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은 한번에 껴지지 않았고, 손가락을 서너번 끄떡거린 다음에야 완전히 밀착시킬수 있었다.
반대쪽도 마저 끼운 다음 살며시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갖다댄다.
은은한 온기가 손바닥부터 해서 온 몸으로 확산된다.
좀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소름이 돋아왔고, 몸 전체가 제법 크게 들썩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김간호사가 준비가 끝났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선 최간호사가 튜브의 압력을 조정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구석에....신발년이 있다.
심장소리가 우레처럼 커진다. 허벅지가 나른해 지면서 주저앉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재빨리 의자를 당겨와 엉덩이를 갖다댔다. 눈앞에 시커멓고 음습한 구멍이 보인다. 구멍은 확장기에 의해서
한껏 벌어진 상태였는데 미약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을 내밀자 김간호사가 집게와 가위를 쥐어준다.
그것을 양손에 나눠지고는 구멍속으로 집어넣었다. 조심스레 손을 더듬어 목표물을 찾기 시작한다.
'물컹'
찾았다. 목표를 이뤘지만 터럭만큼의 성취감도 없다. 집게를 갖다대자 그것이 요동을 친다.
소용없는 짓이다. 독안에 든 쥐다. 집게로 그것의 한 부분을 집었다.
축적된 경험으로 그것이 팔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단언하건대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위를 벌리자 그것이 더욱 더 크게 요동친다.
필사적으로 벽을 긁고 두다리를 파닥 거린다. 집게가 흔들린다. 빠지기 전에 얼른 가위로 썩둑 잘랐다.
가위는 한번의 교차됨으로 깔끔하게 맞물렸다. 팔한쪽이 떨어져 나간 그것은 구멍 전체가 흔들거릴 정도로 발광을 해댄다.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임전무퇴.. 무조건 밀어 붙여야 한다. 숨도 쉬지 않고 가위질을 해댄다.
독일산 의료용 숫돌에 잘 벼린 가위날은 피육을 뚫고 채 영글지 못한 뼈마저 손쉽게 가른다.
조각나고 분해된 그것이 움직을 멈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움직임을 멈춘 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다만 잠시후를 위해 뒷작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집게를 휘휘 젓자 조각들이 양수와 함께 뱅그르 돈다.
천천히 손을 빼낸다. 비릿한 짠내가 확 끼친다. 손보다도 한발 앞선 내음은 위생마스크를 뚫고 기세를 몰아
코의 점막마저 뚫어 버렸다. 뒤늦게 빠져나온 손...아니 시뻘건 덩어리. 덕지덕지 붙어있는 조직과 장기편들,
그리고 그것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점도 높은 블러드. 나의 양손과 맛깔스레 버무러진 한덩이 믹스쳐.
물끄러미 그것을 보고 있자, 최간호사가 세면대의 물을 튼다. 세면대로 가기 위해 일어서자
김간호사가 준비한 진공흡입기를 구멍에 쑤셔박는다.
손을 씻자 점차 심장박동이 정상을 되찾았다. 흔들리던 허벅지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저 깊숙한 곳에서 용기가 오아시스처럼 솟았다.
"뽀드득 뽀득"
손씻기를 마친 나는 거만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뒤로 제끼고 눈을 내리 깔았다.
'신발년'
한쪽 구석에 그것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런 짚신에 선명한 색동저고리를 입은 그것은 잠자코 서 있을뿐이었다.
숯많은 머리카락이 얼굴전체를 뒤덮었고, 끝은 배꼽까지 내려와 있었다.
'신발년이 뒤질라고'
용기백배해진 나는 그년을 한번 노려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수술대위의 여자가 모아둔 한숨을 토해낸다.
시계를 보니 마취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농구공만하던 배는 납짝해졌고 늘어진 뱃가죽이 잔주름으로 단층을 이루고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선생님"
수술실을 빠져나와 중앙 로비를 가로 질렀다.
"선생님, 우찌 됐심꺼?"
초조한 기색의 30대 남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잘 끝났습니다, 환자분 회복실로 옮겨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
요"
"아..참말로 고맙심더..고맙심더."
남성은 연거푸 고개를 숙였고, 양손을 덥썩 움켜쥐었다. 남성이 고개를 들자 일그러진 얼굴이 나타난다.
팔자주름이 길게 늘어짐과 동시에 더운 눈물이 흘렀다.
"잘해주세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안 그럼 몸 축납니다"
남성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뒤 집무실로 향했다. 슬쩍 돌아보자 그년도 뒤뚱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겁에 질려서 떨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신의 털이 모조리 설만큼 무섭던 그 걸음걸이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실제로 약간 비웃은 나는 집무실 문을 힘차게 잡아 당겼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