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 정남규
정남규는 13명을 사망케 했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정남규가 잡힌 후 조사내용에서 했던 말들.
-분하다. 1000명을 죽여야하는데 채우지 못하고 잡힌게 억울하다.
-기분이 나쁘다. 내가 죽인것을 유영철이 자기가 죽인 것처럼 떠들
어댔다.
유영철, 내가 너보다 한수위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어떤 생각이 듭니까?
-머리가 맑아진다. 기분이 좋다.
◆왜 살인을 저지른거죠?
-피냄새가 맡고 싶었다. 향기가 난다. 피냄새는 향기롭다.
◆살인을 하기 위해 정남규가 했던 행동들.
-하루에 10km씩 마라톤을 하며 체력을 단련했다.
-모자와 신발이 수십개였고 사건현장에 족족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 많은 신발의 밑창을 전부 떼버렸다.
-과학수사와 관련된 잡지와 책을 보며 엄청난 공부를 하였고,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전부 스크랩, 형사 및 검사 등과 같은
검찰 관련이들의 프로파일을 조사 하는 등 살인을 하기위해 별 그
지깽깽이 같은 짓을 다함.
-자신의 건강관리를 최우선적으로 함.
(예를 들어)모짜르트의 교향곡 13번을 들으며 안정을 취하고,
호박에는 다른 식품에 들어있지 않은 마그네슘,칼슘이 있어 호박
을 통해 영양을 섭취한다.
-살인을 하기위한 순위를 정해둠.
1순위 젊은 여성
2순위 여자아이
3순위 남자아이
4순위 30~50대 여성
-유영철이 CCTV때문에 잡힌 것을 보고 각 동네를 돌아다니며
CCTV가 없는 곳을 체크,
그 골목길로만 다니며 살인을 저지름.
◆파렴치한 행동
다른 범죄자들은 잡힌 후 사건현장을 재연하는 수사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찾아와 울부짖으면
죄송하다고 하거나 아무말 못하는데 정남규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발길질을 하며
마스크를 쓴 상태로 욕설을 퍼붇기도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비
정상적인 행동들을 함.
취재진이 몰려와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시도하려고 할때
취재진 카메라를 쳐다보며 웃음을 지음.
2. 치악산 18토막 살인사건-옛날에 공이갤에서 본거긴하지만..
치악산 18토막 연쇄살인사건
1980년 시국이 어수선할 때 우리나라의 명산 중의 하나인 치악산
에 이상한 사건이 생겼다.
40대 한 남성이 등산을 하던 것으로 추정된 모습으로 토막 살해
당한 것이다.
이당시 토막살인이라는 것이 거의 드문 일이고, 너무 시체가 잔혹
해
언론에 공개되지 못한 채 비밀리에 수사가 시작됐다.
국과수에 시체가 옮겨지고 살해 도구를 찾는데 혈안이 됐지만,
결국 적당한 도구를 예상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토막난 면이 너
무나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SF영화에서 나오는 레이저 빔 같은 것이 아주 부드럽게 절단된 것
처럼 토막된 면의 정교함과
부드러움은 그당시 국과수에서는 예측 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 첫 시체
가 발견된 이후
7일에 한 번 꼴로 치악산 근처에 똑같이 18도막 난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결국 1달 동안 10구의 시체가 발견됐고, 이 시체들 모두 한치의 오
차도 없이
18도막을 부위별로 정확하게 나눈 것이다. 노련한 국과수 위원들
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렇게 정확하게 토막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누가 이런 미♡ 짓을 했느냐보다 무엇으로 절단했느냐가 더
화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단면을 보일 도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
았던 것이다.
3. 카니발 사가와 잇세이
1949년 고베에서 태어났다. 미숙아로 태어난 그는 의사로부터 오
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일본 내에서 입지전적인 사업가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 사가와 아
키라는 불쌍한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의사의 말과는 다르게 그는 성인이 될 때
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의 발육 성장은 그다지 좋지 않아 다 자란 그의 키는
150cm도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신체에 상당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며 상대적으
로 체구가 큰 여자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서양 여자들에게 특이한 판타지를 품게 됐는?.
바로 자신의 식탁에 여자들을 요리해 올리는 것. 프랑스 파리로 유
학을 떠났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이상형의 여자를 발견한다.
잇세이의 클래스메이트였던 네덜란드 여성 르네 하테벨트(Renee
Hartevelt).
이들은 서로 무척 가까웠는데 연인 사이였다기보다는 학문을 함께
배우며 토론하던 동성적 친구였다.
잇세이에 의해 살해당한 르네 하테벨트.
굉장한 미인이었던 그녀는 잇세이에 의해
눈 뜨고 보기 힘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의 사체로 전락한다.
어느날 잇세이는 자신의 오랜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르네를 자
신의 집으로 초대해 권총으로 살해한다.
그리?. 그녀의 신체 부위를 잘라내었으며 그녀가 녹음해 준 시를
들으며 그녀를 뜯어 먹었다.
또한 요리를 위해 찢겨진 그녀를 시간(屍姦)하기도 했다. 그는 르
네의 시체를 다 먹지 못하고
사체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공원에 버리려 했다. 이 와중에 경찰에
발?. 가택 수색 끝에 체포된다.
그의 집에는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인육과 프라이 팬에 요리된
신체 부위가 널려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잇세이.
그는 자신의 범죄를 단 한 순간도 뉘우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정신병 판정을 받은 그는 병원에 수감되어 있다가 여
러가지 이유로
(재계에 영향력이 있던 아버지의 노력 등)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고
일본 정신병원에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그는 국지주의 범죄 규정에 따라 일본에서마저 아무런 처벌을 받
지 않는다.)
그렇게 풀려난 그는 일본내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어 자신의 경
험을 담은 책을 출판해 큰 돈을 번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점차 잊혀져 갔고 아버지의 사망 후 재산을 상
속받은 어머니는 살인마 아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직 살아 있으?. 현재 일
본의 일간지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때 일본 매스컴의 주목을 받던 인기인이었다.
당당한 자세와 지적인 언행이 그의 인기 비결이었다.
4. 우리나라 최초의 변태 연쇄살인범
남자아이를 노린 변태 성욕 살인범
우리나라 최초의 연쇄살인이 발생한 것은 1929년인데요.
일제강압기였던 그해 여름 한 달 간격으로 남자 어린이 2명이 성
폭행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죠.
사건은 6월2일 경기도 고양군 산 속에서 성폭행당한 후 목이 졸려
숨진
11살 소년의 사체가 발견되며 시작됐습니다.
이후 7월 영등포에서 9살 소년이 역시 동네 뒷산에서 성폭행당한
후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1920년대 중반과 1930년대 초반 유독
욕자’와
‘성격이상자’의 엽기 범죄가 잦았다고 해요.
1923년에는 양평 한 절의 승려 취화상이 만취 상태의 동네 남자를
살해한 후
배를 가르고 간을 꺼내 먹다가 이웃 사람 눈에 띄어 체포된 사건이
있었죠.
1924년에는 2살짜리 아이의 목을 자르고 머리를 깨 골을 꺼낸 후
사지와 생식기를 잘라 살해한 사건,
1927년에는 25세 남자가 산에서 나무를 하던 12살짜리 남자 어린
이를 살해한 후
생간을 먹다가 적발돼 체포되는 등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ㅠㅠㅠ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1920년대 후반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심리
가 고조되며
반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할 때 전염병이 돌 듯 사회규범이 붕괴되면
이런 변태적인 살인범이 나타난다는 거죠.
위에 말씀 드린 최초의 연쇄 살인범이자 변태성욕자 였던 범인은
이관규 라는 자였는데요.
경찰 수사 결과 1931년 범인이 체포되었습니다.. ‘
'소아기호증적 성범죄자’의 대표 케이스로 이관규(39)는
결혼해 아이를 다섯 명이나 둔 가장이었습니다.
그는 30대 후반부터 남자 어린이에 대한 동성애적 소아기호증이
나타나
연쇄살인 전에도 남아 성폭행을 수십 번이나 저질렀다고 털어놓았
죠.
어린아이를 탐욕하고.. 가녀린 목숨이 다할때 까지 농락하여 성폭
행을 하는 악랄함..
죽는 순간까지도 최악의 몸부림을 치며 신음하는 어린아이를 보고
쾌감을 느꼈다는 이관규,,
그야 말로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 그자체가 아닐까요..
아마도 악마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세상에 나왔다면.. 그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관규 사건 정리 -----------
한 달 간격으로 남자 어린이 2명이 같은 수법으로 성폭행 후 살해
당합니다.
6월 2일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의 한 산 속. 열한 살의 목동이 성폭
행을 당하고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되죠.
한 달 후인 7월 12일 영등포의 한 주택가.
아홉 살의 남자 어린이가 유괴되어 동네 뒷산에서 성폭행 당한 후
목이 졸려 숨진 시체로 발견됩니다.
범행 수법과 피해 대상이 독특하여 동일범의 소행임을 확신.
경찰은 남자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변태성욕 사례를 전국적으로 집
중 조사하죠.
사건 발생 후 1년 반이 지난 1931년 2월.
충북 진천에서 남자어린이 성추행으로 여러 번 전과가 있는 이관
규가 검거됩니다.
수사를 거쳐 이관규는 '소아기호증적 성범죄자' 이며 '폐쇄형 소아
기호증' 으로 판명이 됩니다.
그는 결혼하여 다섯명의 아이가 있었지만,
여자를 혐오, 기피하여 가까이 하지 않다가, 30대 후반에 이르러
남자어린이에 대한 동성애적 소아기호증이 드러나기 시작해
2건의 연쇄살인을 포함, 남아 성폭행을 수십 번 저질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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