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창문 너머 도로로 붉은 빛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경찰이다!!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던 경찰차를 보고 [중년 여자]가 도망친 거라고.

나는 당분간 제자리에 주저 앉아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었다.

너무 갑작스러워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진의 전화였다.

진 [괜찮아?]

나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지금은 어딘가로 갔어.]

진 [부모님이 돌아오신거야?]

나 [아니 우연히 경찰차가 지나간 덕분에 도망친거라 생각해.]

진 [그래? 다행이다. 안 그래도 너희집 근처에 의심스런 사람이 돌아다닌 다고 신고했어.
하지만... 슬슬 위험해. 그 여자한테 집도 들켰고.
....부모님한테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아.]

나 [.....]

진 [나도 오늘 부모님한테 말할테니까. 너도 말해. 진짜 위험하니까.]

나 [....응.]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왔다.

나는 집안의 불도 켜지 않은 채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어머니 얼굴을 본 순간 안도감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몰라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동안 계속 울다가, 그 날밤 있었던 일과 오늘 있었던 일은 말해줬다.

설명하던 중 아버지도 귀가했다.

아버지에겐 어머니가 설명해줬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여자가 서있던 창문 근처를 둘러보았다.

창문 유리에는 예리한 뭔가로 긁힌 자국이 잔뜩 나있었다.

예리한 뭔가라는 말에 나는 퍼뜩 대못을 떠올렸다.

부모님은 나를 꾸짖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고, 아버지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10분 정도 지나 경찰이 왔다.

경찰에겐 아버지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와 함께 거실에 있었는데, 잠시 뒤 경찰이 내게 그날 있었던 일은 물었다.

해피와 터치에 대한 것, 나무에 못박힌 사진, 비밀기지에 새겨진 쥰을 저주하는 글자,

그리고 방과 후에 만난 것 까지.

[중년 여자[에 관계된 모든 이야기를 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도...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다른 경찰관이 창문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내가 이야기한 것중 경찰이 가장 자세하게 물었던 건 여자애 사진에 대한 것이었다.

그 여자애의 용모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뒷산의 지도를 내가 그려주고 경찰이 조사해보기로 했다.

당분간 우리 집 근처 순찰을 강화하겠단 약속을 한 뒤 경찰은 돌아갔다.

결국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뒤 진과 쥰네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끼리 뭔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만 [중년 여자]에 대한 것 보단

학교에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그 날 밤, 나는 몇년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이랑 같이 잤다.

부끄러움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중년 여자]가 그 만큼 무서웠으니까.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8시가 넘었다.

지각한다고 당황해 일어났지만, 어머니가 오늘은 학교에 안가도 된다고 말했다.

학교에는 이미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벌써 출근했지만, 어머니는 하루 쉰다고 했다.

아마 쥰이나 진도 학교를 쉴 거라 생각했지만, 굳이 전화는 하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 틀어 박혀서 [중년 여자]가 한시라도 빨리 체포되기 기다렸다.

제발 이 공포에서 빠져나갈 수 있길 빌었다.

어머니는 어째선지 [중년 여자]에 대해서 하나도 묻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점심 식사를 하고 또 다시 내방에 박혀 있던 중,

하고 집 벽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진이라고 생각했다.

진은 나를 불러낼 때 현관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창문에 돌을 던지곤 했으니까.

나는 창밖을 내다봤다.

집앞 골목길에 있는 전신주 근처에 진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 숨어 있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 중

내 방 아래 마당에서 꺄악! 하는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머니는 아래쪽의 뭐가를 보고 놀란 듯 했다.

나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나를 올려다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담장쪽을 가리켰다.

나는 어머니가 가리킨 방향을 봤다.

거기에는 뭔가 끈적 끈적한 보라색 액체가 흩어져 있었다.

그게 방금 전 쿵 하는 소리를 낸 흔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