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번도 거기에 대해서 언급한 적은 없다. 어차피 관심도 없었다. 역시 오늘도 나가고 없다. 아들이 자는 방의 문을 열었다.
자기보다 커다란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운채 정신없이 자고 있다. 이 끔찍한 인생을 물려주기 싫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생.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아들을 흔들어 깨운다.
"으응.."
아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뜬다.
"저기 문앞에 누가 서있는 줄 알아?"
녀석은 질문을 이해하느라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아마 잠결이라서 더 헷갈렸을 것이다.
"그냥 아줌마"
망설임없이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손에 쥐었다. 다시 아들 방으로 갔다. 그런데 아들이 없다.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린다. 쫄쫄쫄 오줌누는 소리. 오줌을 다누기를 기다렸다. 아들이 나오자 식칼로 심장을 힘껏 쑤셨다.
"아.."
아들은 비명도 못 지르고 쓰러졌다. 눈을 감고 한번더 찔렀다. 최대한 빨리 죽이는게 예의리라.
아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식칼을 들고 그년을 보았다. 그년이 온몸을 비틀거린다.
"어때? 이제 대가 끊겼으니 어쩌나? 이제 네년의 복수상대도 사라졌으니 이제 어쩔거냐고"
그년이 크게 휘청거린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통쾌했다.
"자 이제 얼굴을 보여줘"
그년이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신발년아, 면상 한 번 보자고"
성큼성큼 걸어가 그년의 어깨를 확 잡아챈다. 아마 집안을 통틀어 이런 행동을 보인건 내가 처음일 것이다.
아들도 죽였는데 그년이라고 대술까. 그년이 아무렇게나 팔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벽에 처박혔다.
"씨..신발년이 힘은 장사네"
그년이 점점 나에게 다가온다. 내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녀가 다가옴에 따라 미칠듯한 원한이 쏟아진다.
"그래 이거야, 이 느낌이라구"
공포와 흥분으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해묵은 집안의 한.
켜켜이 쌓인 그것이 남김없이 쏟아지는듯 하다.
그년이 내 발을 지나서 머리맡으로 왔다.
"어서 까봐"
그년이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심호흡을 했다.
"스윽"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 다시 눈을 떴다.
"어라"
그년이 없었다. 저만치서 그년이 걸어가고 있다.
"이봐 어디가?"
그년이 현관쪽으로 다가간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다.
얼른 뛰쳐가서 그년의 어깨를 돌렸다.
"휙"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카락을 치워버렸다.
"....."
뭔가 잘못됐다. 이럴수는 없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쪽으로 부적 몇 개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년이 다시 현관으로 향한다.
"안돼"
사라졌다. 그년이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면 짠 하고 나타날 줄 알았다.
"홱"
"홱"
몇번이나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그년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뚜벅뚜벅 걸어가서 아들의 시체를 안았다.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찬기운이 느껴진다. 아들만 차운게 아니었다. 거실바닥도 차웠고 공기도 얼어붙는듯 매웠다.
"하"
숨을 내쉬자 뽀얀 입김이 퍼진다. 그러고보니 주위가 어둡다. 창문쪽을 바라보니 아무 것도 안보인다.
그냥 까맣다.
"헉"
일순 급격한 추위가 몰아 닥쳤다. 전신의 소름이 연신 돋아났고, 팔다리에 마비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이 상황을 직시했다. 지금은 한여름이다. 이런 추위는 있을수 없다.
다시 바깥쪽을 보았다. 여전히 까맣다. 자세히 보니 까만것이 움직이는 것 같다. 베란다를 열고 들여다 보았다.
"꿈틀꿈틀"
시커먼 덩어리들이 울룩불룩 돋아나왔다. 별안간 덩어리들 사이에서 뭔가가 솟구쳤다. 사람이다. 사람인데 목이 없다.
여기저기서 마구 솟구친다. 모두 목이 없다. 동물적인 직감으로 옷을 살펴보니 결코 요즘 시대옷이 아니었다. 헤진 한지로 만든 옷들...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꿈틀꿈틀"
또다시 사방팔방에서 무엇인가가 솟구친다. 이번엔 목이 있다. 그런데 다들 병신이다. 팔한쪽이 없거나 발이 없었다.
죄다 병신들이다. 옷을 살펴보니 한복이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친다. 어느새 거실까지 물러났다.
"꿈틀꿈틀"
이번엔 가까이서 소리가 들린다. 맙소사, 천장이다. 천장에 시커먼 것들이 퍼져있다. 그것들은 벽으로 흘러내리고
점차 온 집안을 잠식해 들어온다. 이젠 추위를 넘어서 전신이 따끔거린다.
벽에서 또 수십명이 솟구친다. 목도 있고 병신도 아니다. 옷을 살펴보니 가슴에 번호가 새겨져 있다.
"죄수복!"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꼬리뼈까지 수십만 볼트 짜리 전류가 흘렀다.
"설마"
뒷걸음질 치다가 뭔가에 걸려 넘어졌다. 아들의 시체다. 뭔가 알듯말듯 애매하다.
사라진 그년과 부적 그리고 나타난 원혼들. 깨알같은 힌트라도 절실했다. 불현듯 사기꾼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수만가지 생각이 서로 넝쿨처럼 꼬였다. 입구는 수십갠데 출구는 하나다. 이 매듭의 시작점만 쥘 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수십번 침을 삼키고 미친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최대한 뇌를 쥐어 짜냈다.
가상의 선이 그어진다. 조심스레 그 선을 따라 걸었다. 눈앞에 굵은 선 외에는 죄다 함정이다.
밟으면 아랫도리가 터져버리는 지뢰밭이다. 발을 딛으려는 찰나 오른쪽에 있던 선도 굵어진다.
곧 모든 선이 통나무 마냥 굵어져 버렸다. 서로 오라고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든다. 빌어먹을. 더이상 짜낼 뇌도 없다.
탈수기까지 동원해서 모조리 짜내버렸단 말이다. 알렉산더의 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느새 온 집안에 검은 덩어리들이 가득 찼다.
"꿈틀꿈틀"
이번엔 바닥이다. 그것도 내가 누워있는 바로 밑바닥이다. 온몸이 미칠듯이 따끔거렸다. 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아팠다.
목없는 시체, 병신들, 그리고 죄수들이 다가온다. 이제는 살이 뜯길 만큼 아프다.
그들이 쳐다볼 때마다 한웅큼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땅바닥에서 뭉글뭉글한 것들이 솟아 나온다.
아기다. 수많은 아기가 원망어린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모든 원혼들이 한데 뒤엉켜 나에게 다가온다.
알았다. 이제 알았다. 왜 그년이 사라진건지.
할아버지도 틀렸고 아버지도 틀렸고 나도 틀렸다.
굿판은 성공했던 것이다.
짱짱 두번봐도 짱임이건