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버지와 단둘이 저녁을 먹던 날이 있었다. 모임에 갔는지 시장에 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엄마는 집에 없었다.
우리 부자만의 비밀. 감히 짐작조차 못하는 비밀을 공유하는 우리 둘.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것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냉장고 한켠에 서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중이었지만, 둘다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는 척 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오줌을 지리던날 아버지는 내 입장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고, 나역시 아버지에게는 유일한 지기요 동반자가 되었다.
"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순사셨다"
잘 익은 갓김치 한조각을 주욱 찢었을때,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식사를 끝내고서도 세시간가량 더 입을 여셨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할아버지와 우리 조상들의 얘기였다.
그 당시는 다들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늙은 노인과 어린아이들 부터 자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 자빠지면 누렇게 뜬 얼굴이 시커먼 똥색으로 변해서 죽어버릴때까지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허기..무서운 허기였다. 일본놈들은 구석에 떨어진 쌀 한톨까지 가져갔고,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조리 싣고 갔다.
갓난 아기였던 아버지는 하루종일 할머니의 젖만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리 빨아도 젖은 나오지 않았지만
생존본능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약초꾼이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불현듯 집을 나가셨다.
며칠 후 다시 돌아왔을 땐 보리쌀과 고구마를 한수레 싣고 오셨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이었다.
바싹 말라가던 산간마을이 기적적으로 숨통을 텄다. 이십호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할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그것을 얻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은 짐작 했겠지만 입밖으로 꺼내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주기적으로 갖고오는 식량수레에 마침내 마을이 자생력을 회복했다.
다시 논밭에 곡식을 심었고, 돼지 두마리로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일본 순사복을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착용했다. 할머니가 정성들여 닦아 놓은 군화를 신고는 읍내로 나가셨다.
할아버지의 앞잡이 노릇덕에 근처에 활동하던 독립꾼들의 씨가 말랐다. 그들에겐 할아버지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일본입장에서는 기특한 충견이었다. 할아버지의 악독한 술수와 고문에 줄줄이 시체가 되어 나갔다.
할아버지가 나서면 독립투사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버티지 못했다.
완고하던 그들은 채 사흘도 가지않아 살 맞대고 살던 마누라의 사타구니사이 점 갯수까지도 모조리 토해내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원폭을 맞았고, 두말없이 항복을 선언했다.
그들이 물러가던 날 할아버지는 순사복을 벗고 다시 망태기를 집어들었다. 친일파에 대한 숙청작업이 행해졌지만
다행히 몇 년 간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걸음마를 떼고 말까지 배우자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우리집에 몇명이 살지?"
"네명요"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고, 할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셨다.
"우리는 세식구뿐이다. 저사람은 우리 식구가 아니야"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그것을 무섭게 노려 보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여자가 궁금했지만
딱히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저 아이들과 산으로, 들로 몰려다니며 장난을 치는데 몰두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찾아왔다. 붉은색 두건을 이마에 두른 청년 두명이 들이닥친건 이슬도 내리지 않은 꼭두새벽이었다.
"더러운 앞잡이, 장두식이는 당장 튀어나오라"
"우당탕"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질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눈을 떴을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당장 나오라, 개노릇을 했으면 된장이 발려야지"
"우장창"
또다시 장독대 깨지는 소리가 터졌다.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장두식이 여기있다"
할아버지는 순순히 마당으로 내려가 그들 앞에 섰다. 박달나무 몽둥이를 치켜든 그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퍽.퍽"
할아버지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최대한 몸을 구부렸다.
"아이고, 그만해요 나으리들. 이러다 사람 잡겠어요"
어머니가 울면서 한명의 바짓가랭이를 쥐었다.
"이새끼가 몇명을 죽인지 알아?"
할머니를 거칠게 뿌리친 청년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소리를 질렀다.
"자그만치 34명이야, 34명.. 그중에 우리 첫째형님도 있단 말야, 알아들어?"
청년은 귀까지 새빨개진 채 울부짖었다.
"이새끼 죽이고 다음은 아줌마랑 애새끼 차례니까 억울해 할 것 없어"
둘은 멈췄던 몽둥이질을 다시 시작했다. 몽둥이끝이 붉게 물들자 그들은 잠시 숨을 몰아 쉬었다.
할아버지는 입고있던 옷이 피칠갑으로 변한채 미동도 않고 누워 있었다.
한명이 구석으로 가서 바짓춤을 풀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가 툭 던진 박달나무 몽둥이가 무겁게 울렸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가 일어섰다. 몽둥이를 줏어들고 멍하니 있던 한놈의 대갈통을 순식간에 내려 찍었다.
"딱"
기괴한 음향과 함께 대갈통이 박살이 나버렸다. 오줌누던 청년이 황급히 돌아봤을땐 이미 늦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쓰러진 청년의 대갈통을 연거푸 내려 찍었다.
"쩍..쩍.."
두개골이 함몰되고 허연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제법 크게 떨어져 나간 부분은 찾아가서 끝까지 부수어 놓았다.
피칠갑한 할아버지의 악귀같은 모습에 할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남은 한 청년도 할말을 잊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
곤죽을 넘어 반죽을 만든 후에야 몽둥이질은 멈췄다.
"자네도 할텐가"
할아버지의 입이 씨익 벌어졌다. 이빨사이의 틈으로 뻘건 국물이 질질 흘렀다.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쏜살같이 달아났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부엌문 바른편에 서있던 그것을 향했다. 그것은 조용히 그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신발년이 뒤질라고"
다음날까지 멀쩡하던 할아버지가 이틀째 되던날부터 앓아누웠다. 온몸이 아프다며 밤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며칠사이에 이가 네개나 빠졌다. 멀쩡하던 생니 네개가 빠지자 할아버지는 급격히 늙어갔다.
죽기전날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불러다 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전래동화인 줄 알고 들었지만,
듣고 나자 은밀한 집안이야기 인걸 알았다.
조상대대로 망나니 집안...쌍놈 중에서도 가장 쌍놈만 한다는 칼춤추는 망나니..그게 조상들의 직업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임진왜란도 일어나기 전인 먼 옛날부터 라고 했다. 죽은 자들의 원혼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소름끼치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누운 상태로 할아버지는 방문 앞에 서있던 그것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따라서 그것을 보았는데, 난생 처음으로 그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윗대 조상중 한분이 조선에서 가장 영험한 무당을 불러다 놓고 굿판을 벌였다.
무당의 요구사항이 너무도 많아 그것을 준비하는데만 삼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벌어진 굿판...
엄청난 규모의 굿판에 조선천지에서 구경꾼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한달간의 굿판이 끝나자 무당은 잠들듯 죽어있었다.
"실패한거네요"
찢어놓은 갓김치를 도로 내려놓은 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마 그랬을테지"
아버지가 애써 냉장고쪽을 외면한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신 건가요?"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라는 듯이 의자를 당겨앉았다.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들은 다음날 사단이 일어났다.
바로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아버지가 밤중에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뭔가가 관통한 듯이 놀라서 깨어난 것이다. 옆을 보니 할머니가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다행이다.
다시 그 옆을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있었고, 그위에 그것이 올라타 있었다. 그것이 그만큼 가까이 간것을 본적이 없던 아버지는 불현듯 공포심을 느끼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서웠다. 오줌이 나올것 같았다.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까.
호기심은 죽음과도 맞닿아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아버지는 끝내 이불을 들추고 할아버지를 보고 말았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얼굴과 팔꿈치 하나의 거리를 둔 채 마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할아버지의 목에 뒤엉켜 있어 숨도 못쉬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스윽"
그것의 손이 이마로 향한다. 그것의 손을 보기는 처음이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
그 손이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좌우로 걷기 시작했다.
"억"
아버지의 뇌가 위험하다고 경보음을 울렸다. 심장이 발작적으로 쿵쾅거리고 전신의 털이 거꾸로 솟구쳤다.
"그래서 보..보셨나요?"
열린 창문도 없는데 싸늘한 한기가 한가닥 흐른다.
"못봤어"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잔건지 기절한건지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어"
"그럼 할아버지는요?"
"죽었어"
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쏜살같이 대답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비명을 지를뻔 했다.
"얘기는 여기까지다, 너에게 더 알려줄건 없어"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버지는 모두 얘기했다 했지만 사실은 한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차마 그것까진 말못하셨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난 그것마저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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