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은 언제나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중학교 2학년, 유달리 햇살이 밝았던 날로 기억한다. 너나할것 없이 왁자지껄한 점심시간무렵,

열린 창문사이로 고양이 한마리가 들어왔다. 새까만 도둑고양이..

"우와"

아이들이 감탄성을 내지르며 고양이에게 몰려들었다. 여긴 3층인데 저놈이 어떻게 들어왔을까.

고양이는 아이들이 주는 음식을 거부도 안하고 받아 먹었다.

어딜가나 악동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들이 뒤편에 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잠시 일어섰다 다시 앉았을때 뭔가 물컹했다. 소름돋는 느낌과 함께 벌떡 일어섰다.

"하하하"

"와하하"

아이들이 죽는다고 웃어댔다.

"캬아"

설상가상으로 고양이가 달려들었다. 발톱으로 손등을 할퀴었다. 순식간에 뻘건줄이 죽죽 그였다.

도망가는 내게 고양이가 힘껏 점프했다. 눈앞에 시커먼게 달라붙자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미친듯이 고양이를 가격했다.

"털썩"

축 늘어진 고양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죽은게 아니었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샤프로 놈을 힘껏 찔렀다.

"키아오"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푹.푹.푹"

수십번도 넘게 찔렀다. 그래도 놈은 죽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필통을 뒤졌다. 커터칼이 보이자 냉큼 손에 쥐었다.

"드르륵"

칼날을 거칠게 빼고는 미친듯이 놈을 베어나갔다. 뜨끈한 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기이한 집중력에 사로잡힌 나는 놈의 해체 외에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살을 가르고 내장을 헤집었다.

입을 강제로 벌리고 목구멍 깊숙히 칼을 쑤셔 박았다. 나를 할퀸 앞발을 잘라내기 위해 반대쪽 손으로 그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슥삭슥삭"

격렬한 왕복운동에도 발은 쉽게 잘리지 않았다. 조그만 커터날이 뼈에서 더이상 들어가지지 않았다.

칼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발을 덥썩 물었다. 어금니를 사용해 힘껏 씹었다.

무서운 정적속에 와드득 와드득 뼈씹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마침내 놈의 발을 몸통에서 분리시키는데 성공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솟았다. 그것은 혈관을 따라 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거칠것이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가슴을 확장시켰다. 그것은 거대한 자신감이었다. 거만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벌 떠는 아이들..아무도 자신만만한 내눈을 감당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처럼 사물함 한켠에 서 있었다. 애써 외면하며 언제나 피했던 그것.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소로워서 미칠 것 같았다. 가까이 가자 그것이 저만치 물러난다.
엉거주춤 물러서는 그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짐짓 눈을 부라려 준 다음에 돌아섰다. 만족감에 어깨가 으쓱거린다.

"신발년이 뒤질라고"

의대에 진학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의대에 입학했다.

머리가 좋아서도 공부에 관심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대를 간 것은 어떤 절박감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버튼 하나로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었다. 피가 튀고 살이 터져야 만족했다.

산 생명을 조각조각 해체할때의 느낌을 원한다. 비록 더러운 살인자의 유전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문에 숨통이 트이고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 말이다.

언젠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적이 있다. 선서를 하면서 속으로 비웃었다. 겉은 그럴싸 하지만 실상은 살인면허증이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한 생명을 죽여도 합법적이다.

죽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아기가 작으면 흡입기로 빨아낸다. 아기가 조금 더 큰 경우는 조각조각 잘라서 긁어 낸다.

사정의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법도 있다. 양수를 빼내고 소금물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기가 소금물에 서서히 쩔어간다.

그 과정이 아기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온몸의 수분을 토해낸 채 시커멓게 말라 죽는다.

그러면 그것을 쏙 빨아내면 끝난다. 아기를 죽이고 나면 그들은 돈을 준다. 그리고감사의 인사도 꼭 잊지 않는다.

처음 낙태 실습을 하던 날 동기들의 과반수 이상이 먹은 것을 게워냈다.

게중에 서넛은 기절까지 했다. 세상에 쪽팔리지도 않는가. 어떻게 의사가 될 놈들이 기절까지 하냔 말이다.

묘한 기대감에 양손을 세차게 비볐다. 십 년 차 전문의는 기계적인 말투로 설명을 해가며 시범을 보였다.

"처음에는 잘 안 잘려요, 게다가 꽤 미끄럽기도 하구요"

전문의의 인상이 실제로 구겨졌다.

"하, 이거 잘 안 잡히네."

모두가 충격속에 시술 장면을 지켜보았다.

"잡았다"

전문의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싱그러운 미소다. 잘 정리된 치열이 꽤 지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말에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잡고나서도 안심하면 안돼요, 가끔 힘이 장사인 놈들이 있거든요"

그의 농담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는 그의 유머감각을 칭찬했다.

'그러면 지금 장래에 천하장사 한명을 죽이는 거잖아 크하핫'

"자르실때 절대 놀라서는 안됩니다, 가끔 아기가 발작하는거에 놀라는 분도 있는데 그럼 큰일나요, 산모가다칠수도 있거든요, 가위로 자궁을 찌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산모가 아프겠어요"

그는 아기를 수십조각으로 자른 뒤에 뽑아냈다. 아마 설명해 준다고 더 잘게 잘랐을 것이다.

"아무튼 평소에 가위날 잘 갈아 두시구요, 그럼 됩니다"

그가 씻지도 않은 손을 우리에게 내민채 마지막 강의를 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토악질을 해댔다.

역한 냄새에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물러섰다.

'옥의 티로군'

너무도 유익한 수업이었다. 그 시간 만큼은 그것이 옆에 있든 말든 신경 쓰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