의 위쪽에 있는 흙을 삽으로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관은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 인간들이 무덤 밟기가 귀찮으니까 관 세 개를 하나에 묻어버렸군."
진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는 삽 끝을 제일 작은 관의 틈새에 넣고 힘껏 재껴 올렸다.
뜨득!
관이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혜주와 진규는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관 쪽을 쳐다보았다.
진규가 조심스럽게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서 관뚜껑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모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체격의 아이의 시신에 온통 버섯이 자라나 있었다.
팽이버섯처럼 가느다란 형태의 버섯이 입으로 코로 그리고 피부 전체로 온통 퍼져 있었다.
거의 사람의 형상을 한 버섯 군집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혜주와 진규는 그 끔찍한 모습과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진규는 이윽고 혜주에게 말했다.
"혜주야. 내 차 트렁크에 커다란 비닐봉투가 있을 거야. 좀 가져다 줘."
"비닐봉투? 시신을 가져가게?"
"응. 통째로 가져가자. 이 변종의 비밀을 밝혀야지."
"어, 그래."
혜주는 시신의 충격적인 모습에 거의 정신을 잃어있었다.
시신을 통째로 운반하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 어떤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냥 진규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진규와 혜주는 아이의 시신을 그대로 들어서 비닐 봉투 안에 담았다.
봉투는 무엇을 담는 용도인지 사람의 몸이 들어가고도 훨씬 남았다.
혜주와 진규는 끙끙대며 시신을 차의 트렁크에 실었다.
"이제 다시 연구실로 가자."
"응."
진규의 말에 혜주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혜주는 그러면서 진규의 침착함에 찬탄을 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일을 눈앞에 두고도 저토록 냉철하게 일을 처리해 나아갈 수 있다니.
혜주는 진규가 자신처럼 의사가 되었다면 아마 과장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규는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국도로 내려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가는 차는 없었다. 진규는 급한 마음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한참을 고속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앞쪽으로 경찰 초소의 불빛이 보였다.
이 곳에 올 때에도 지나쳤던 검문소였다. 진규는 차의 속력을 서서히 줄였다.
검문을 하던 경관이 갑자기 불봉을 흔들어 진규의 차에 정지 신호를 보내왔다.
혜주는 돌연 불안함을 느꼈다. 차의 트렁크에는 시신이 실려있다. 만일 이것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나?
혜주는 경관이 진규의 차를 그냥 통과시켜주기만을 기도했다.
그러나 경관은 결국 차를 세웠다.
진규가 운전석의 창문을 내리자 경관이 안쪽으로 후레쉬를 비추며 물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이 근방에서 밀렵을 한다는 제보가 있어서 검문 중입니다."
"저희는 밀렵 같은 거 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네. 그럼 두 분 어딜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아, 저 그게."
진규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차에 흙이 잔뜩 묻었군요.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 같은데, 이 늦은 밤에 산에는 뭐하러 가셨습니까?"
"그게 말하기가 좀 곤란한데."
진규는 계속 머뭇거렸다. 그러자 경관의 얼굴에는 더욱 의심의 빛이 흘렀다.
"실례지만 트렁크를 좀 열어주시겠습니까?"
결국 경관은 진규에게 트렁크를 열 것을 지시했다. 진규의 얼굴에는 진땀이 흘렀다.
혜주 역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뭐라고 설명을 하여야 할까? 만일 이 자리에서 체포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 때였다. 진규가 경관에게 신분증을 내밀었다.
"저기 제가 이 근처 밀양 대학교에 교수로 있는 사람입니다. 버섯을 연구하죠. 지금 산에서 버섯을 좀 채취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요?"
경관은 진규의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그래도 미심쩍은지 다시 진규를 향해 말을 했다.
"어쨌든 트렁크 안을 좀 봐야겠습니다."
진규는 결국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는 비닐봉투를 조금 열어서 버섯 부분만을 조금 보였다.
그러자 시체 썩는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이게 무슨 냄새요!"
경관이 급히 얼굴을 돌리며 진규에게 소리쳤다.
"이게 상한 버섯이라서요. 저 같은 학자에게는 상한 버섯도 연구 대상이거든요."
"알겠소. 어서 트렁크 닫으시오."
경관이 코를 막으며 진규에게 말했다. 진규는 얼른 트렁크를 닫고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경관이 진규에게 그렇게 인사를 했다.
진규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출발하자 진규와 혜주는 동시에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출처 무늬만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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